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a in Comic & Ani - ⑧ 테 웨이의 ‘피리부는 목동’

불교 심우도와 애니메이션의 만남
中 1세대 감독 테 웨이 역작 평가
수묵화 기법 사용 여백의 美 탁월

▲ ‘피리부는 목동’의 한 장면. 수묵화 기법을 사용한 애니메이션인 ‘피리부는 목동’은 불교의 심우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청허휴정(淸虛休靜)선사는 ‘인경구탈(人境俱奪, 인적 다 떨치고)’라는 선시에서 ‘牧笛過前山 人牛俱不見(앞산엔 목동의 피리소리 사람도 소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

이 구절은 불교의 ‘심우도(尋牛圖)’를 의미하고 있다. 그 중 휴정이 말한 부분은 소와 사람 둘 다 잊은 ‘인우구망(人牛俱忘, 소와 사람 둘 다 잊다)’에 해당된다. 이는 본성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를 모두 비웠으니 자타(自他)가 다르지 않고 내외(內外)가 다르지 않으니, 전부가 오직 공(空)이라는 뜻이다. 

불가의 심우도는 ‘선(禪)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화이다. 한국 사찰에서 한 번쯤을 보았을 법한 이 도상은 10가지로 구성돼 십우도(十牛圖)라고 불린다. 또한 중국에서는 소 대신 말을 등장시킨 시마도(十馬圖)가, 티베트에서는 코끼리를 등장시킨 시상도(十象圖)가 전해진다. 하지만 내재하고 있는 깨달음이라는 의미는 일맥상통한다.

심우도는 말 그대로 소를 찾는 이야기다. 단순한 듯 하지만, 이 안에는 수행자의 구도 여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심우(尋牛, 소를 찾는다)로 시작하는 심우도는 견적(見跡, 발자국을 보다)·견우(見牛, 소를 보다)·득우(得牛, 소를 얻다)·목우(牧牛, 소를 기르다)·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다)·망우존인(忘牛存人, 소를 잊고 사람만 남다)·인우구망(人牛俱忘, 소와 사람 둘 다 잊다)·반본환원(返本還源, 본래의 근원에 돌아가다)·입전수수(入廛垂手, 시중에 들어가 중생을 돕다)라는 10편의 그림이 게송과 함께 순서대로 이뤄져 있다.

중국 1세대 애니매이션 감독인 테 웨이(特偉)의 ‘피리부는 목동(1963)’은 불교의 심우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피리부는 목동’은 19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일반적인 셀 제작기법을 배제한 수묵기법을 이용해 발표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영화제와 시네마테크·전문 서적 등을 통해서 국내 애니메이션 관객들에게 꾸준히 소개돼 왔다. 동양화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독창적인 애니매이션 기법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깊은 주제의식으로 관객들에게 ‘말 없는 깨달음’을 전한다.

서양 애니매이션의 대표적 기법인 ‘셀 애니매이션’이 객관적인 대상의 형상을 재현하지만 중국 수묵애니매이션은 내재된 정신과 작가의 주관적인 정감표현을 중시한다.

이런 부분은 당대 서화론가 장언원(張彦遠, 815∼879)이 주장한 ‘의재필선 화진의재(意在筆先 畵盡意在, 정신이 붓보다 먼저 있어야하며, 그림은 다해도 정신은 남아있어야 한다)’는 미학적 개념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만화평론가 임화인 씨는 ‘피리부는 목동’을 “동양화의 넉넉한 여백미와 수묵화의 번짐 효과, 그리고 대사를절제하고 그 자리에 자연의 온갖 소리를 채워 넣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런 여백의 미와 번짐의 미학은 테 웨이 감독의 유연한 상상력과 더불어 나름의 주제의식을 담아낸다.

내용은 지극히 간단하다. 피리를 잘 부는 소년이 숲에 왔다가 잠든 사이에 소를 잃어버렸는데 결국에는 찾는다는 내용이다. ‘피리부는 목동’은 소를 찾아 집에 돌아간다는 ‘기우귀가’의 장면까지만 묘사하고 있다.

▲ 테 웨이 감독의 ‘피리부는 목동’ 한국판 DVD 표지.
구도의 중간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돼지만 작품 안에서 보여지는 메타포들은 매우 불교적이다. 먼저 소를 타고 오는 행위이다. 이는 심우도에서 소는 일체의 대립을 초월한 근원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즉, 소는 진여(眞如)이며 실재(實在)이다.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백미(白眉)이면서도 불교적 이미지를 담뿍 담고 있다. 소를 몰고 돌아오는 전원의 노을 진 풍경과 목동이 연주하는 피리 독주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멀어져 가고 있는 목동의 모습을 보고 있을라면,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 느껴진다.
심우도 ‘기우기가’를 표현한 게송은 ‘一拍一歌無限意 知音何必鼓唇牙(한 박자 한 곡조 마다 무한한 뜻이 담겨 있으니 곡조를 아는 이가 어찌 헛된 말 하리)’라고 묘사한다. 소를 찾아 어딘가로 향하는 목동의 구멍 없는 피리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작품에서 목동은 피리소리로 소를 찾았다.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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