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그러워야 몸도 너그러워지고 가정도 편안해집니다

▲ 그림 최주현

정말 진짜로 가는 곳곳마다 그렇게 웃고 사세요
그냥 막 우그러져서
즉, 조상이라든가 무슨 일이 있어서 집안이 낭가가 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빨리빨리 생각나는 대로 펴야지,
우물쭈물하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는
펴지도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문)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른 믿음을 갖고 참된 도의 길을 갈 수 있는지요?

답) 우리가 지금 종교라고 해서 믿고 다닌다 이런 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종교를 믿는 게 아니에요. 우리 자신들, 이 껍데기인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살고 있고 이끌어 가는 내가 있으니까 꼭 그것은 서로가 상봉하고 받아야 되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믿어야 되겠다. 믿지 않는다면 나를 누가 믿으며 내가 딴 사람을 누구를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를 내가 믿어서 발견할 수 있는 거. 진짜로 믿지 못한다면 모든 게 허사죠. 이 세상에 모두 믿을 거는 나 하나를 잘 믿을 수 있어야만이 전부 믿을 수 있게끔 자연스럽게 그렇게, 일로 가는 길도 일로 올바르게 가게끔, 자동적으로 되게끔 이렇게 마련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법이 얼마나 자동적이고 얼마나 신비한지, 정말이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신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에 가 보시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다 이렇게 살아 보시지만, 인생은 살아 보면 살아 보는 대로 맘대로 말할 수도 없고 맘대로 들을 수도 없고 맘대로 할 수도 없고, 만날 갇혀 있는 거나 같습니다. 여러분이 항상 곳곳마다 가는데 누구를 만나는 데마다 섭섭지 않게 하고 섭섭지 않게 행동하고 항상 웃고 말할 수 있고, 어떠한 성낼 일이라도 성 안 내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혜입니다. 모두 여러분이 지혜로워서 성내고 말할 거를 성 안 내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길이 잘 가지 못하게 돼 있는 거를 아주 평탄하게, 판판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이 마음으로 길을 만드는 것은 마음대로 길을 만들 수 있다 이 소립니다.
우리가 파고 자르고 모습으로 이렇게 하면서 길을 내는 거는 길 만들기가 상당히 어렵지만 그것은 내가 진짜 살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 사람 공장에서 하는 일이죠. 이 지구가 사람 만드는 공장이라면 말입니다. 사람 만들어질 때까지 얼마나 겁을 지내면서 고통을 받는 줄 아십니까? 사람 돼 가지고만 고통 받는 게 아니죠. 수없이 모습을 바꿔 가면서 나왔는데 또 다시, 또 다시 우리가 이 공부를 우습게 생각하고 해서 지금 살아서 느껴보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해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그냥 도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모습을 가지고 또 나온다면 그 모습을 벗기 위해서 또 앨 써야 되니까요.

