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이 상주하는 북한산 이야기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해발 804m 높이의 화강암 암벽으로 예로부터 백운대, 만경대와 함께 삼각산이라 불려왔다. 인수봉을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불렀는데 큰 바위 옆에 또 다른 바위가 덧붙어 마치 아기를 업은 어머니와 같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인수봉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지자락수 인자락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백운대·만경대와 ‘삼각산’으로 불려
‘인수봉’ 논어의 ‘지지락수…’에서 비롯
仙人 품은 인수봉 인(仁) 완성하여
지고지선(至高至善) 펼칠 성인 기다려


선인(仙人)을 품은 인수봉은 인(仁)을 완성하여 지고지선(至高至善)을 세상에 펼칠 성인을 돕기 위해 깊은 수련에 들어갔다.
인수봉이 처음 시작한 수련은 예(禮)를 완성하는 것. 생명과 생명사이엔 예의를 갖춤으로 해서 공존의 질서가 잡힌다. 그러므로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인수는 높고 거대한 자신의 몸이 예로 가득 차게 하기 위해 수련에 들어갔다.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예를 깊이 통찰했다. 무엇이 예인가? 그렇게 오랜 세월 예를 통찰하자 마침내 예의 실체가 보름달처럼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떠올라 왔다. 아, 이것이 예로구나!
예를 통찰한 인수봉은 그것을 자신과 일치시키기 위해 다시 깊은 수련에 들어갔다. 처음엔 높은 봉우리 하나하나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닦았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 봉우리를 가장 존엄한 존재로 여기며 공경하고 또 공경했다. 그러자 높은 봉우리 하나하나에 예의를 갖추는 일이 햇볕이 스며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인수봉은 이만하면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향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다시 작은 봉우리 하나하나부터 큰 바위, 작은 바위, 돌과 흙에 까지 예의를 갖추었고, 그것은 짐승과 새에게, 그리고 벌레뿐 아니라 나무와 풀, 꽃과 열매에게로 이어졌다.
마침내 인수봉은 구름이나 바람, 해와 달 그리고 별들에게도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닦았다. 그렇게 하기를 천 년, 예의와 자신이 하나가 됐음을 통찰한 인수봉은 예의를 닦는 수련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선(善)은 만상의 근본 성품이다. 하지만 그것을 잘 닦아 쓰지 않으면 선은 모습을 감춰 쓰기가 어렵다. 인수봉은 높고 거대한 자신의 몸이 선과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깊은 수련에 들어갔다.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선을 깊이 통찰했다. 무엇이 선인가? 그렇게 하기를 수십 년, 마침내 선의 실체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아! 이것이 선이구나. 선의 실체를 통찰한 인수봉은 그것을 자신과 일치시키기 위해 내면을 닦는 수련에 들어갔다. 자신을 낮추고, 큰 봉우리들을 가장 존엄한 존재로 여기며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또 공경했다. 공경하는 마음이 순일하여 먼지 한 톨 들어갈 여백이 없자 그 마음이 곧 선이 되었다. 인수봉은 밝은 햇빛이 천지를 가득 채우면 어둠이 끼어들 여지가 없듯이 선이 마음을 가득 채우면 악이 끼어들 여지가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선이 자신의 가슴을 가득 채우게 하는 것은 상대방을 가장 존엄한 존재로 여기고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또 공경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인수는 예(禮)를 수련할 때와 똑 같은 방법으로 모든 생명과 사물을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했다. 그렇게 천 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련에 임하자 어느 날부터 햇빛이 만물에 스며드는 것처럼 선을 향함에 있어 걸림이 없었다. 인수봉은 선(善) 수련을 내려놓았다.
인수봉은 똑 같은 방법으로 정성스러움의 성(誠)과 옳음의 의(義)를 수련했다.
천 년 동안의 수련으로 성(誠)을 수련하고 다시 천 년의 세월 동안 의(義)를 수련했다. 그러자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대상 하나하나를 대함에 있어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게 되었고, 오롯하게 의로움을 지킬 수 있었다. 비로소 인수봉은 성(誠)과 의(義)의 수련을 내려놓았다.
인수봉은 다시 침묵 속에서 자신이 수련한 덕목을 지켜가기 위해 천 년의 세월을 보냈다.
인(仁)은 만상 안에 공평하게 들어있지만 그것을 내어 자유롭게 쓰기는 참으로 어렵다. 인(仁)은 내 안에서 나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것을 내어 자유롭게 쓰기는 더더욱 어렵다. 있는 것을 쓰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내가 인과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수봉은 긴 수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놓고, 상대방을 가장 존엄한 존재로 여기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또 공경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음을 알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혜의 문이 열리고 복덕의 문이 열리고 도의 문이 열려 마침내 인(仁)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됨을 안 것이다. 인수봉은 긴 침묵 속에서, 인(仁)을 완성하여 지고지선(至高至善)을 세상에 펼칠 성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므로. 그런 염원을 담고 있는 인수봉을 사람들은 장엄함과 강건함과 빼어남과 수려함과 경건함을 느끼며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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