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절한데 그대는 보리심 놓았나”
“나는 간절한데 그대는 보리심 놓았나”
  • 정혜숙 기자
  • 승인 2013.12.06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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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배시절 초의에게 차를 재촉

‘지체하면 마조의 할을 받을 것’

불교에 천착 호를 ‘老迦’로 사용

 

▲ 추사의 서운한 감정이 담긴 〈완당전집〉 여초의34

추사가 그의 편지에 사용한 호(號)는 활동 시기에 따른 변화와 관조, 성숙과 관심사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립박물관 소장본인 〈나가묵연첩〉엔 제주 유배시절, 그가 불교에 천착했음을 드러낸 노가(老迦)라는 호(號)를 사용했고, 〈〈완당전집〉〉〈여초의〉34신의 말미에도 노가라는 호를 사용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제주 유배시절에 보낸 것이라 짐작된다. 특히 제주 유배 시절 편지에는 초의에게 차를 재촉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천박한 생활환경을 극복하고, 병마와 싸우던 그가 차를 통해 얻은 위안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차를 얻기 위한 그의 노력은 초의가 좋아하는 글씨를 보내기도 하고, 혹은 위협적인 강변(强辯)을 구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걸명의 말 속에 담긴 그의 희언(戱言)은 천재다운 재기와 초의에게 보인 인간적인 신뢰가 함께 묻어난다. 〈여초의(與草衣)〉34신에 드러난 걸명의 변은 다음과 같다.

 

편지를 보냈지만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산중에는 꼭 (그렇게) 바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혹 세제와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나처럼 (그대와 사귀기)간절한데도 먼저 보리심(금강)을 내려놓은 것인가. 생각해보면 늙은 나이에 갑자기 이처럼 하시니 우스운 일입니다. 둘로 갈라진 사람이 되어도 좋다는 것인가. 이런 일이 과연 수행하는 사람에게 합당한 것인가요. 나는 그대를 보고 싶지 않고, 또 그대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차의 인연을 차마 끊을 수 없고, 깰 수도 없어서 다시 차를 재촉하는 것이니 편지는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두 해 동안 쌓인 빚을 함께 보내고, 다시 지체하거나 빗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조의 할과 덕산의 봉을 오히려 받을 것입니다. 이 할과 이 봉은 설령 백 천겁이 된다하여도 감추거나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나머지는 이만 노가 (有書而一不見答 想山中必無忙事 抑不欲交涉世諦 如我之甚切而先以金剛下之耶 第思之 老白首之年 忽作如是可笑 甘做兩截人耶 是果中於禪者耶 吾則不欲見師 亦不欲見師書 唯於茶緣不忍斷除 不能破壞 又此促茶進 不必書 只以兩年積逋?輸 無更遲?可也 不然馬祖喝德山棒尙可承 當此一喝此一棒 雖百千劫無以避?耳 都留不式 老迦)

여러 차례 보낸 자신의 편지에 초의의 답신이 오지 않았던 듯. 퉁명스런 말투로 “산중에는 꼭 (그렇게) 바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혹 세제와 어울리고 싶지 않는”것인가. “나처럼 (그대와 사귀기)간절한데도 먼저 보리심(금강)을 내려놓은 것인가”라고 거듭 힐난하였다. 점점 늙어가는 사람이 취해야할 일이 아니며, 정말 “수행하는 사람에게 합당한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는 그의 걸명의 변을 드러내기 위한 전초전임이 분명하다. 차를 보내 달라는 그의 진심은 “오직 차의 인연을 차마 끊을 수 없고, 깰 수도 없어서 다시 차를 재촉하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울화에 시달리던 제주 유배 초기, 그는 맑고 청아한 초의차(草衣茶)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러하기에 초의에게 차를 재촉할 뿐 “그대를 보고 싶지 않고, 또 그대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다”라고 한 것. 하지만 이들의 사이가 어찌 차로만 맺어진 인연일까. 초의가 그립고, 벗의 선미 가득한 위안의 편지를 기다리는 절절한 심정을 이리 드러낸 것이리라. 한편 초의가 보낸 차가 늘 충분한 것이 아니었음은 “두 해 동안 쌓인 빚을 함께 보내”라고 한 것에서도 분명하다. 지체되거나 빗나가면 마조의 할과 덕산의 봉을 맞게 될 것이고, 이 봉과 할은 백 만 겁이 지나도 감추거나 피할 수 없다는 추사의 강변(强辯)은 차가 그만큼 절실한 물품이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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