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 4월 열린논단-정인재 명예교수(서강대 철학과)

도덕 본성 회복하자는 양명학
불성 근거해 부처이르는 불교처럼
양지 근거해 성인돼야 한다고 강조

▲ 정인재 교수는고려대와 동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타이완 중국문화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영남대 철학과 조교수를 거쳐 중앙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다. 한국양명학회 회장을 지냈다.

<내 마음이 곧 우주며 우주의 일이 내 마음의 일이라는 양명학. 유학의 주류를 형성한 양명학 발생에 불교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불성(佛性)과 양지(良知)’란 주제로 열린 불교평론 열린논단 속으로 들어가본다.>


동아시아 문명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문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도의 불교이며 다른 하나는 서양의 과학과 기독교입니다. 동아시아의 노장사상은 불교가 동아시아에 들어오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으며 유교사상은 불교와 노장사상의 영향으로 새로운 유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신유학은 공자 맹자 순자 등으로 대표되는 시원유학과도 다르고 특히 한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오경(五經)중심의 경전유학과는 차별화된 유학입니다.

신유학은 정욕에 얽매어 이기심에 가려져 있던 도덕적 본성(仁義)을 회복하여 인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번뇌에 얽매인 중생이 깨달음을 통하여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와 그 패러다임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죠. 신유학은 본성을 천리(天理)로 보고 불교의 공(空)사상과 도가의 무(無)사상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면서 탄생했습니다. 양명학과 주자학은 신유학의 중요한 두 흐름이죠.

주자학은 본성이 바로 천리라는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여 성리학 혹은 이학(理學)이라고 합니다. 양명학은 마음이 바로 천리라는 심즉리(心卽理)를 제창하여 심학(心學)이라고 하고요. 조선시대 사상과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정도전은 “불교는 심(心)을, 도가는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가르침인데 비해, 유학은 리(理) 즉 천리를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리는 심과 기를 아우르는데 반해 심과 기는 서로 포섭을 하지 못한다고도 했죠.

조선시대는 주자학을 정통으로 삼고 불교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억불숭유정책을 펼쳐나갔습니다. 주자학자들은 심지어 왕양명의 심학을 불교의 심학과 같은 이단으로 배척하였습니다. 이처럼 주자학은 불교에 대하여 배타적이었으나 양명학은 불교에 대하여 친화적이었습니다.

유학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내성은 자기의 인격수양에 힘써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것(修己)이며, 외왕은 수신(修身)을 통하여 가정(齊家), 국가(治國) 천하(平天下)를 안정시키는 것(安人 혹은 治人)을 말합니다. 유학의 성인은 인륜을 극진히 잘 발휘한 이상적 모델이 되는 사람을 말하죠. 격물, 치지, 성의, 정심 등의 내성은 불교 영향을 받아 신유학에서 깊이가 심화되고 넓이가 확대됐습니다.

<중국철학사>로 저명한 신리학자 펑유란에 의하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의 마음(心)은 mind였지만 이후의 마음은 Mind가 되었다고 하죠. 전자는 신체와 분리되지 않는 마음을 가리키고 후자는 그것을 초월한 마음 즉 큰마음(大心)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무한심의 자극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따라서 양명학의 선구자라고 하는 육상산(陸象山)은 내 마음이 곧 우주이며 우주의 일이 내 마음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은 우주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지라는 말은 맹자에서 유래하였지만 왕양명에 이르러 양지는 마음의 본체(心體) 되어 모든 것의 존재근거(天理)로 확대되었죠.

양명학이란 명나라 시기에 당시 부정부패로 얼룩진 혼란한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하여 왕양명(1472-1529)이 제창한 철학을 가리킵니다. 양명학에서의 공부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업적위주의 학문(爲人之學)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세워(立志) 훌륭한 인격을 완성함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을 말합니다.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이기에, 유학의 목표는 바로 성인이 되는 것이었던 거죠.

