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1 상수불학(常隨佛學)

南無至心歸命禮西方阿彌陀佛(一拜)

隨喜懺悔諸善根 廻向衆生及佛道

我隨一切如來學 脩習普賢圓滿行

勸脩淸淨波羅蜜 恒不忘先菩提心

滅除障垢無有餘 一切妙行皆成就

原共諸衆生往生安樂國

 

상수불학(常隨佛學)은 세 가지의 각기 뉘앙스가 다른 말로 풀이된다. ① 항상 부처님의 학문을 따라 배운다. ② 항상 부처님을 따라서 배운다. ③ 항상 깨친, 어진 이를 따라서 배운다.

앞에서 우리가 수희공덕(隨喜功德)을 배우고 참제업장(懺除業障)을 하고 그런 것이 모두 결국에는 무엇을 이룩함이냐 하면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중생과 전 인류가 달성해야 할 부처님의 과업을 위하여 그 도(道)를 성취토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는데는 우리가 모든 여래를 따라서 배워야 하고 또 모든 여래의 학문을 따라야 한다. (我隨一切如來學) 그럴려면 널리 모든 선(善)을 닦고 보현(普賢)의 행원(圓行), 즉 보현보상과 같은 원만한 덕행(德行)을 쌓고 익혀 나가야 된다. 여래수행(如來修行)을 해야 된다. 진실한 알찬 수행을 하고 불방일(不放逸)하고 근수청정바라밀(勤修淸淨婆羅蜜)한다. 부지런히 맑은 바라밀(婆羅蜜)을 닦아나간다. 우리는 깨쳐야한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늘 잊지 않고 수행하는 동안에는 우리를 가로막던 모든 때 끼인 것, 장구(障垢)가 죄다 없어진다. 그런 다음 부처의 학문을 따라 배우면, 부처의 행동을 따른 정진(精進)을 하게 되고, 그 행동이 모두 다 낱낱이 성취되게 마련이다. 부처를 따라 배운다고 하지만 그럼 부처란 무엇일까?

우리는 앞에서 내가 깨친다. 내가 똑바로 알고 깨쳐야 하고 또 남들을 깨쳐준다. 그리고 깨친 바를 행동으로서 실천한다고 이와 같이 배웠다. 우리말로 ‘깨친다’는 것은 붓다(Buddha), 즉 내가 불(佛)이다 하는 뜻이다. 불(佛)은 중국에서 각(覺)이라 하고 일어(日語)로는 사도루, 독일어(獨語)로 Erkenntnis가 이에 가깝고 범어(語覺)로 Buddha이다. 중국어로 각(覺)이라는 것은 學과 見이 합쳐서 된 것으로 보고 배웠다는 것이다. 일어(日語)의 ‘さとる는 さいとい’라는 말에서 되어진, 귀가 빠르다, 득 청각(聽覺)에서 비롯한 총명(聰明)을 뜻하는 말이다. 총명하다는 것은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

우리말의 깨쳤다는 것은, 누워 자다가 잠이 깨었다. 지금까지 꿈을 꾸다가 이에서 벗어났다. 이런 소리다. 또 하나는 달걀에서 병아리가 되었다 하는 말이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왔다. 즉 깨쳤다. 달걀이라는 막이 탁 터지어서 된 것. 잠 잘 때와 잠에서 깨친 때와, 그리고 달걀의 상태와 달걀에서 탁 깨쳐서 병아리가 된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귀로 듣고 알았다거나, 눈으로 보고 배우고 알았다는 등과 깨쳤다고 하는 것과는 척이나 대조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의 깨쳤다는 말은 확실히 중국어 일어와는 다르다. 부처는 되어진 것이며, 어디에서 되었느냐 하면 우리들 사람이 깨쳤으므로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처의 불을 이해하는데는 우리말의 깨쳤다는 것이 중국어나 일어보다도 훨씬 핍진하게 여실히 그려내었다.

수희(隨喜)와 참회(懺悔)라는,

중생과 부처에게 돌아가

배우려는 것.

모든 부처를 따라 배운다.

보현보살의 원만한 행동을

익힌다. 부지런히

맑은 바라밀(婆羅蜜)을 닦는다.

어진 마음으로

얽어매진 장구(障垢) 모두 말끔히 씻기어

착한 일 하던 행동,

끝내 하나하나 이루어진다.

 

여기서 ‘부처와 중생에게 돌아가’, 하는 회향(回向)이란 말은 앞에서 말한 오수의 한 단경인 십회향(十廻向)을 가리킨다. 오수는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지향(十廻向), 십지(十地) 등이다. 십지향까지 네 단계는 수행의 과정이다. 이를 간단히 풀이해 보자.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첫째 신뢰감이 가고 믿어져야 한다. 믿어졌다는 것은 그 믿음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단단하게 굳어져서 거기 있다. 그것으로서 생활한다. 그러니까 거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즉 신(信)에서 주(住)로 이행한 것이다. 단단하게 굳어져서 머물러 있다. 머물러 있다는 것은 다른 면으로는 수행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떠한 노릇을 한다. 실행한다. 하나씩 둘씩 실행한 그것을 잘했나, 되새겨 본다. 경험을 다시금 더듬어 본다. 앞으로 더 잘 해 나가야겠다. 한 일을 누구에게 돌려야겠다. 즉 잘된 일의 경험을 활용하게 모든 사람들, 중생들 전 인류를 향하여 다시금 크게 실천해 나가야겠다. 이것이 회향이다.

이렇게 보면 신(信), 주(住), 행(行), 회향(廻向)이 한 가지 같은 일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딴 말로 표현을 달리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이것은 다 같은 얘기다. 앞에서 말한 십지(十地)도 역시 같은 것이지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오수(五修)의 신(信), 주(住), 행(行), 회향(廻向), 지(地)는 다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같다고 통틀어 말해 버리면 수행자가 어리둥절하고 알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오수(五修)인 다섯가지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함으로서 좀 더 알기 쉽게 되었고 다시 이 다섯을 제가끔 열 개씩 세분하여 놨다. 그러므로 오수는 오십의 지위가 된다. 신(信)에 발을 들여 놓기 전의 범부는 일이고 신, 주, 행, 회향, 지(信住行廻向地)를 다 거쳐 오(五)십일이 되어 오수의 마지막인 등각(等覺)에 이르는데, 이는 부처와 꼭 같이 되었을 때며, 그 덕행의 과(果)가 가득 찼을 지경에 오십이로서 묘각(妙覺)에 달한다. 묘각이라 함은 부처님이다. 이렇듯 법무에서 불(佛)까지 오십삼(五十三) 위로 나누었지만 이것은 설명을 위한 것이지 이것이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수행하고 바라밀을 닦아

깨쳐 나가야한다

수행은 믿음이 근본이며

여기에 모든 과정이 들어있다

信·住·行·廻向은 같으며

무궁한 공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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