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보살의 인과이야기

아이 가지면서 자신 돌아보게 돼
불자로서는 승만보살이 롤모델
어머니로서의 삶에선 신사임당
좋은 어른 만나는 것이 ‘공부’

어머니로서의 모델 신사임당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비로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을 깊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속에서 나온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하는 이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까지 연결되었던 것 같다.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며 내린 결론은 공부하는 어머니, 사려 깊은 아내, 마음공부를 위해 노력하는 내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집을 왔고 아이를 낳았다. 소중한 생명을 만들고 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우는 것이 어머니의 본질임을 자각한 것은 큰아들을 낳고 나서였다. 육아책과 아동심리학, 위인전 등을 사다가 읽기 시작하다가 대한주부클럽에서 하는 어머니교실을 찾은 게 신사임당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에서 승만보살이 내 모델이 되었다면, 신사임당은 어머니로서의 삶에서 모델이 된 분이다. 신사임당은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왕의 스승이었던 이율곡을 낳아 기른 조선최고의 어머니다.
일찍이 주부클럽이라는 재교육 학습장에 든 것이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행히 바른 어른들을 만나서 보고 듣고 발품을 판 것이 큰 공부가 되었다. 좋은 어른들을 뵈며 이미지 저장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수양의 과정이 되었다.
지금 주부클럽 회장으로 계신 김천주 회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여성들의 이상적인 모델로 신사임당이 선정된 배경을 알 수 있다.
“1964년 나라의 흥망성쇠는 여성과 주부들의 의식에 의해 좌우된다는 고 김활란박사의 뜻에 따라 스무 명 내외의 의식 있는 선배님들과 마음을 모아 여성의 이상상 정립을 위해 외부 인사 모윤숙, 이관국, 장덕순, 내부인사 김활란, 정충량, 백신한, 원선희 선생 등이 여러 차례 사전 회합과 전문가의 자문에 의해 남성들의 사표가 문관에 이율곡, 무관에 이순신이라면 여성들의 이상은 세계적인 인물 퀴리 부인이나 잔다르크를 능가할 겨레의 어머니 신사임당임을 천명하고 민간여성단체인 주부클럽 주도 아래 그분을 기념하는 행사를 시작했다.”

이처럼 겨레의 어머니라고 불리고 있는 신사임당은 시·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났으며 이율곡의 어머니로 사대부 부녀에게 요구되는 덕행과 재능을 겸비한 현모양처로 칭송된다. 신사임당은 그림 뿐만 아니라 글씨와 시,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율곡은 후일 어머니의 행장기를 저술했는데, 여기서 어머니의 예술적 재능, 우아한 성품, 그리고 정결한 지조 등을 소상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넷 째 아들 이우와 큰 딸 이매창을 자신의 재능을 이어받은 예술가로 키워냈다.
내가 보기엔 신사임당이야말로 가정교육에서 인품이 형성된 분이다. 함께 산 외할아버지에게서 걸음걸이에서부터 말씨, 예절 등을 모두 배우고, 17세 때 이미 외할아버지에게〈소학〉,〈효경〉,〈명심보감〉,〈논어〉,〈시경〉,〈사기〉등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그림 솜씨가 좋은 재능을 발견 분은 외할아버지이셨으니 신사임당이야말로 가정교육을 잘 받고 성장한 인물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사마천의〈사기〉를 배울 때, 자신이 닮고 싶은 김명 깊은 인물을 발견했는데, 다름 아닌 중국의 주나라를 세운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이었다.
자녀교육에 대한 열성과 신념이 남달랐기에 성군을 키워낸 태임을 존경하게 되었는데, 마음속으로 혼인을 하면 태임을 스승으로 삼아 자식을 잘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임당이라는 자신의 당호를 태임을 본받아야겠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신사임당이 많은 성현들 중에 마음으로 존경하여 따르고 싶은 마음이 왕을 키워낸 태임이었기에, 그도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이율곡을 생산하고 키워냈을 것이다.
아이들을 생산하고 어머니가 된 이후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로 자리잡고 있는 분이 신사임당이기에 항상 마음속에 그분을 담고 살아왔다.

지난해에는 나를 좋은 어머니로 키운 주부클럽에서 상을 받고 시인이 되었다. 주부클럽에서 개최하는 백일장에 큰아들과 함께 추억을 만든다는 의미로 참석했다가 시 부문에 장원으로 뽑힌 것이다. 백일장 행사가 진행된 지 50년 만에 부처님오신날과 겹쳤다고 하는데, 부처님오신날에 장원이 되어서 뜻 깊었다.
어느 화가는 육십에 그림을 알고, 시인은 칠십이 넘어야 시를 안다고 했는데, 육십 중간쯤에서 시인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알맞은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원으로 당선된 시 전문을 옮겨본다.

봄비

봄비는 꽃샘에서 나옵니다.

물도 가다 구비를 치듯
내 한 삶도 이쯤에서
눈뿌리 아득히 아른아른
그 안에 나를 보면
봄비는 눈물입니다.

곰삭은 마음이 사람을 울리며
할아버지의 후한 인심이
손자의 거름이 되듯이
봄비는 내 눈을 열어줍니다.

보슬보슬 봄비가 옵니다.
소리 없이 봄비가 옵니다.

이 시는 주부클럽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실렸는데 실리기 전 수상소감을 써달라기에 이렇게 써서 보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절寺에 가서 부처님 말씀(言)을 들었는데
저를 시인(詩人)이라고 불러주시네요.
우리 모두 부처님 같이 우리 모두 시인(詩人)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그 많은 회원들에게 익혔다는 것에 감사한다, 주부클럽 회원지가 전국 30만 회원에게 배포되어 읽혔을 터이니 밥값은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진정으로 좋아하고, 부처님 나라만 생각하고, 부처님으로 받들어 주는 것이 내 역할인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시가 당선된 것을 스스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당선소감으로 조그만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엄마, 잘했어요.”
소식을 듣고 아들들이 축하해주었다.
“당신들이 잘 커 줘서 엄마에게 날개를 달아준 거지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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