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은근히 유마힐에 비유
자신을 은근히 유마힐에 비유
  • 박동춘 소장
  • 승인 2014.01.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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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당전집〉에 수록된 〈여초의〉 38신.
산속 절 선탑에 앉아 좌선하며

유아독존의 실체·공의 도리 깨달아

 

완당전집〉에 수록된 〈여초의〉38신은 어느 시기에 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편지에 드러난 추사의 행적은 구도적이고도 불교적인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가 과천에 머물며, 봉은사를 내왕하던 시기에 보낸 편지일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과천 시절 추사는 불교와 차에 심취했고, 초의에게 경전의 참증(參證)을 요구하는 편지를 여러 번 보낸 적이 있다. 따라서 “나막신을 함께 챙겨 산 속 절에서 선탑을 빌렸다”는 내용은 그가 봉은사에서 머문 것을 이리 표현한 것이라 짐작되는데, 수행에 몰두한 그의 일상이 잘 드러난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막신을 함께 챙겨 산 속 절에서 선탑을 빌렸지만 한 조각 텅 빈산엔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감불의 부처님이 사람에게 말하려다 말하지 않으니 이는 유마힐의 불언의 진리인가요. 성문영각의 승려는 자못 지혜로운 본성을 지녀서 어산의 범패와 솔바람, 골 물소리와 서로 화답하시니 또한 청정한 권속이라 조금 마음이 갈만합니다.

〈〈안분수경〉〉과 〈〈능엄경〉〉의 일단을 공부하지 못하여 마침내 문사수(聞思修)로 들어갈 뿐인 것이 한스럽습니다. 산중의 일은 들려줄 만한 다른 일이 없어서 부질없이 이와 같은 것을 말했습니다.(同理山?借禪榻溪藍 空山一片 無可與語 龕佛向人欲語而不語 是維摩不言一諦耶 性覺一衲 頗有慧性 能作魚山梵唱與松風澗水聲互答 亦淸淨眷屬 稍可意者 恨不作安楞嚴一段工究 竟聞思修入耳 山中事無他可聞 漫及之如此)

 

선탑(禪榻)은 좌선할 때 앉는 의자이다. 절에서 선탑을 빌렸단 말은 유학자인 그가 승려들의 참선 방법을 차용하여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참선하는 자신의 모습을 이리 표현한 것이리라. 또 “텅 빈 산엔 더불어 말한 사람이 없다”한 것은 유아독존(唯我獨存) 의 실체인 자신이 공(空)의 도리를 알았다는 의미이다. “유마힐(維摩詰)의 불언의 진리가 아닌가”라고 초의에게 되물음은 초의의 공감을 유도한 것이라 짐작된다. 유마힐은 추사가 이상형으로 삼았던 재가불자이다. 부처님의 속제자로, 인도 비야리국의 장자이다. 보살행업을 잘 닦은 인물로, 수행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대승보살의 실천도를 강조, 세속에서도 불도의 실천과 완성을 이룩할 수 있다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었던 인물로, 재가신자의 이상형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유마힐이 병중에 있을 때, 문수보살이 여러 성문과 보살을 데리고 문병을 왔다. 이 때 유마힐은 불가사의한 해탈상과 무주(無住)의 근본으로부터 일체법이 성립되는 것과 삼라만상이 불이(不二)의 일법(一法)임을 드러내 보였고, 불가언불가설(不可言不可說)의 뜻을 나타내 문수보살을 감탄케 했다고 한다.

추사가 말한 유마힐의 불언(不言)은 바로 불가언불가설(不可言不可說)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자신은 비록 속세에 살지만 유마힐처럼 살아가는 사람임을 은근히 드러낸 듯하다. 이어 지혜로운 본성을 지닌 승려들이 “어산의 범패와 솔바람, 골 물소리와 서로 화답하시니 또한 청정한 권속이라 조금 마음이 갈만”라고 한 것은 노년기 그의 삶의 흔적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한편 〈안분수경〉과 〈능엄경〉의 일단을 다 터득하지 못했던 그는 “마침내 문사수(聞思修)로 들어갈 뿐인 것이 한스럽다”는 대목에서 자신의 분발심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사수는 삼혜(三慧)로, 개혜(開慧)와 사혜(思慧), 수혜(修慧)의 단계로 수행하여 지혜를 얻는 것이다. 경전을 견문하여 생긴 지혜와 도리를 생각하고 생각하여 얻은 지혜, 선정을 닦아 얻은 지혜를 말한다. 속세에 살던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불도의 실천과 완성의 꿈은 이미 추운 겨울, 학림암 선방에서 해붕선사와 나눈 공각소생(空覺所生)의 담론에서 싹튼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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