아주 쉽게 생각하면 자길 믿어야 부처님이 믿어지죠. 그렇죠? 부처님이 그러시더랍니다. “얘야, 아픈데 일어나지 마라. 내 모습을 보고 일어나지 마라. 네가 너를 진짜로 믿는다면 나의 모습 없는 나도 네가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도 진짜 그냥 우습게 생각하고 ‘인생은 사는 게 이런 거야.’ 하고 그냥 그렇게만 하고 가신다면 정말 인생은 거듭거듭 찾지 못해요.
진짜 돈을 쥐고 다니면서 나를 찾으려도 찾을 수 없고 내 자리를 찾으려도 찾을 수 없어요. 여러분의 자리는 이 우주 허공 중에 어떤 자리도 내 자리 아님이 없는 거예요, 알고 본다면. 그런데 그걸 몰라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수레바퀴에 그냥 엉걸려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우리가 그 도리를 안다면, 우리 지구의 에너지가 다 없어져서 인제 수억 년을 가면서 에너지가 된 거를 우리가 그냥 쓰고, 쓰고만 사니깐 없어질 수밖에요. 그런데 우리 마음공부는 이 지구의, 즉 말하자면 벽을 벽이라고 생각 안 하거든요. 이런 문도 문이라고 생각 안 하거든요. 그래서 문 없는 문을 알아야 된다. 이 보꾹도 문이고 이 천장도 문이고 다 이게 문이 아니 될 수 없죠. 글쎄 어디든지 그렇게 내가 자유스럽게 발판을 디딜 수 있다. 허공도 딛고 날 수 있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자유스러운지 모든 걸, 그걸 말로 어떻게 다 하리까. 말로는 다 못해요. 여러분이 보지도 못하고 먹어 보지도 못하고 해 보지도 못했으니까 거짓으로 생각할 거거든요. 그러니깐 그것을 말로 다 못해요. 그러나 여러분이 할 양으로 애를 쓰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겁니다.
정말 진짜로 가는 데마다, 곳곳마다 남을 만나는 데마다 그렇게 하라. 그렇게 웃고 살아라. 그렇게 빨리빨리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막 우그러져서, 즉 말하자면 조상이라든가 무슨 일이 있어서 집안이 낭가가 났다 이러더라도 빨리 펴라. 빨리 펴야지 그걸 우물쭈물하고 이거 생각 저거 생각 하다가는 펴지도 못하고 그거를 해결하지도 못해요.

그래서 몸은 여기 있더라도 저 어디에 무슨 일이 있다 이럴 때도 그냥 거기 가서 해요, 그냥. 여기다 하면 거기 내 몸이 열로 변경을 해서 하더라도 다 할 수 있으니까. 내 몸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나무라도 인연이 있으면 모습이 돼서 다 서로가 맞먹어 들어가니까. 이 소리 거짓말로 알지 마세요.
그래서 여러분이 경을 보고 외로 꿰고 바로 꿰고 안다 하더라도 그거는 도가 아니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치가 이거를 알아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게 물질세계가 50%라면은 무의 무심세계가 50%입니다. 무의 세계의 무심. 그런데 언제나 내가 있는 데에 있는 거지 내가 없는 데에 있는 게 아닙니다. 모두 각자 내가 있기 때문에 불성이 있는 거고 자불이 있는 거고, 그 자불이 자기가 알아지면, 상봉을 하게 되면 연등불이 되고 그렇게 화합니다. 그런 수없이 말로 형용할 수 없고 생각으로 형용할 수 없는 일들을 그렇게 아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이치. 어떻게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자문자답 하는 식으로 공부하는데…
문) 큰스님께서 어린 시절 ‘아빠’와 대화하면서 주인공의 이끄심을 받았듯이 저도 제 자신과 자문자답하는 식으로 공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묻는 것도 제가 묻고 대답도 제가 하는 건데 그 대답이 진짜 주인공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자문자답 하는 방법이 바른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 처음에 애기가 걸음마 떼어 놓을 때에 뭐, 잘 걸을 줄 알고선 걸음마 떼어놓습니까? 넘어질 줄 알고 걸음마를 떼어 놓나요? 그냥 넘어지든지 안 넘어지든지, 잘되든지 못되든지 그냥 놓고 걷는 거죠. 그냥 걷다 보면 아주 잘 걸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문자답, 이것도 쓸모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자문자답이라는 거 말로 자문자답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누구나가 영혼이 자기한테 다 있습니다. 생명의 근본 불성이 다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모든 걸 포괄적으로 하나로 놓고 생각을 할 때에, 생각을 하고 바깥의 문제들을 가만히 보라 이겁니다. 그럴 때 내가 어디 서야 옳을지 어떤 걸 해야 옳을지 그것이 나옵니다, 답이. 답이 나오는 것도 사량으로 해서 내가 생각하는 거라고 믿질 마세요. 모든 거는 그놈이 하는 건데, 거기서 다 나오는 건데 어떻게 아니라고, 믿을 수가 없다고 하느냐 이 소립니다.
그래서 이 눈이 밝아야 된다, 귀가 뜨여야 된다 이 소리는, 모든 바깥 경계를 잘 봐서, 내가 개천에 발을 떼어 놔도 개천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돼 있나, 그걸 잘 봐서 떼어 놔라 이거예요. 그래 떼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 그냥 떼는 것이 법입니다, 그냥.

