중생불 ①

중생불이라 중생놀음 하는데

실은 우리가 부처.

번뇌망상 일으키는

이것도 부처자리

달리 제도 받을 사람도 없고

제도할 사람도 없어.

 

경계에 들어앉기 때문에 그만 중생이 됐다 말이죠. 중생이 됐는데 이걸 중생이라고만 말하기는 좀 어색해요. 그러나 부처님도 중생이라 말 하니까 따라서 말하는 거지만 이건 꼭 바로 말하자면 중생불이에요. 중생불. 왜 그러냐. 우리는 중생불이기 때문에 중생놀음 하는데 실은 우리가 부처거든요. 왜 부처냐. 말쑥한 그 자리가 부처인데 우리가 부처가 아니라 하면 말이지 말은 어떻게 하며 남 보기는 어떻게 보며 듣기는 어떻게 들으며 생각은 어떻게 하죠? 보고 듣고 말하고 하는 거 이거 부처자리라 말이죠. 또 번뇌망상 일으키는 이것도 부처자리에요. 솔직한 말로. 부처자리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계에 휘둘려서 번뇌망상을 일으킬 따름이지 사실에 있어서는 부처는 틀림없는 부처거든요. 달리 제도 받을 사람도 없고 제도할 사람도 없어.

그러하기 때문에 또 부처님께서 내가 제도를 했느니라. 내가 제도를 했느니라 하는 이런 생각이, 하나의 말마디가 떠올라. 따라서 또 제도를 받았느니라 하면 중생이란 말마디가 하나 딱 하게 나타나. 그러하면 이거 또 수작놀음이거든. 모습놀이라요. 상놀음이거든. 사상에 떨어져. 그러하기 때문에 제도를 해도 제도 받을 사람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한 겁니다. 원리 원칙은 그러나 실에 있어서는 우리가 다 부처 씨가 있고 또 열반묘심으로서 술집에 가서 술을 먹고 싸움을 하더라도 그놈이 열반묘심이 있기 때문에, 본래 적멸성인 그 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데, 그 본소식을 모르고 그만 경계에 나타난 거기에 휩쓸려서 거기만 내 세상이다 해서 말이지 그렇게 하니 이거 딱하단 말이지. 그러기 때문에 중생은 중생이라. 부처는 부처인데 중생이라는 이름을 갖다가 우리는 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요.

그러하니 그러면 실에 있어서는 중생불인데 그 마음자리, 니가 지금 술 먹고 싸움을 한단 말이지. 이 술 먹고 싸움을 하는 놈이 무엇이냐면 전부 망상덩어리거든. 알음알이 놀이거든. 요놈인데, 그러면 망상덩어리가 술을 먹고 싸움을 한다 말이여. 그러면 부처 아닌 거 아닌가? 하지만 그거 아니라. 내가 술 먹고 싸움을 하는 걸 알아. 요놈이 부처란 말이야. 그러면 마음이 두 나 아니가? 둘 아니라 하난데 행동을 둘로 하는데 그만 싸워. 저 놈이 밉다 말이야. 저 놈 밉다고 생각하는 그놈이 부처자리거든. 그러나 그대로 행동을 옮겨. 미우면 밉다 좋으면 좋다 이런 행동을 옮긴다 말이지. 옮겨서 행동을 하는 것이 알음알이여. 그렇게 보면 되요.

그러하기 때문에 원래 알음알이하고 진심하고 둘 아니건만은 그러나 경계에 휘둘리기 때문에 중생이 되는 것이고 경계에 휘둘리지 안 해. 그대로 말쑥한 자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경계가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 분별도 할 줄 알아야 돼. 사실에 있어서는. 처음에 공부할 땐 분별을 치워야 된다 이래 하지만 이제 여러분들 분별해야 되거든. 잘 분별을 해. 분별을 하지만은 그 경계에 휘둘리지 않는 것. 요 자리란 말이에요. 요 자리가 부처 아니라요?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하나 부탁을 하겠어요. 나는 생각을 하기를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이것도 내가 모르겠어. 이전 어른들은, 이전 어른들은 망심이 본적하고, 망령된 마음이라 할지라도 망령된 마음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와. 상대성으로 우리가 삶을 굴려 가는데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긴 가져오지만은 그러나 망심의 당처가 공했다 말이여. 본공한 것이거든. 왜 그러느냐. 우리가 어떤 좋은 일을 한다든지, 좋은 생각을 가져서 좋은 일을 한다든지 그릇된 생각으로서 어긋난 행위를 한단 말이지. 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씀씀이가 알음알이 놀이가 그 당처 빈 거라. 적적한 거라. 그러하고 진경(塵境). 경계. 집도 경계요 우리의 색신 몸뚱어리도 경계요 산도 경계요 나무도 경계요 부는 바람도 경계요. 모든 것을 뚤뚤 뭉쳐서 티끌경계라 이전 어른들은 말씀하셨는데 진경이 본공이라. 비었어. 일체가 비었어. 이것도 여러분들이 아시는 거 아니라요? 아무리 태산준령이 있다 할지라도 그 성품이 빈 거 아니라요? 공성 아니라요? 그러니까 삽으로 푹푹 파지기도 하고 대포알을 집어 던지면 그 놈 산이 뭉개어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빈 성품이 아니면 절대 안 그래. 우리의 몸뚱어리 이것도 빈 성품이거든. 적혈구 백혈구로서 모아진 하나의 가죽주머니라 해도 사실은 이거 빈 성품이에요.

그러나 그 당처 이것도 빈 것이거든. 이러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모든 경계를 여의어라. 사상을 여의어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여의라. 그것 전부 헛거니라. 또 산하대지도 여의어라. 산하대지를 여의라 해서 깡그리 없애버리고 빈 걸로 보지 말고, 산하대지를 그대로 두고 그걸 빈 성품으로 봐라 이 말씀을 했거든요. 그렇게 하면은 다시 말하자면, 더 줄여서 말하자면은 망심이, 우리의 마음씀씀이, 망심이 본적하고 본래 적적하고. 진경, 티끌의 경계가 본래 비었단 말이여. 이것을 알면은 견성을 하느니라. 아마 이전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했을 거여. 그러나 나는 부처님 말씀을 여러 조사님들 말씀을 거꾸로 한 번 뒤집어 볼 작정이여. 어떻게 하느냐 망념이 본적하고 망령된 여김이, 망심이 본적하고 진경이 본공이니라. 이걸 알면은 견성, 성품을 보느니라 이래 하는데 나는 정반대로 우선 견성을 하면은 망념이 본적한 줄 알고 진경이 본공한 줄 안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부처님 말씀 거꾸로 뒤집는다 말이여.

왜 그러느냐. 다른 데 가서는 나 이렇게 설법을 안 합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설법을 해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여러분들은 이 누리의 참된 주인공, 색신으로서인 내가 아니고 허공으로서인 법신, 허공으로서인 내라 말이여. 이건 여러분들이 알았거든. 그러면 색신으로서인 내가 아니고 허공으로서인 내란 말이여.

허공 하면 허공을 위한 허공이 아니거든. 늘 말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허공이란 말을 써야 알아듣기가 쉽기 때문에 허공이라고 말하는 건데 허공 자체에 있어서 슬기가 없으면 글자 그대로 허공이지만은, 슬기가 있는 허공은 뭣이냐 하면 바로 영지거든. 법신자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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