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선지식 해안 스님 40주기… ‘생전장례식’ 재현 화제

2014년 4월 6일 해안 스님 열반 40주기를 맞아 전북 부안 내소사서 재현된 생전장례식 모습
“이것이 무엇인고 사대가 흩어지면 내 몸이 없어지고 마음인들 어찌 멸하지 않겠는가 몸도 마음도 모두 환(幻)이라 이제 다시 무엇이 있으랴.”

호남 선맥의 큰 기둥이었던 해안 스님의 생전장례식이 53년 만에 재현됐다. 한국불교사에 유례없는 이번 장례식은 1961년 해안 스님의 회갑일 열린 생전장례식을 스님의 열반 40주기를 맞아 재현한 것이다. 죽은 이가 타야 하는 상여를 산 사람이 타는 이날 생전장례식은 영상으로 녹화돼 다큐멘터리로 제작된다. ‘생전장례식’에 동참하기 위해 스님의 상좌 서울 전등선원 선원장 동명 스님을 비롯한 500여 스님들과 스님이 생전에 지도했던 전등회 회원 등 전국각지에서 700여 불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생전장례식에 앞서 해안 스님이 조실로 주석하던 내소사 지장암 서래선원에서 7일 간 용맹정진하기도 했다.

동명 스님은 생전장례식 재현에 앞서 “오늘 우리들은 해안 스님이 남기신 생생한 가르침과 그 삶을 따라가려한다”며 “우리들의 삶을 반추해보며 또한 계기로 삼자”고 말했다.

1961년 해안 스님의 뜻에 따라 살아계실 때인 회갑일에 열린 생전장례식 모습.(동명 스님 제공)
생전장례식은 반야심경을 비롯한 간단한 불교의식과 함께 동명 스님이 지장암 서래선원 앞에서 해안 스님의 진영에 예를 올린 뒤 상여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생전장례식에서 조계종 어장 동주 스님, 화암 스님, 현각 스님이 인례한 꽃상여는 지장암 서래선원을 떠나 일주문을 돌아 부도전을 향했다. 이는 53년 전 해안 스님이 회갑을 맞아 스스로 마련한 장례행렬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휴일을 맞아 내소사를 찾은 참배객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이 행렬을 지켜봤다.

동명 스님은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을 거쳐 부도전에 이르는 동안 생전 해안 스님이 지은 열반가를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했다.

열반가는 무상의 가르침을 담은 것으로 세속의 일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기를 당부하는 말이었다.

재현 장례식에는 500여 스님들이 참석했다.
꿈이로구나, 꿈이로구나
사대(四大)가 무너지니,
육근육진(六根六塵)도 없어지네
나무아미타불

허망(虛妄)하네, 허망(虛妄)하여
환진(幻塵)이 없어지니,
환심(幻心)도 없어지네
나무아미타불

선운사 승가대학원 학인 스님들이 멘 꽃상여 뒤를 내소사 봉래선원장 철산 스님, 내소사 주지 진학 스님,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 내장사 주지 혜산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과 전등회 회원 등은 생전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부도전에 당도한 꽃상여에서 내린 동명 스님은 부도전에 올라 해안선사 열반 40주기 추모 다례재를 봉행했다.

은사 스님의 장례행렬을 재현한 동명 스님은 남다른 감회에 북받친 듯 했다.

1961년 당시에는 내소사 1㎞ 인근에 1000여 명이 모여 스님의 생전장례식을 함께 했다.
다례재를 마친 동명 스님은 “은사스님의 진면목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고 싶어 생전 장례식을 재현하게 됐다”며 “다소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님은 “해안 스님께서 생전장례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셨다. 특히 제자들에게는 상여를 만들어 이제 세상에 나오지 않음을 밝히셨다”고 말했다.

해안 스님은 1901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해 1917년 장성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27년 내소사 주지를 역임했다. 스님은 1932년 내소사 앞에 계명학원을 설립해 무취학 무학성년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운동을 벌였으며, 1945년 금산사 주지, 1946년 금산사 서래선원 조실로 추대됐다. 1931년 월명선원에서 수선안거이래 36하안거를 성만한 스님은 1974년 내소사 서래선림에서 열반에 들 때까지 올곧은 수행으로 제방의 모범이 되었고 재가자선방과 불교학교를 설립해 재가자수행과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금강경 해설 등 스님의 법문은 지금까지도 명강의로 전해지고 있다.

 

동명 스님의 은사인 해안 스님 영정사진

 

 


“은사 스님 가르침 널리 펼 것”
서울 전등사 전등선원 동명 스님

“해안스님께서는 장사하는 사람이든, 농사짓는 사람이든, 스님이든, 누구라도 1주일만 수행 정진하면 도(道)를 깨달을 수 있다며 정진을 강조하셨다”며 “지금 비록 은사스님은 가시고 없으시지만, 53년 전 스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여러 스님들과 함께 걸으며, 삶이란 이런 것이 구나를 느끼게 됐다고 하셨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어 “선원사 대중과 내소사 스님들을 비롯해 각처에서 참석해 준 스님과 불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날 동명 스님은 해안스님의 생전장례식이 은사의 발자취와 가르침을 온전히 계승하여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로서 스님이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싶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스님의 가르침을 되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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