예를 들어서 ‘내가 깨닫지도 못하고 자문자답을 하니까 이거는 아니지.’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모든 거 거기다 놓으세요. 이거는 포괄적인 마음이다 이겁니다. 한마음, 이 주인공에다가 아주 진심으로써 거기다 맡겨 놓으면서 생각을 딱 해 보면은, 바깥 경계와 안 경계를 다 잘 봐서 이렇게 생각을 할 때 그게 바로 법이에요. 그렇게 가다 보면은, 모든 걸 거기다 맡기고 가다 보면은 이건 걸음이 점점점점 빨라져요, 걸음을 못 걷다가. 그게 실험이고 체험하는 거죠.
그러니까 처음부터 직접 믿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고, 정말 그럴까? 이럴까?’ 하고 망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예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가 하난데도 둘로 보고, 이거는 아주 막무가내 고집을 부리는 거죠, 마음으로. 이런 사람이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무조건 자기 끌고 다니는 자기, 수억 광년으로부터, 미생물에서부터 끌고 진화시킨 그 주인을 어째서 믿지 않고 그러느냐 이겁니다. 진짜로 믿고, 이걸 깨치지 못했어도 진짜로 믿고 거기에 놓고 생각하면은, 하면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진짜 믿질 못하고 ‘응, 한마음 주인공에다 놓고 하라니깐 뭐 그렇게 해 보자.’ 이렇게 하는 거는 아니올시다예요.

그러니까 진실히, 한 달이라도 아주 굳건히 자기를 믿는 데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마음이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업보가 두터우면은 생각`하는 것이 자꾸 비양심적으로만 생각이 가고, 자꾸 마음이 두꺼워지죠. 왜냐하면 ‘정말 그럴까?’ 하는 거예요. 믿지 못하는 거죠. 자기를 자기가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습니까. 허공을 믿을 겁니까, 형상을 믿을 겁니까, 이름을 믿을 겁니까. 모든 것을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한마음, 이 수억 개가 보살로 화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 영혼을 건진다면은 바로 그냥 화하는 거예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데서도 리드해 나가면서, 커버해 나가면서, 레이더망이 모든 걸, 들어오는 거 나가는 거 다 체크해서 책정하듯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 누진이 말입니다. 이 두뇌에서. 그래서 안에서 일어나는 것도 두뇌에서, 또 무전통신기로서 다 사대로 통신을 하고, 바깥으로도 통신하고 안으로도 통신하고, 체크하고 결정짓고 이러는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우주 삼라대천세계하고도 이건 직결이 돼 있어요. 일체 모두가 이 인간의 마음에 직결이 돼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진실한 믿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시는데
문) 공부하시는 분들은 순간 순간 지금 현재에 충실하라 하시지만 저희 중생들은 다가올 재난에 미리미리 대비를 해 둬야 마음이 편안하거든요. 그런데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열심히 살라 하시니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답) 여러분이 사시는 일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요, 쓸데없이 생각해요. 사람들이 살아나가면서 그저 살아오던 생각을 하고, 예를 들어서 뭐 이사를 가도 뭐를 봐야 한다. 어디로 가야 되나. 뭐 동서로 가야 되나, 남으로 가야 되나, 북으로 가야 되나 이런 것도 보고요. 그것뿐만 아니라 살아나가는 데 24시간에 우리에 해당한 것이 이렇게 오게 되면은 벌써 낌새가 옵니다. 이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뜻이 옵니다. 이 뜻이 오면은 거기에 대해서 대책을 세워라 하는 것이 그냥 생각을 하지 말고, ‘그거 오면 어쩌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 마시고, 그냥 한생각으로 그냥 공식으로 해 버려라 이겁니다. 한생각으로 공식으로 해 버려라. 살생이 닥쳐올 때는 공생으로 해 버리고, 또 근심이 닥쳐올 땐 공심으로 해 버리고, 또 무슨 몸의 해로운 일이 생기겠다 하는 그런 일에는 그저 공체로 해 버리시고요. 그러고서 무슨 일이 닥쳤다 하면은 공용으로, 그냥 생각을 공용으로 하고. 조그만 거라도 공용으로 하세요, 그냥.

