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1〉 영축산 통도사 적멸보궁

희유의 아름다움으로 극적인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천정 상층 중앙감실. 여섯 잎 갖춘 연꽃에 금니로 범자 시문한 문양인 천정 중층.
평행들여쌓기한 상 중 하 3층
부처님 화신, 법신, 진신 공간
천정에 세 곳 감실 둔 사례 미증유
연꽃은 부처님과 묘법연화 상징

통도사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형상의 경계 너머로 상주하시는 적멸의 공간, 적멸보궁이다. 적멸의 공간은 번뇌의 불이 꺼진 고요의 세계다. 일체의 언어와 이론, 이것 저것 구별하는 사량분별을 멸하고, 아상을 여읜 열반적정의 공간이자, 대자유의 공간이다. 그래서 부처의 자리마저 텅 비어 있다.

법신은 비상(非相)이니 상으로도, 음성으로도 볼 수 없는 진리 그 자체다. 〈금강경〉에서 형상으로나 음성으로 부처를 찾는 것은 삿된 도라 했다. 너무 큰 형상은 볼 수 없고, 큰 소리는 들을 수 없는 이치다.

통도사 대웅전은 17세기 중엽에 중건된 조선중기 건물이다. 남측면이 3칸, 동측면이 5칸인 정(丁)자형 목조건축이다. 조선왕릉의 조영에서 나타나는 능묘와 정자각의 배치구도를 종교건축에 재현한 흔적이 엿보인다.

금강계단이 있는 북쪽면을 제외하고는 어느 방위에서 보더라도 합각면이 보이는 독특한 건축인데, 사방면 저마다에 편액을 걸었다. 그에 따라 통도사 대웅전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면서, 불멸의 금강계단이고, 진리의 빛인 법신불이 상주하시는 대방광전이다.

천정 상층 남쪽감실
적멸보궁의 천정은 井자 모양의 격자 틀로 짜맞춘 우물천정이다. 그런데 확인해 둘 것이 있다. 천장(天障)인가, 천정(天井)인가하는 문제다. 여러 사전들을 들춰보면, ‘천정은 천장의 잘못’이라고 설명한 사전도 있고, 명문 국어대사전의 경우, ‘천정=천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우물반자를 천정, 또는 조정이라 부르며, 때로 이 명칭을 천장의 대명사처럼 사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천장(天障)’ 이라는 말은 하늘을 가로막은 반자의 이면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하늘로부터 공간을 분리하고 차단하는 기능성을 설명할 뿐이다. 그런데 천정(天井)’은 ‘하늘의 우물’이다.

물은 곧 생명의 화수분이고, 대자대비다. 감로의 생명수로 가득한 하늘세계가 법계의 천정이다. 하늘을 가로막은 벽면이라는 ‘천장(天障)’ 개념보다 철학적이며, ‘집 우(宇) 집 주(宙)’의 우주적 건축개념을 담은 용어가 ‘천정’이다. ‘천장’이라는 개념으로는 전통사찰건축의 하늘공간에 장엄한 조형의 본질을 읽어내는 데 한 발짝을 내딛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불교건축에서 천정은 경전의 내용을 조형방편으로 경영한 방편반야로서 부처님과 불국토의 만다라인 까닭이다. ‘천정’의 용어에는 개념 자체에 인문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불교미술사학의 용어로는 ‘천장’ 보다는 ‘천정’ 개념이 보다 타당하고 심미적이다. 이 글에서는 ‘천정’의 용어로 일관할 것이다.

적멸보궁 내부의 천정은 우물천정이다. 우물천정에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정처럼 폭을 안으로 좁혀나가는 ‘평행 들여쌓기’를 하여 상 중 하, 3층의 공간 깊이를 갖춘 층급천정이다. 게다가 3층의 층급천정을 세 곳에나 경영했다. 마치 고구려 고분벽화의 삼실총 천정을 일직선으로 늘어놓은 형태다. 유례없는 희유의 전개방식이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처럼 닫집으로 세 개의 보궁을 만든 사례는 있지만, 천정에 세 곳의 감실을 둔 사례는 미증유의 일이다. 오랫동안 그 궁금증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그 갈피가 잡혔다.

세 곳의 천정감실은 곧 세 불전건물을 말한다. 사방 네 곳에 대웅전, 금강계단, 대광보전, 적멸보궁의 각기 다른 편액을 단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금강계단은 건물 북쪽 외부에 조영되어 있다. 그러면 나머지 세 건물이 한 목조건축에 융합된 셈이다.

출입문도 동, 남, 서쪽 세 곳에만 있고, 북쪽 금강계단 출입문은 따로 시설해두었다.

그러니까 천정의 세 곳에 층급감실을 둔 것은 대웅전, 적멸보궁, 대방광전으로 이 건물이 부처님의 화신, 진신, 법신의 공간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적멸보궁의 천정은 거대한 하나의 만다라다. 금강계만다라의 한 가로줄을 보는듯 하다.

먼저 천정의 하층에는 태극 나선문양이 장엄되어 있다. 정방형으로 구획한 칸칸마다 중심에 태극을 조영하고, 신령의 기운이 시계방향으로 여섯 날개처럼 뻗쳐 있어 한칸 한칸이 마치 나선은하를 보는듯 하다. 칸칸마다 파동에너지가 태극 나선형으로 소용돌이 친다. 칸칸이 생명력이 분출하는 영기의 세계다.

태극나선문양은 적멸보궁 천정 바깥쪽 가장자리에 두 줄로 한바퀴 돌려서 법계의 신성과 대생명력의 에너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총 124칸을 경영하였다.