왕양명은 불교와 노장사상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상에는 불교와 가까운 점이 많이 발견되죠. 그는 양지를 설명하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든가 항상 깨어있음(常惺惺)이라는 불교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양지가 바로 성인문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유배지 생활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돌무덤까지 만들어 놓고 천명(天命)을 기다리다, 어느 날 격물치지의 뜻을 크게 깨달았죠. “성인의 길은 내 본성이 스스로 넉넉한데 이전에 사물에서 이치를 구한 것은 잘못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며 각도(覺道)의 체험을 생생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는 외적인 이치를 내적인 것으로 돌린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었습니다. 주자학은 마음 밖에 사물과 그 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명학은 사물이 나의 마음과 의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마음 밖에 어떤 것이 있다는 주장을 판단 중지시키고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다(心外無物) 따라서 마음 밖에 아무 이치도 없다(心外無理)”고 주장하였습니다.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명제는 외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를 들면 산 속에서 저절로 피었다가 저절로 지는 꽃은 그것을 보는 마음과 연관되었을 때 의미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했을 때 그 꽃이 존재하는지 않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판단 중지를 한것입니다. 의식 속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물(無物)이라고 말했던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물(物)은 마음과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의미 연관성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주자는 외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실재론자입니다. 주자는 격물을 “외물에 다가가서 그 이치를 캐묻는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따라서 격(格)자를 이른다(至)는 의미로 풀이하여 격물은 외물에 이르러 그 이치를 캐묻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왕양명은 이에 반대하며 격(格)이란 바로잡는다(正)라고 풀이하였습니다. 그는 ‘물’을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보고, ‘격’을 ‘바로잡다’로 풀이하였던 거죠. 다시말해 왕양명은 격물을 고정되어 있는 외물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활 속에서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는 것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왕양명은 어버이 자체가 일물(一物)이 아니라 어버이 섬김이 일물이요, 책 자체가 일물이 아니라 독서가 일물이라고 봤던거죠. 뉴스에서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을 종종 접할 수 있는데요. 그 아들에겐 시친(弑親)이 일물입니다. 잘못된 의도에서 생긴 행위를 바로잡아 바른 데로 돌리는 것이 바로 격물입니다.
왕양명의 철학은 치양지(致良知)로 요약됩니다. 이것은 양지를 현실 생활에 실현한다(致)는 말이요, 양지에 의한 행위 즉 양지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한다는 지행합일입니다.

그러면 양지란 무엇이며 지식 혹은 지각과 어떻게 다를까요? 우선 양지는 경험적 지식 혹은 지각에서 유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천적입니다. 그렇지만 지각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각과 함께 드러납니다. 둘째로 양지는 천리이며 상주불변하는 마음의 본체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과 좋고 싫음을 즉각적으로 아는 도덕적, 심미적 판단능력이자, 남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이것을 슬퍼하고 아파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보통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는 영특한 밝음이며 즐거움의 본체이기도 하죠.

이러한 양지가 구체적 행위로 드러나는 것을 지행합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양지를 현실생황에 실현하는 것을 치양지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식과 행위의 합일을 지행합일로 오해하고 있지만 이는 주자학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주자학에서는 지식과 행위는 언제나 둘로 나뉘어 있어 먼저 알고 난 뒤에 행위한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왕양명은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知行分離) 당시 지식인을 비판하기 위하여 지행합일을 주장한 것입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며 이는 외적인 지식으로 알았다하더라도 내적인 양지로 아직 깨우치지 못한 상태를 이릅니다. 외적인 도덕지식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각이 아직 안 되었다는 말이죠. 따라서 양지에서 나온 도덕적 자각이 더 근본적임을 역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 양지를 가리면 도덕적 자각이 생길 수 없습니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환하게 드러나듯이 욕심에 가려진 양지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치양지의 공부입니다. 우리가 본심인 양지를 잃어버리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히면 남을 해치고 심지어 골육을 죽이는 일도 생깁니다. 이러한 재해를 막으려면 양지를 되찾는 길 밖에 없습니다.

왕양명은 양지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묵좌징심(黙坐澄心), 둘째 성찰극치(省察克治), 셋째 사상마련(事上磨鍊)이 그것입니다. 처음에는 초학자를 위하여 정좌법을 가르쳤습니다. 불교의 좌선(坐禪)과 유사한 방법이었죠. 왕양명은 초학자들이 마음이 들뜰까 경계하여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혀 맑게 하는(黙坐澄心)’ 공부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다스리려고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온갖 잡념이 떠오르는데 이것을 끊기가 어려워지죠. 왕양명은 억지로 끊어버리려 하지 말고 욕심이 막 싹트려고 할 때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온 눈으로 살피고 온 귀로 듣고 있다가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자마자 바로 그것을 살피어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성찰극치의 방법입니다.

치양지의 방법으로 왕양명은 “그대가 조용히 마음을 기르는 것만 알고 이기적인 자기를 극복하는 공부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에 부딪쳤을 때 마음은 사욕에 기울어져 버린다. 우리는 반드시 일을 해가면서 자신을 연마해야 비로소 확고히 설 수가 있고 조용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움직여도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치양지는 조용함과 움직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에서 양지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치양지는 구체적인 일에서 실천되는 실학이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교는 불성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양명학은 양지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왕양명은 상주불변하는 양지를 마음의 본체로 간주하였으며 일점(一點) 영명(靈明)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지 만물이 이 영명을 떠난다면 천지 만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양지가 천지만물의 근거이며 또한 주재자라고 했습니다. 천리는 사람의 마음에서 끝내 없앨 수 없고 양지의 광명은 영원히 불변한다고도 했죠.

현대사회는 서양의 민주와 과학을 받아들여 새로운 신유학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동체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동체인 시민사회가 생겨나기도 했죠. 현대 양명학은 시민사회에 알맞은 새로운 외왕(新外王)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양명학과 융합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시민사회에서 남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 자율적 독립성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를 속이지 않는(無自欺) 양지를 자기가 하는 일에서 실현하는 것(事上磨鍊)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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