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석주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석주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편지를 받은 지 몇 일이 지났습니다.
법체가 항상 만강(萬康)하시기를 빌고 또 빕니다. 병승(病僧, 謙稱으로 한암선사 자신을 가리킴)은 그럭저럭 지냅니다.
스님이 (은사스님 천도기도를 해 달라고) 보낸 돈 50원은 잘 받았습니다. 즉시 11일부터 날마다 한 번씩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고 축원했으며, 17일 날에 회향시식을 하고 대중공양을 했습니다.
이 말엽 오탁악세(五濁惡世)에도 스승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이가 없지는 않지만, 스님은 이와 같이 거액을 들여 스승(남전스님)의 천도를 지극 성심으로 하시니, 참으로 밝고 어진 벗이요, 선불자(善佛子)입니다. 모든 부처님과 여래가 다 알고 다 보시니, 어찌 말로 다 찬탄할 수 있겠습니까? 능히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道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면 결정코 평등정각(平等正覺)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 안에서 우리 석주스님과 같은 이가 능히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멀리서 우러러 마지않습니다. 오로지 법체가 내내 증진(增進)하기를 빕니다. 예의를 갖추지 못합니다.
병자(1936년) 6월 19일
한암 배사(拜謝)

이 편지는 한암선사께서 서울 칠보사 석주(昔珠, 입적) 스님에게 답한 편지로, 1936년 병자년(丙子年) 음력 6월 19일에 보낸 것이다.

석주스님의 은사는 근대 선승인 남전(南泉, 1868-1936) 스님이다. 남전스님은 선학원을 창건한 주역으로 일찍이 해인사 주지도 역임(1904년)한 분이다. 보기 드문 선필(禪筆)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남아 있는 글씨는 몇 점 되지 않는다. 1936년 4월 28일 서울 선학원에서 입적했다.
석주스님은 은사스님이 입적하자 왕생극락을 위하여 한암선사께 돈 50원을 보내 천도기도와 함께 상원사 대중들에게 공양 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한암선사는 “돈은 잘 받았고 그 즉시 11일부터 17일까지 매일 한 차례씩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고 축원했으며, 시식(施食), 회향을 한 뒤 대중공양을 하였다”는 것이다.
한암선사는 석주스님에게 “이 사바세계에 우리 석주스님과 같은 이가 능히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고 하여 은사스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孝誠)을 칭찬하고 있다. 모든 부처님과 여래가 다 알고 다 보시니 장래 반드시 평등정각(平等正覺)을 이룰 것이라고 수기(授記)하고 있다.
당시 돈 50원이면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거액’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 큰 금액이었던 것 같다. 1930년대 논 한마지기가 50원 정도였고, 보통학교 교사 한달 월급이 50원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경제 개념으로 거액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돈이 귀한 당시, 산사(山寺)에서는 적은 액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는 스승에 대한 석주스님의 정성을 칭찬하는 말일 수도 있다.
석주스님은 범어사 출신으로 서울 칠보사 조실로 계셨다. 한암선사의 애제자(愛弟子) 탄허스님과는 절친한 도반이었다. 말하자면 제자의 도반에게 답하는 편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끝에 ‘한암 배사(拜謝, 절하고 올림)’라는 인사말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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