한편 천정의 중층은 하층과 평행하게 들여쌓기 하였는데, 남쪽을 제외한 삼면에 두 칸 폭으로 들여쌓았다. 중층의 문양은 여섯 잎을 갖춘 연꽃에 금니로 범자를 시문한 문양이다. 칸칸의 바탕엔 신령한 영기문이 뻗치고 있고, 반자가 교차하는 모든 꼭지점엔 다시 영기화된 연꽃조각을 얹어 장엄의 중층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여섯 연꽃잎에 시문한 범자는 진언과 여래를 상징하는 卍자다. 이 연꽃은 편의상 연꽃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진여의 조형방편이다. 곧 천정의 연꽃은 부처이고, 묘법연화다. 그것이 진언의 꽃에 담긴 불이의 체용이다. 중층의 연화문은 남쪽 측면을 제외한 삼면을 따라 총 72칸에 베풀었다.

천정 하층 태극나선문양
적멸보궁 천정의 상층은 보다 심층적이며 아름답고 현묘하다. 천정상층은 동서로 가로지르는 종보를 따라 3실을 내었다. 상층 3실의 장엄세계는 저마다 상이한 문양으로 조형했다.

남쪽 감실은 5×5 격자틀 속에서 두터운 금니로 아름다운 덩굴형 영기문양을 베풀었다. 우물반자 36개 격자점에는 붉은 오각형의 꽃을 얹어 밤하늘의 별을 보는듯 하다.

중앙감실의 장엄은 희유의 아름다움으로 극적인 환희심을 불러 일으킨다. 검은색 바탕에 초록색 잎의 붉은 모란꽃, 밝은 금니의 담국화를 세로로 길게 각 각 여섯 줄, 다섯 줄씩 올려 공간의 신성함과 법열의 환희심을 최고조로 드러낸다.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검은 바탕의 천공에서 마치 영산회상의 만다라꽃, 만수사꽃이 쏟아져내리듯이 우화의 상서를 자내증으로 내보인다. 아마도 검은 천공서 별처럼 빛나는 금니 담국화는 법화경의 영산회상에서 범천이 세존에게 바친 금색바라화의 의미일터, 생명력의 황금빛 에너지가 천공에서 폭발하듯 미어터지고 있다.

북쪽 감실은 두 상층 감실과 달리 가로로 긴 장방형이어서 6×4 격자틀을 내고는 격자마다 중층과 같은 문양을 베풀었다. 여섯잎의 연꽃을 올리고 씨방부분과 여섯 꽃잎에 금니의 범자를 입혔다. 35개 격자점에는 대승으로 가는 육바라밀의 보현행원을 직지하듯 육각형 연꽃잎 형상이 금빛 씨방을 찬란히 여밀고 있다.
뭇 사찰의 천정장엄은 프랙탈 기하학을 이룬다. 프랙탈 기하학은 자기유사성의 무한반복이다. 그 속성은 대칭과 회전, 변환, 확산에 있다. 대칭과 회전에 의한 닮음 변환으로 닮은 개체끼리 조화를 이룰뿐더러, 연속하고 이어지는 운동의 파동에너지를 가진다. 마치 카드섹션이 연출하는 집단의 힘과 동일하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만유가 가진 생명력이다. 생명력으로 가득찬 우주만유는 연기법의 인연에 따라 상즉상입하는 연기법계를 이룬다. 그러니까 천정장엄은 연기법의 화엄세계를 조형언어의 방편가설로 풀어 쓴 또 하나의 경전인 셈이다.

이에 따라 대웅전 천정의 격자 칸 칸은 무진연기법계의 삼천대천세계의 은유이며, 부처의 세계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동시에 견성성불을 일깨우며 일불승의 환희심으로 중생의 머리 위로 흩뿌리는 우화의 상서라 할 것인데, 그것은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서 미간 백호에서 광명을 놓아 동방으로 일만 팔천 국토를 비춰 그 세계의 장엄을 모두 보게 하시고, 갖은 꽃을 비오듯 내리게 하신 희유의 일에 닿아있다. 그러므로 통도사 적멸보궁의 천정은 만유의 생명력과 불성, 부처로 가득한 삼천대천세계라 할 것인데, 그 세계는 불생불멸 부증불감하는 상주법계이다.

‘천정’, 곧 ‘하늘의 우물’은 마르는 법이 없이 모두의 생명력을 적시는 법이다.

뭇 유정과 무정에는 차별없이 불성이 깃들어 있다. 법신의 부처께선 시방세계 두루 미치는 빛처럼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께선 무량의 연잎 속에 나투셔서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구제하신다. 우물천정 칸칸에 베풀어진 신령의 꽃들이 곧 부처이고 여래이시다. 천정장엄 꽃의 조형에 卍자와 같은 범어를 베풀고, ‘옴 마니 반메 훔’의 육자진언을 베풀며, 석가모니불의 명호를 적어 두는 것에서 우리는 조형의 분명한 뜻을 알 수 있다. 꽃의 형식논리 너머 엄숙한 진리의 꽃, 화엄을 경영한 것이다. 천정에 장엄된 꽃은 곧 여래이며, 깨달음의 진리 그 자체인 것이다.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이니 부처께서 모든 곳에 두루 상주해 계신다. 일승법의 큰 수레바퀴가 적멸세계의 천정에 장엄되어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형상의 경계 너머로 상주하시는 적멸의 공간인 통도사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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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재학 불교사진작가는
1963년 태어나 부산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역사문화와 미술사학, 불교교리, 사진을 독학하였다. 부산에서 <숨바꼭질> 문화유산답사회를 이끌며, 부산불교청년회 등에서 200회 이상 답사 길라잡이를 하였다. 2003년부터 전국의 사찰을 기행하며 불교조형미술을 사진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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