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 진/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단 본대 둥글래

성 유 진/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단 본대 둥글래
순례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순례가 끝나가는 요즘, 이제야 제대로 순례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낯설었던 ‘화쟁’,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길 위에서 얻어먹고 자는 생활들이 익숙해질 100일 무렵에 순례가 일단락된다. 순례단은 6월 10일 화쟁순례를 회향하고 나면, 길 위에서 경험하고 얻고 익힌 것들을 삶의 중요한 도구로 삼아 각자의 순례를 이어갈 것이다.

화쟁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떠돌이 생활이 익숙하지도 않았지만 순례길에 함께 나설 마음을 먹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법 스님께서 쓰신 <지금 당장,>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립과 갈등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치유해낼 실력이 있는 중재자 또는 조율자가 없다며 통탄하시는 대목이 나온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화쟁꾼’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갈등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들은 싸움꾼이 되고 만다. 밀양에서 자신의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시골할머니·할아버지들이 한 명 한 명의 전사가 되어 마을을 지키고 계신 모습을 봤다. 그 싸움에서 그분들을 버텨내도록 하는 것은 지금까지 시민사회에서 해온 연대의 방식으로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싸움을 멈추고 다시 이른바 일상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하진 못했다.

일면적인 평가일지 모르지만, 화쟁순례를 오기 전부터 수많은 한국사회의 갈등현장들을 보면서 느꼈던 한계다. 그것을 나 자신의 한계로 성찰하게 되었을 때, 도법스님의 통탄이 마찬가지로 나의 안타까움이 되었다. 그러나 나 또한 갈등을 중재하고 조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실력을 쌓는 길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갈등의 현장과 희망의 현장을 찾아가는 순례길 위에서, 도법스님과 함께라면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람들에게 ‘화쟁순례’를 했다고 하면, 순례 동안 화쟁을 널리 펼쳐 사람들을 감명시키고, 현존하는 첨예한 갈등을 뚝딱 해결해냈길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순례길에서 우리는 배우느라 바빴다.

소박한 삶을 이어가기 위한 바람이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는 안타까운 현장에서, 갈등과 대립이 사람과 사회에 얼마나 아픈 일인지 배웠다.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며 함께 싸움에 나선 사람들의 정의로움과 용기를 배웠다. 그러나 모든 싸움은 싸움을 끝내기 위해 시작된다. 싸움을 제대로 끝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짓밟는 폭력이 아닌, 어렵더라도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로 푸는 것만이 유일한 길임을 배웠다.

더불어 함께 살고자하는 마음에서 우리사회 누구나 화쟁의 씨앗을 품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의 모든 걸음과 배움이 ‘화쟁꾼’으로서의 실력으로 쌓였기를 빈다. ‘화쟁의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좋은 밭을 일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100일 간의 순례를 마음에 새기고자 한다.

#이 글은 순례단원 성유진 씨에게 부탁해 순례를 마치는 소감에 대한 원고를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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