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이 상주하는 북한산 이야기-11. 승가봉

수태 스님 지은 ‘승가사’에서 유래
승가사는 승가 스님 친견한 곳


비봉능선의 사모바위와 문수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높이는 해발 567m이다. 이름은 산 아래쪽에 있는 절, 승가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지〉‘사실’편에 “문수봉에서 한 가지가 서쪽으로 뻗어나가 칠성봉이 되고 …〈중략〉 또 다른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가면서 승가봉, 향림사 후봉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비고〉의 〈삼각산기〉에도 이와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 경덕왕 때 수태 스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했다. 그러나 삼십년이 지나도 자신한테 그런 힘이 생기지 않자 낙담하여 고향인 삼각산 아래 구기리로 왔다.
출가한 지 40년, 고향집에는 본 적도 없는 조카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수태 스님은 지나가는 객승이니 하루만 재워 달라 청하였다. 다행이 조카는 반가운 얼굴로 저희 숙부님도 스님이라며 편히 쉬어가라 했다. 그날 밤 수태 스님은 머리에 두건을 쓴 스님이 자꾸만 따라오라며 손짓을 하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일이 너무 궁금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수태 스님은 그길로 절을 찾았다. 부처님께 참배를 마치고 나오니 나무 아래 참깨를 손질하는 노스님이 보였다. 스님은 다가가 간밤의 꿈을 해석해 달라 했다.
노스님은 두건을 쓴 이는 장안 천복사의 승가 스님 같다고 했다. 당나라 장안의 승가 스님은 인도 스님으로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중국으로 왔으며, 신통을 부려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들어주신다 했다. 순간 수태 스님은 귀가 번쩍 뜨였다.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력은 자신의 원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스님,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사람들을 이롭게 하셨답니까?”
“어느 해인가 가뭄으로 당나라에 큰 불이 저절로 나 논이고 밭이고 다 타 버려 민심이 흉흉하고 나라마저 위태롭게 되었을 때도, 나라에 괴질이 돌았을 때도 승가 스님이 들고 있던 물병의 물로 불을 끄고 괴질도 고쳤다고 합디다. 그래서 당나라 사람들은 승가 스님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처럼 모신다고도 합디다.”
노스님의 이야기를 들은 수태 스님이 물었다.
“그럼 그 스님이 들고 계신 물병은 관세음보살님이 들고 계신 감로병인가요?”
“글쎄요. 거기에 대해선 내가 말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그 스님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믿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 스님은 낮에는 두건을 쓰고 다니다가 밤에 혼자 방에 있게 되면 두건을 벗는데 두건을 벗으면 움푹하게 패인 정수리에서 신비한 향내가 피어올라 방안을 가득 채운다고 합디다.”
수태 스님은 그분이 분명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틀림없으리라 생각하며 노스님께 다시 한 번 꿈속에서 스님이 자꾸만 손짓을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다. 노스님은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며 삼각산 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 궁금하시면 저 산에 가 보십시오. 저 산에는 문수봉이 있으니 문수보살님한테 가서 물어보십시오.”
말을 마친 노스님은 부지런히 참깨를 손질할 뿐 더 이상 눈빛조차 주지 않았다.

삼각산을 오르는 수태 스님 앞으로 파랑새 한 마리가 호르륵 호르륵 날아갔다. 처음에는 무심히 보았지만 새가 하는 짓이 마치 자기를 따라 오라며 안내하는 것 같았다. 새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잠시 쉬는 수태 스님을 따라 날기를 멈추기도 하고, 스님이 자리에 앉아 쉬면 저도 나뭇가지에 앉아 쉬었다. 얼마를 올라가자 파랑새가 커다란 바위 위에 가 앉더니 더 이상 날지 않았다. 수태 스님은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서 바위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바위 밑에는 작은 방만한 굴이 있었다. 스님이 굴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동안의 피로가 싹 사라졌다. 스님은 그대로 굴속에 머물고 싶어졌다. 메고 있던 걸망을 벗어서 한쪽 구석에 놓고 주위를 살펴보니 안쪽 바위 밑에 석간수가 고여 있었다. 샘물이라고 하기에는 수량이 많아 거의 맑은 우물 같았다.
“바위 굴속에 이렇게 많은 물이 고여 있다니!”
수태 스님은 신기해하며 허리에 찼던 표주박으로 물을 뜨려 하는데
“그 물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것이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스님이 주위를 살펴보니 전날 밤 꿈속에서 보았던 두건을 쓴 스님이 벽 쪽에 앉아 계신 게 아닌가.
“아, 승가 스님.”
수태 스님이 감격해서 승가 스님 쪽으로 몸을 돌리려 하는데 스님은 홀연히 사라지고 굴 안에는 신비한 향내가 가득했다. 그 향내는 승가 스님이 잠시 모습을 나타내셨음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저 자리에 승가 스님의 좌상을 모시자. 앉아계셨던 모습 그대로.”

수태 스님은 굴속에 자신이 본 모습 그대로 승가 스님 좌상을 모셨다. 그리고 굴이 있는 자리에 절을 짓고 이름을 승가사라 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조상을 ‘승가굴관음보살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승가사가 있는 뒤 봉우리를 승가봉이라고 불렀다. 승가 스님이 예언한 대로 굴 안의 석간수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려주었다.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종대왕의 비인 소현왕비도 이 물을 먹고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났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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