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빛깔도 없는

원래의 이 자리는

‘영생불멸’을 의미

나도 난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철야정진법문 ⑥

사실로 여러분의 몸뚱어리 걷어잡고 얘기를 해봤든 얘기 안 됩니다. 그건 무정물이거든.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 몸뚱어리가 무정물이라는 것만 여러분들이 납득이 가면 자연히 문제 해결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머리가 좋은 사람은 사흘 안에 된다고 했어요. 사흘 안에 견성한다 이래 했어요. 도를 이룬다. 또 조금 미하면 석 달, 그 다음에 삼 년. 천하 없는 바보라도 삼 년이면 된다 이래 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벌써 불문에 들어온 지 오래지 않아요?

오늘 저녁을 계기로 해서 참말로 나는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구나. 그래서 이 몸뚱이는 작용을 하는 하나의 도구다. 이거 도굽니다. 여러분은 도구를 갖다가 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라디오에 비유하자면 라디오에서 틀림없이 소리가 나와요. 그러나 노래하는 가수는 서울 방송국에서 노래하거든요. 이걸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부터 절대 내라 하지 마세요. 그러나 내 아닌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 무정물이 내일 수가 없어. 또 내가 죽는 법이 없어. 원래 그 자리는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리는 말이죠. 날 것이 없어. 죽을 것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불문에 들어서 도를 통한다 할 것 같으면 영생불멸한다는 그 말이 거기서 나온 겁니다. 죽을 것이 있어야 죽지. 보고 듣고 말하는 놈 죽을 것이 있어야 죽는다 말이여. 죽을 것이 없어. 또 났어. 날 것도 없어. 났다 하는 것은 전부 헛거, 거짓. 바다에 파도가 이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효봉 스님 글씨 써 놓은 것, 생불생사불사. 나도 난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이래 써 놓은 것 아닙니까? 그러하니 여러분 그렇게 아시고 오늘 저녁에 문제 꼭 해결하십시오. 이 문제 해결하면은 내일은 바로 일심송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일심송 들어가게 될 것 같으면 그만 여러분들이 의심하던 거 환하게 알게 됩니다. 딱딱딱!(죽비 치는 소리)

참말로 미안합니다. 더욱 더 부산에 계신 분도 그렇지만은 서울에서 오신 분들 말 한마디 들을라고 여러분들 오신 거 아닙니까? 한데 말을 다 못해 드리고 해서 미안한 생각이 한 가지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점 다 용서해 주길 바랍니다. 아마 오늘 지나고 한 내일이나 모래부터는 한 시간이나 두 시간 해도 괜찮을 성 싶습니다. 오늘 한 시간쯤 할까요? 그리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선문염송에 있는 글 가지고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책을 보기 전에 우선 제일 첫째 불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 물론 여러분들이 불문에 들어간 지가 수십 년도 되고 이랬지만 말이죠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으로부터 불문에 들어갈 수 있는 바탕을 준비하는 것, 난 이번에 바탕을 준비하도록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제일 첫째 바탕은 뭣을 뜻하는 거냐. 제일 첫째로 이거 첫 문젭니다. 이 육신에는 자체지가 없다. 그런데 자체지라 하면 또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아. 지혜가 없다. 이렇게 합시다. 글을 쓸 때는 자체지라 해도 좋고 또 지혜라 해도 괜찮고 한데 자, 어쨌든지 이 육신에는 지혜가 없다. 그럼 지혜는 뭣이냐. 이건 뭣을 뜻하는 거냐. 눈이 보는 것 아니다. 지혜가 있어야 보거든요. 지혜 없는데 어떻게 볼 겁니까? 눈이 보는 것 아니다. 귀가 듣는 것 아니다. 혀가 맛보는 것 아니다. 이걸 딱 생각을 하면은 저절로 이거 알아집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또 다릅니다. 지금 전쟁이 나고 이러는데 사실로 이거 그릇된 전쟁들입니다. 사고방식들이 달라서 이런 것 아닙니까? 또 종교가 종교 아니라서 이렇습니다. 종교가 바른 종교 같으면 이런 법이 없습니다. 이거 나중에 차차 알게 됩니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이나, 전쟁하는 것은 순전히 무식한 사람들의 소행이다. 이걸 알게 됩니다.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하게 됩니다. 왜 그러냐. 이것이 불문에 들어가는 바탕이 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소련의 헤겔 같은 사람, 헤겔 굉장한 사람입니다. 머리가. 그런데 잘못 짚었거든. 만일 헤겔이 살아서 서로 맞춰본다면 내한테 항복합니다. 그 절대성 상대성, 그 누구고? 유명한 아인슈타인 그 이도 근사하게 갔는데 잘못 짚었어. 그리하니까 전쟁이 안 날 수가 없어. 한데 이건 내일쯤이나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첫째 몸뚱이는 지혜가 없다. 이건 의학적으로 봐도 그렇다. 왜 그러느냐. 눈이 보는 것 아니고 귀가 듣는 것 아니고 혀가 맛보는 것 아니다. 그러나 이 눈이라는 기관을 빌리고 귀라는 기관을 빌리고 혀라는 기관을 빌리고 있다. 이것쯤은 이것만 딱 들고 있으면 저절로 이거 알아집니다. 그러면 나는 뭣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에요. 있다 없다. 이걸 초월한 자립니다. 뛰어넘은 자리에요. 지금 여러분 말이지 몸뚱이를 가지고서 여러분의 눈을 가지고서 눈이라는 기관을 가지고서 내 얼굴을 보고 있지만은 그건 사실이라. 거짓말이 아니라. 그 기관을 쓰니까.

그러나 실은 알고 보면은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린데 도저히 이 자리에서 말을 한다는 것이 잘못입니다. 다른 데 비유를 할라면 허공에다 비유를 할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허공이 없습니다. 그러나 허공이 참말로 없다면 산하대지가 어디서 나옵니까? 그러니 없는 것도 아니라 말이지. 그럼 있다. 산하대지가 나와 있지 않나? 그럼 니 한 번 찾아봐라. 못 찾습니다. 허공 이것도 있다 없다 이걸 뛰어넘은 자리입니다. 여러분들이 내 말을 듣고 있는 이 자리. 있다 없다 이걸 뛰어넘은 자리에서 그 자리가 내 말을 듣는 겁니다. 그 자리가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내 말을 듣는 겁니다. 좌우간 어떻든지 이것이 시시한 말 같습니다만 이걸 모르고는 불문에 못 들어갑니다. 들어 갔자 사도밖에는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눈으로 보나 눈이 보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들으나 귀로 듣는 것이 아니고 혀로 맛깔을 보나 혀로 맛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기관은 설사 내가 빌려서 썼을지언정 보고 듣고 맛깔을 보는 것은 딴 데 있다. 딴 데 있으면 뭣이냐. 몰라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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