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통일실천기획단 공동단장 법응 스님>

우리나라에 발을 디딘 최초의 신부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따라온 스페인 예수회 소속 세스페데스(Cespedees,G.) 신부라 한다. 이후 일부 왕래가 있었으나 1784년(정조8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하여 이벽, 정약전 등과 같이 신앙 활동을 하니 비로소 교회가 들어서고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후 100여 년 간 대소 박해가 발생했으니 신해박해, 신유박해, 황사영백서 박해사건, 기해박해 그리고 8천여 명의 천주교도가 처형된 병인박해 사건이 대표적 사건이다.

프란치스코 가톨릭 교황께서 오는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방한하며, 같은 달 16일에 광화문광장에서 124위 시복을 봉행한다고 한다. 시복식(諡福式, beatification)은 “가톨릭에서 성덕이 높은 이가 선종(善終)하면 일정한 심사를 거쳐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것”이라 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순수한 종교 내부의 행사가 분명하다.

8월에 있을 교황의 광화문 시복식 행사장 전경을 잠시 상상해 본다. 광화문광장에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배경으로 장엄한 단상이 설치되고 미국대통령 방한 이상의 공식경호가 전개될 것이다. 경호실 인력은 물론 수많은 정사복 경찰이 배치될 것이고, 그 외 병력동원도 충분히 예상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던 1984년 5월 여의도 행사 시 내?외부 참여군중 분리선 경비를 헌병들이 맡은 사실이 있다.  

신원조회를 마친 초청 인사(예상 20여 만명)에 한하여 신원확인 절차와 고정 금속탐지대를 거쳐서 공식행사장에 입장이 허용될 것이다. 이 공식행사장과 그 최기외부는 경찰 경호선과 완충지대가 설치되어서 정사복 경찰관 등이 경호와 경비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완충지역 외부에는 교황과 이 행사를 관람하려는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하게 될 것으로 추측된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 주변일대의 교통 차단과 인근의 건물 창문은 봉쇄되고 곳곳에 경호 및 경비 인력이 배치 될 것이다.

교황의 방한에 대한 최상의 경호와 당연한 경비 및 의전일 것이나, 어찌되었든 시복식이라는 특정종교계의 순수한 내부의식에 국가가 경호와 경비를 하게 되는 형국이 된다. 필자의 의문과 문제의 제기는 순수 종교의식을 왜 광화문광장에서 해야 하는지와 정부가 이를 공식 허가하고  순수 종교의식에 국가 공권력에 의한 경호와 경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시복식순례도 코스(출처:2014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홈페이지)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을 <2014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공식 사이트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었다. 이 사이트 내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일정” 중 시복식 행사의 소개를 보면,

“8월 16일에는 교황이 한국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한다. 시복식을 지역교회를 찾아 교황이 주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초기 한국교회의 중추적인 인물들이 시복되는 이날 미사는 수도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앞에서 진행된다. 광화문은 인근에 천주교 신앙 선조들이 옥고를 치렀던 형조터, 우포도청터, 의금부터 등이 위치해 순교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배어있는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시복 미사에는 천주교 신자 20여만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교황청·정부·한국 천주교회는 교황 경호 및 시복식 참석자들의 안전문제에 대해 긴밀히 협의해나가고 있다.”

“시복의 역사적 순교자적 의미”를 설명에서 일부를 소개하면,

“교황께서 주재하시는 시복식 미사가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으로부터 서울광장에 이르는 도심의 한 복판에서 봉헌되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국가의 상징로이기도 한 이곳은 조선시대 정부의 주요한 기관들이 위치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시복식을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편적 형제애’를 내외적으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이 새로운 ‘아레오파고’(사도 17,16-34)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문장들이 왜 광화문광장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으나 순수한 종교의식은 종교건물이나 그 테두리 내에서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물론 부처님오신날이나 성탄일에 거리행진 등 문화적 행사를 하기도 하나 수계식 등 순수한 종교 내부적 의식은 실내에서 내부인사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 상례다. 간혹 평화 기원이나 통일 염원 등 민족적 숙업과 관련된 종교행사가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를 떠나 우리 역사와 국민들에게 있어서 광화문 광장이 갖는 상징과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단지 지나간 역사의 한 장소가 아니라, 현재도 엄연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부이다. 설왕설래 그 처음 설치과정에 얽힌 이야기야 어떻든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이곳에 위치한 이유이고,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을 알리는 국가적 공식행사가 이곳에서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곳에서 구태여 특정종교의 내밀한 의식을, 박해와 순교의 역사에 기반한 그 어떠한 심리에서 봉행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서울시의 광화문 사용 조례 제1조(목적)은 “이 조례는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위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 정하고 있다.

거듭 문제의 제기의 요지는 조선 역사의 중심지이며, 대한민국의 수도로써 정치, 경제, 외교 등의 중심지인 광화문 광장에서 순수 종교행사를 봉행해야만 하는가, 이다. 만일 이 시복식을 기화로 금년 가을에 광화문광장에서 불교계가 수계식을 하거나 호국의 상징인 서산대사, 사명대사, 만해 스님과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승군에 대한 천도의식을 봉행하고자 하니 허가해 달라 하면 어찌할 것인가?  

안전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청와대가 지척인 곳에서 (예상 인원)100만명 상당의 인파가 운집하고 장시간 대규모 행사가 진행된다. 경호의 까다로움은 물론이고, 만의 하나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종교박해가 끔찍한 인권유린을 동반한 것이고, 또 그에 따른 순교가 해당 종교인들에게는 숭앙과 존경, 영광이 되겠지만, 객관적으로는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황사영백서 같은 경우, 백서를 통해 단지 박해의 실상만 전한 게 아니라 “청나라 황제에게 청하여 조선도 서양인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것을 요청하였고, 아니면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켜 감독하게 하거나, 서양의 배 수백 척과 군대 5만∼6만 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한 내용이어서 두고두고 논란이 되어 왔다.

법응 스님/ 한반도평화통일실천기획단장
세월호 참사로 나라 전체가 장기간 상중인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이다. 참사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조차 순조롭게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주교인들에겐 어찌 보면 영광이겠지만, 다양한 종교를 가진 다른 국민들에게는 위화감을 조성할 여지가 분명한 대규모 종교행사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에서 열린다. 여러 종교 단체 수장들이 교황 방문을 환영하는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는데, 마치 ‘국가적 행사’를 연상시키는 광화문광장의 이 시복식까지도 과연 진심으로 환영하는지 묻고 싶다. 꼭 광화문광장이어야 했을까? 정부는 반드시 허가를 해야만 했나? 국민의식에 반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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