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님의 침묵’과 오세암

1925년 여름 설악 오세암서
‘님의 침묵’ 80수 속성 탈고
옥고 중 면벽 수행 詩作 영향

민족사에 길이 남을 詩로 평가
‘님’, 민중·불타 등 다중적 의미


▲ 충남 홍성 만해문학관에 만들어진 오세암에서 시 창작을 하고 있는 만해 스님의 모형. 만해 스님은 1925년 8월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
1925년 중년의 만해 스님은 다시 설악산 오세암으로 돌아온다. 지척의 백담사가 출가의 길을 걷게 한 곳이라면 오세암은 만해 스님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곳이다. 3.1운동 주도한 이후 3년 간 옥고를 겪었던 스님이 오세암을 찾은 것은 출가 초심을 다시 되짚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스님은 오세암에 들어온 후 장경각에 있는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곳에서 만해 스님은 매월당 김시습의 〈십현담 주해〉를 발견한다. 〈십현담〉은 동안상찰 선사의 법문으로 뜻이 오묘해 초학자가 읽기에는 어려운 편이다.

김시습의 〈십현담 주해〉를 읽은 만해 스님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집필 작업에 들어간다. 결국 그해 6월에 만해 스님은 〈십현담 주해〉를 완성한다. 불이 붙은 집필 욕구는 시작(詩作)으로 이어졌다. 염천(炎天)의 여름, 만해 스님은 〈십현담 주해〉를 완성한지 2달만에 ‘님의 침묵’을 비롯한 시 80여 편을 탈고한다.

속성으로 시를 창작할 수 있던 것은 갑작스런 감흥이 영향이었다는 주장과 오랜 시간 사유와 천착이 바탕됐다는 시각으로 나뉜다.

고은 시인의 경우 만해 스님의 ‘님의 침묵’ 탈고는 하루만에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고은 시인은 “그의 시작철은 그 시의 초고들을 잔뜩 싣고 있다가 그것에 갑작스러운 감흥의 영감이 불을 질러서 하룻밤의 깊은 내설악의 어둠에 쌓인 그의 산중밀실에서 완성됐다”고 기술해놓고 있다.

반면 이명재 중앙대 명예교수는 탈고 1년 전부터 초(草)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3.1 운동으로 3년간의 옥고를 치르면서 거작(巨作)를 만들 수 있는 사상적 천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자신의 논문 ‘한용운 문학 연구’에서 “3년에 걸친 옥중 생활에서 동지나 후배들이 차입해주는 서물(書物)에서 한시와 불서 이외의 근대문학이론이나 작품은 물론 구미의 신문학을 불규칙한 접근방법으로 대해오던 미흡성을 보완할 수 있었다”면서 “아마 여기에서 만해 스님은 ‘님의 침묵’의 테마와 감정적 주조의 틀이 잡혔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순간의 감흥이던 오랜 사유와 천착의 결과이던 만해 스님은 1925년 8월 29일 오세암에서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한다. 수행자이자 불교 개혁가,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해오던 스님이 40대의 끝자락인 47세에 시 창작의 욕구를 보이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 님의 침묵 표지
적지 않는 논자들은 스님이 시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중생을 위한 마음과 깨달음을 우리 말로 노래하고 싶었던 문인의 욕구가 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님의 침묵〉의 서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군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의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을 위해’라는 기독교적 문구마저 차용하면서까지 만해 스님이 강조한 것은 이 시집을 발간한 이유가 번뇌와 불안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구제함에 있다는 것이다. 불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중생구제와 같은 애민(愛民) 정신의 발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된 시는 ‘님’을 중심축으로 구성됐다. 최동호 고려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님의 침묵〉에 나타난 호칭은 당신(39편), 님(36편), 너(2편), 그대(2편), 애인(1편), 무호칭(6편)으로 정리될 수 있다. 당신과 님이 중점적인 호칭으로 사용됐지만, 결국 ‘님’은 이 모두를 포용하는 호칭이다.

그렇다면 만해 스님의 ‘님’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역시 만해 스님의 문학을 연구하는 논찬자마다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부여한다. 앞서 〈님의 침묵〉을 분석한 최동호 교수는 “당신·님·그대·애인 등 호칭은 달라도 만해에게 ‘님’은 민족·조국·민중·불타·중생 등 바로 그 모근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님의 침묵〉은 기다림의 시학”이라고도 평가했다. 스님의 문학 속 ‘기다림’은 조선시대 정철의 ‘사미인곡’과 같은 권력자를 향한 충절이 아닌 떠나간 조국을 찾기 위한 민족해방의 기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님이 떠나감을 부정함으로써 만해 스님의 기다림은 역설적인 출발점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최 교수의 연구를 대표적으로 인용했지만 ‘님’이라는 한 글자가 만들어낸 해석의 스펙트럼은 실로 다채롭다. 故 장백일 국민대 명예교수는 〈한국현대문학론〉에서 만해 스님의 님에 대해 “불타 정신에 뿌리 박은 조국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조종현 시인은 ‘절대 자유’ 곧 ‘진아’로, 김종균은 ‘민족과 불타를 일체화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오세영 서울대 교수는 “열반의 경지에 들게 하는 참다운 무아(無我)”라고 님을 해석했으며, 김홍규는 “님은 완전한 모습으로 이 세계 안에 존재하지도 전혀 부재하지도 않고 그 것을 갈구하는 자의 끊임없는 예기(豫期)와 모색의 실천 속에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봤다.

▲ 오세암 전경. 이곳에서 만해 스님은 〈십현담 주해〉와 〈님의 침묵〉을 썼다.
이 같이 다양한 논찬들이 있을 정도로 만해 스님의 〈님의 침묵〉이 가지는 문학사적 가치는 크다. 만해 스님의 시 전편을 해설한 故 송욱 서울대 교수는 만해 스님 시의 가치를 이 같이 평가한다.

첫째로 만해의 시는 시문학사에서 가장 높고 넓으며, 깊은 인간을 표현한 작품이다. 둘째로는 그의 산문시가 현재 이 나라에서 시로서 표방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절실한 시를 싱싱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학평전(1963) 中〉

그러면서 만해 스님은 시대의 아픔을 황금을 빚어내는 도가니로 만들고 이를 통해 나타난 〈님의 침묵〉시집 자체가 하나의 이변이라고 경외하고 있다. 어린 아이도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님’이라는 단순하면서 다양한 시적 상징체계로 대학교수마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도 만해 스님의 시학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불교대전은 3.1운동, 즉 일제의 굴레를 태우려는 겁화 속에서 〈님의 침묵〉이라는 황금 꽃다발로 이변했다. 따라서 이 시집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나 두려워할 수 있는 대장경이기도 하다. ‘님’이 불교의 진리를 말한다고 함은 바로 이런 뜻이다. 이 시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변이며, 또 읽는 이에게도 어떤 이변을 빚어내니까 말이다.  〈송욱, ‘시인 한용운의 세계’ 中〉

오세암은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관음영험설화를 창건설화로 가지고 있다. 〈님의 침묵〉이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기는 것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만해 스님의 원력이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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