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몸이다 해 주저앉는다면

전부 남의 것이 된다

국집을 하지 않으면 턱 하니

태평양 바다가 전부 내 거라

허공이 전부 내거다

  

허공법문

 어찌 내일 허공 봤다 하느냐

본심, 본래의 마음. 망령된 마음이 아니고, 좋다 나쁘다 이 마음이 아니고, 경계에 휘둘리는 마음이 아니고.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어떻게 되죠? 허공하고 이거하고 둘이요 하나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대각화 보살, 둘이요? 둘이죠? 허공 말 다르고 마음 말 다르니 둘이죠? 허공이란 말이 있고 마음이란 말이 있고. 둘 아니요, 둘이요?

“하납니다.”

맞소. 하납니다. 우리가 둘로 생각을 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가르죠? 모습이 있어야 이건 이렇다 이건 이렇다 할 건데 아무것도 없어. 공연히 말만 허공이다 마음이다 할 뿐이에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걸 우리가 이걸 갈라놓으려 하면은 어떻게 가르죠?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하나 아니에요?

보살님 아시겠죠? 하나죠? 둘로 가를 수가 없죠? 백주(괜히) 말마디. 허공이 어디 있어요? 허공 없습니다. 우리가 빌려 온 말이에요. 불성, 우리의 불성 찾아내지 못해요. 없어요. 이것도 빌려 온 말이에요. 그런데 이놈 생각하는 놈 있거든. 불성이니 뭣이니 말하는 놈 있거든. 그러니 불성 무시 못하겠단 말이에요.

만약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놈 없으면 내 이것 무시하겠어요. 여러분도 무시할 겁니다. 그런데 찾지 못해. 허공하고 이놈하고 꼭 하나라. 공연히 허공이란 말도 쓸데없고 마음이란 말도 쓸데없는 말이라. 그런데 이것 다 거부하고 싶어. 허공도 거부해 버리겠어. 불성이란 말도 거부해 버리겠어. 거부하다 보니 거부한다는 이 마음씨는 우리가 가지고 있네. 그러니 우리가 이 마음 거부하겠나요? 거부 못할 거는 사실 아니라요?

그러니 결국 허공하고 우리의 불성하고 결국 하나다 이런 결론이 나는 거예요. 이걸 둘로 쪼갤라 해도 쪼개질 못해. 쪼개질 못해. 그리고 이걸 또 거부를 못해. 왜 거부를 못하느냐. 현재 여러분의 얼굴 내가 보고 있잖아요. 이건 뭣이냐 말이여. 또 여러분의 말소리 내가 듣지 않아요? 이건 뭣이냐 말이여. 이걸 어떻게 우리가 거부를 하겠냐 말이에요. 그래서 이건 하난데 절대성 자리라 이래 하는 거예요. 다른 거 아니에요.

백련화 보살, 알겠죠? 내일 허공 봤죠?

“예.”

하하하. 인제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혹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있거든 의심을 하세요. 내일 허공은 아직 오질 않았는데 어째 내일 허공 봤다 하느냐. 이렇게 의심을 가져가는 것이 공부입니다. 왜 그러느냐. 이 불교라 하는 것이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말이죠 새로운 분들 위해서 이 말씀 드립니다. 다른 분들 알겠지만은 누리의 진리, 누리의 본체. 이 우주. 우주라면 이 우주 속에 저 북두칠성도 있고 숱한 별도 있고 태양도 있고 달도 있고 우리가 걸어다니는 땅덩어리도 있거든요. 하니까 우주의 본체를 알아야 되요.

그러면 이 땅덩어리가 어디서 왔느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극히 쉬운 겁니다. 땅덩어리가 어디서 왔다든지 태양이 어디서 왔다든지 별이 어디서 왔다든지 이거 그리 어려운 거 아닙니다. 극히 쉬운 겁니다. 불교 이치를 조금 알아. 알면은 이걸 알게 됩니다. 이걸 알게 되면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됩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무엇이더라 하는 이걸 훤히 알아버립니다. 이걸 알아야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는 거라요.

