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漢岩) 선사의 편지 〈10〉

오해련 스님에게 보낸 답서(1)
보낸 편지는 잘 받았네. 새해에 법체가 청정하다고 하니, 기쁘기 그지없네. 나는 날이 갈수록 노쇠해 가고 있네. 늙으면 다 그런 것이니 이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대의 편지에서 “마음은 항상 공적(空寂)하니 범부의 마음을 몰록 제거하면 곧 불성을 본다.”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물어왔는데, 그 말은 사람마다 심성(心性)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어서 한 생각(망념)을 돌리면 곧 모두 부처와 같은 것이며,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비로소 중생이 본래 부처이며 생사열반이 마치 지난 밤 꿈과 같음을 알게 되는 것이네.
그리고 환(幻)인 줄 알면 곧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별도로 방편을 쓸 필요가 없으며, 환(幻)으로부터 벗어나면 곧 깨닫게 되기 때문에 점차(漸次, 漸修)가 없는 것이네. 이와 같은 법문은 자네도 이미 많이 보았고 알고 있을 터인데, 지금 문득 망념을 일으켜서 스스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또 스스로 장애를 일으켜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깨달음이라고 하는 이 일은 언어로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그러므로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부지런히 활구(活句)를 참구하되 너무 급하게도 하지 말고, 그렇다고 느리게도 하지 않는다면 묘미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니, 그것으로 스승을 삼아서 오래토록 불퇴심을 지켜서 10년, 20년 또는 일평생 공부한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세.
만일 별도로 공적(空寂)함을 구하고 별도로 안락함을 구하여 투철해질 것을 기다린다면, 이것은 마치 길 한 가운데(망상 속에) 있으면서 속히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깨닫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어리석음 속에 미혹함을 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만 줄이네. 정신이 흐려서 다 쓰지 못하네.
기축(1949년) 2월 초4일
사(師) 한암

이 편지는 한암선사가 열반(1951년)하기 2년 전인 1949년에 오해련(吳海蓮)스님에게 답한 편지이다. 오해련스님은 1950년대 통도사 강주를 역임한 분으로 한암선사를 매우 존경했다. 오해련스님의 기억력은 매우 탁월해서 강원의 학인들이 “스님, 이것이 무슨 글자입니까” 하고 물으면 “아, 그 글자는 화엄경 몇 권 몇째 줄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화엄경을 ‘척’ 열면 바로 그 글자가 있는 페이지를 보여 주었다고 하니, 가히 천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오해련스님이 “마음은 항상 공적하여 무릇 마음을 몰록 제거하면 곧 불성을 본다.”고 했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물은 듯하다. 여기에 대하여 한암선사는 “사람마다 본래 심성, 즉 본성을 갖추고 있어서 한 생각을 돌리면, 곧 모두 부처와 같고, 비로소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말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부지런히 활구(活句)를 참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활구를 참구할 때는 너무 급하게도, 또 느리게도 하지 않는다면 화두 참구의 묘미(妙味)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니, 그것으로 스승을 삼아서 오래토록 공부한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만일 별도로 공적(空寂)함을 구하고 별도로 안락함을 구하여 투철해질 것을 기다린다면, 이것은 마치 길 한 가운데 즉 망상 속에 있으면서 속히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깨닫고자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이 서간은 몇 년 전에 통도사에서 오혜련 스님이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중앙승가대학에 기증했는데, 그 속에서 발견되었다. 원본은 중앙승가대학 도서관에 있고, 월정사에는 복사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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