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漢岩) 선사의 편지 〈15>

진진응 화상의 청법에 대한 답신
청법에 응하지 못함을 양해부탁
진진응화상…한국불교 지킨 대강백
행사ㆍ법회 참석 한 번도 없어
종정 추대되고도 추대식 참석 거절

▲ 한암 선사가 진진응 화상에게 보낸 답서

진진응(陳震應) 화상께 보낸 답서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법체(法體) 만안(萬安)하시다고 하시니 삼가 위안이 됩니다. 빌어 마지않습니다.
소승은 평소 병약(病弱)한 몸으로 깊은 산속(오대산)에 들어와 10여 년 동안 칩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날이 갈수록 오히려 허명(虛名)을 가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허명 때문에 구애(拘碍)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공부하는 것이 순일하지 못하여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가 없다”는 경우인데, 하물며 어찌 타인을 구제하는 데까지 힘이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그저 자책하고 탄식할 뿐입니다.
스님께서 이렇게 불러주신 것은 실로 과분한 일입니다만 또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사소한 일이 있어 스님의 뜻에 우러러 부응하지 못합니다. 부디 자애로운 마음으로 깊이 헤아려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자애롭게 여겨 허물하지 마시길 바라 마지 않습니다.
이만 줄이옵고, 답서의 예를 갖추지 않습니다.
병자(1936년) 2월 21일
소승(小僧) 방한암(方寒岩)은 답장을 올립니다.

이 편지는 진진응(陳震應, 1873-1942) 화상에게 보낸 답서로 1936년 2월 21일에 보낸 것이다.
진진응 스님은 화엄사 출신이다. 구례 광의면 출신으로 15세에 화엄사로 입산하여 1928년 7월 55세 때에는 화엄사 주지를 역임했다. 화엄사, 선암사, 쌍계사 등 전라남도와 경남 일대의 대표적인 강백이었다. 또 1910년에는 이회광 스님이 한국불교를 일본 조동종과 합병하려고 하자 만해 한용운, 석전 박한영 스님과 함께 저지했던 스님이기도 하다.
한암선사가 이 편지를 보낼 때 진진응 스님은 지리산 쌍계사 강백으로 있었다.
내용은 진진응 스님이 한암선사를 초청한 듯하다. 아마 법문을 해 달라고 청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에 대하여 한암선사는 초청에 부응하지 못함을 양해해 달라고 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순일하지 못하여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타인을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그저 자책하고 탄식할 뿐입니다.”라는 말로 정중하게 사양하고 있다.
편지 가운데 한암선사가 “날이 갈수록 허명(虛名)이 세간에 가득하여 이로 인해 구애(拘?)되는 바가 많다”는 말은 겸양지사(謙讓之辭)인데, 이 당시 한암선사는 만공 스님과 함께 대표적인 선승이었다. 그래서 법문을 요청하는 곳이 많았는데, 널리 아는 바와 같이 치아를 치료하기 위하여 출타한 것 등을 제외하고는 행사나 법회에 참석하시러 나가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1941년 6월 처음으로 조계종이 창종되어 종정에 추대되어도 서울에 가지 않았다. 서울에 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종정을 수락하셨다.
진진응 스님은 한암선사 보다는 3살 위였다. 그리고 한암선사가 이 편지를 보낼 때는 61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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