불교는 무엇이냐. 우리가 복만을 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복은 솔직한 말로 우리가 딱 깨놓고 공부하는 자리니까 말합니다. 우리가 복을 구할 것 같으면 절에 안 가도 예배당에 안 가도 복 됩니다. 왜 그러냐. 사람으로서 남자는 남자의 구실을 다 해. 여자는 여자의 구실을 다 해. 어머니는 어머니의 구실을 다 해. 자식은 자식의 구실을 다 해. 친구는 친구의 구실을 다 해. 이래버리면 복 받습니다.

왜 복을 받게 되느냐. 이것도 과학적으로 딱 증명이 되어 있어요. 이건 차차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왜 복을 받게 되느냐 할 것 같으면 우리는 복덩어리 속에 지금 앉아 있어요. 복덩어리 속에. 그런데 우리가 복덩어리 속에 앉아 있는데, 앉아 있을 뿐 아니라 복덩어리 속에서 걸어다니고 누워 잠을 자고 앉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이래 하고 있어요. 복덩어리 속에 우리가 있는데, 공연히 내 마음가짐새를 잘못 가져서 눈앞에 딱 닥친 복을 우리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건 차차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리 해도 복덩어리 속에 있어. 태양의 광선을 우리는 돈 한 푼 안 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이 공기, 돈 한 푼 안 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돈 한 푼 안 주고 높은 산을 구경해. 넓은 바다를 구경해. 흐르는 물을 구경해. 돈 한 푼 안 주고 꽃을 보고 흐르는 구름을 봐. 또 선들선들한 바람을 맞이하고 있어요.

또 돈 한 푼 안 주면서 낮에는 태양을 받아들이고 밤에는 검은 걸 받아들여. 태양을 받아들여도 검은 걸 받아들여도 돈 한 푼 안 줘. 솔직한 말로 버스를 탄다든지... 돈 한 푼 안 주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꼭두각시 만들어서 들여다보고 있지만 말이죠. 여러분 용두산에 가 보세요. 돈 한 푼 안 주고 부산 시내가 눈앞에 훤히 보여.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건 내 몸이다 해서 주저앉는다든지 이건 내 집이다 해서 내 집에만 딱 주저앉으면 전부 남의 거라. 허나 여기 주저앉지 말고 가죽주머니 여기에만 주저앉지 말고 또 내 집에만 국집을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버리라는 거 아니에요. 국집을 하지 않으면 턱 하니 태평양 바다가 전부 내 거라. 거기 배가 갔다 왔다 해. 참 재미가 있어. 허공이 전부 내 거라. 구름이 갔다 왔다 해. 밤이 되면 달이 환하게 떠. 그거 돈 주고 달구경 하겠어요? 그거 전부 내 거라.

그런데 만약 우리 몸에 딱 들어앉으면 다 남의 것이거든요. 그래서 여기 들어앉아서 고민을 한다든지 어떤 슬픈 생각을 한다든지 이래 하면 달이 그렇게 좋아도 달 보고 눈물이 나 버려. 저놈의 달이 왜 떴는가 이래 싶어. 사람 속상한지 모르고. 달이 환해. 또 어떤 사람은 달이 그리 좋아. 달을 보고 시를 읊어.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걸 전부 놓는 방향으로 이래 턱 나가면 허공이 내 거란 걸 알게 됩니다.

 

백봉 김기추(白峰 金基秋) 거사

(1908~ 1985)는

1963년 56세 여름에 인천 거사림(居士林)과 같이 충북 청주의 심우사를 찾아가 하계수련대회에 참가 그해 가을부터 무자화두(無字話頭)로 간화선(看話禪)수행을 시작 1964년 1월 같 견성(見性) 오도(悟道)한다. 1964년 3월 <금강반야바라밀경강송> 탈고·인천 거사림에서 <금강경>강의를 시작하고 1965년 3월 <금강반야바라밀경강송>을 발행하고 재가 수행단체인 보림회(寶林會)를 만들어 수행지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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