그래 한생각이면 그저 내일 생각은 할 필요가 없죠. 오늘 생각을 하면 내일까지도 가고 모래까지도 가고 이렇게 그냥 가다가 생각이 나면은 하시란 얘기입니다. 미리미리 생각을 하고 그냥 애타고 조리고 그렇게 하면 사람 몸만 병나지 애당초에 그게 안 됩니다. 그러고서 속이 타면은 제삼자더러 자꾸 말을 해야 되거든요. 뭐 말을 하고 그냥 이렇게 되니까 신경질이 나고요. 그러니까 그러지 마시고 편안하게 내일 살 거는 내일 걱정을 하고 오늘 살 거는 오늘 한생각으로 그냥 해 버리시란 말입니다. 그러면은, 정말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아시게 됩니다.

어떤 땐 내가 되돌아가서 생각을 해 봅니다. ‘너는 그렇게 살고 있느냐.’ 하고요. 그런데 나는 그렇거든요. 전 그렇게 미리미리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내일 모래 할 건데도 오늘 그냥 한생각으로 그냥 뭉그뜨려 버려요, 그냥. 그러면 그 날이 닥쳐오면 그 날 그냥 닥쳐오는 대로 이 아래 분들이 하고요. 그러니까 걱정하실 거 하나도 없어요. 사는 거요, 죽을 먹든지 밥을 먹든지 걱정하고 잡숫지 마세요. 그저 편안히 하고 잡수시면은, 먹을 게 없어서 한 말 가지고 요걸 어떡하나 요럭하고 잡수시고 그러면은 만날 한 말이 되다가 닷 되도 되고 한 되도 되고 이래요. 그렇지만 걱정 없이 그렇게 관하시고 사신다면은 한 가마가 생겨요. 그렇게 사세요. 이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도 너그러워지고 몸이 너그러워지면 가정도 편안해져요. 그런데 자꾸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못 견디게 굴면 못 견딜 일이 자꾸 생겨요. 정말입니다.

결혼한 자식에게 살짝 배신감이 들어요
문) 부모에게 그렇게 잘하던 아들이 결혼하고 나니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 아주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살짝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마음 들키기 싫어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아직도 자식에 대한 착이 많나 봅니다. 이 착이 딱 떨어질 수 있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여러분이 그대로 사시면서 사랑을 하는 것도 진짜 착을 다 떼고 모든 것을…. 착을 떼라는 건 ‘그도 주인공 있고 나도 주인공 있으니 주인공만이 이끌어 줄 수 있다.’ 하고 탁 맡겨 놓으면 떼는 겁니다. 그렇게 해 놓고 난 뒤에 그렇게 하면은 바로 좋은 말을 해 주고, 또 아주 만나면은 자식이 잘못했다 잘했다 이런 거 없이, 아무리 나를 배신을 했다 할지라도 좋은 말을 해 주고 따뜻하게 해 준다면 바로, 바깥에서 추우면 따뜻한 데로 고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도 망한 자식을 뒀어도 아주 나중에는 효자고 충성하고 아주 정의 정당 하게, 정말이지 인간의 그 진리를 알아서 탐구해서 잘 나갈 수 있는 그런 법의 자식이 될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모든 착을 떼어 놓고 사랑을 하고 좋은 말을 해 주고, 밉다 곱다 이런 것도 생각 말고 그저 만나면 좋은 말 해 주고 “얘! 굶지나 않고 다녔니? 나가서 며칠 밤이 됐는데 어디 가서 그렇게 잘이나 먹었는지, 굶지나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아무리 미운 생각이 들어간다 할지라도 여기다 탁 내던져 버리고 그렇게 말을 해 주면 자각심이 생깁니다. ‘아! 내가 이럭하고 왔는데도 어머니가 이렇게 야단을 치시지 않고 좋은 말을 해 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에서, 때로는 언젠가는 그런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줄줄 흐를 겁니다. 그때에 바로 착해지는 겁니다. 남편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역시 다 똑같습니다. 그렇게 말을 해 주고 그렇게 행을 해 준다면 그게 금방 고쳐집니다. 여기에다가, 바로 밉더라도 여기다 팽개쳐요. 여기서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요, 맡겨 놓고 하신다면 여러분이 정말 이 세상에 얻다 내놔도 떳떳하고 당당하고, 그렇게 인간으로서 자유자재하면서 아래로는 자식을 새 빛을 줄 수 있고 또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위로는 다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위로 묵은 빚 갚고 아래로 햇빛을 줄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살아 보시죠. 야, 자식들을 길러 놓으면 그렇게 부모는 100%를 다 줄 수 있지만, 용서할 수 있고 잘못하는 것도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자식은 그렇게 부모한테 할 수 없습니다. 그게 아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진리가 그러하지 않을까 봅니다. 그러니 그거를 믿고 또 억울하고 분하고 그렇게 생각 마시고 ‘으레 그러려니. 나도 자식 노릇을 했더니 그랬더라.’ 한번 뒤돌아볼 수 있는 그러한 생각을 해 보시면서 잘못해도 용서할 수 있는 그 마음, 아량과 지혜를 갖는다면 증오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고 분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착을 그렇게 떼고 사는 사람은 분할 것이 그렇게 없지만 그냥 100% 착을 가지고 ‘내가 너를 어떡해서 길렀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길렀는데 너 장가들고 이렇게 나를 버렸느냐 하는 그 ‘배신했다’ 또 나쁘게 ‘전 같지 않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하신다면 바로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일이요, 그 귀여운 자식을, 얼구절구 기른 자식을 자꾸 속상하게 만들어 주고 오래 살지 못하게 만들어 주는 길입니다. 진짜로 사랑한다면 자비롭게 하십시오. 진짜로 사랑한다면 놔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언니와 사이가 안 좋아요
문) 저에겐 이복 언니가 있는데 사이가 참 안 좋았습니다. 하는 일마다 밉고 안 좋은 마음만 내게 되고 그랬는데 지금은 서로 결혼하고 떨어져 살아서 만날 일은 많지 않지만 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고 슬퍼집니다.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하는 건지요?

답) 내 한마음이라는 그 자체는 모든 내 몸속의 의식이 한데 한마음으로 뭉친 거고 우주하고도 같이 이렇게 뭉쳐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그 자가발전소에다 모든 거를, 그 불에다가 그냥 모든 거를 거기 맡겨서 태우세요. 생각나는 대로 ‘어유, 둘이 아닌데, 뭘. 둘이 아닌데. 너 모든 게 이렇게 잊어버려지고 지워 주는 것도, 녹여 주는 것도 그냥 둘이 아닌 까닭에 녹여질 수 있잖아.’ 하곤 그냥 그렇게 놓으세요. ‘둘이 아닌 까닭에 녹여질 수 있잖아.’ 하고요.
슬플 때가 있어도, 생각이 난다고 걸리지 마시고요, 생각이 나걸랑 생각이 나는 대로 생각하세요. 하되 거기서 ‘둘이 아닌데…. 우리가 한 식구가 돼서 산 것도 둘이 아니요, 모두가 이 세상만사가 전부 둘이 아니게 돌아가는 이치인데, 그러니까 둘이 아닌 까닭에 녹아질 수 있지 않느냐.’ 하고 거기다 맡겨 놓으세요. 그저 여러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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