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성 보살의 바라밀 일기

스마트폰 대신 손편지를…
스님의 원력과 불사에 고개 숙여져


스마트폰 세상
요즘은 전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기차를 타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곁에 앉은 친구도 보지 않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혼자 스마트 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며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사람은 사람과 놀며 대화해야 서로가 소통하며 또 이해하게 되고 함께 즐길 수가 있는데, 어쩌다 요즘은 아파트 내 어린이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을 그 전 만큼 볼 수가 없다. 심지어 엄마가 우는 아이를 달랠 때도 아이의 손에 스마트 폰을 쥐어준다. 울던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게임에 몰두한다. 급한대로 아이를 달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곧바로 중독이 되기 쉽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엄마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족이 한 집에 있어도 대화하지 않고 각자의 방에서 홀로 놀고, 겨우 식사시간에만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너무 쉽게 살려고만 하는 것 같다. 어려움도 경험하고 기쁜 일도 함께 하며 괴로울 때 하소연도 하며,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자라면서 알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요즘 욕도 스마트폰으로 하고 싸움도 스마트폰으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너무 즉흥적이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점점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들의 인성이 점점 메말라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스마트폰이 편리하고 좋은 점도 많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만남의 장소마저도 어떤 건물 앞에서 시간을 정해 만났지만 지금은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마음을 표현 할 수도 있고 연락도 아무 때라도 할 수 있으니 스마트폰으로 인해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이보다 더 편리 하고 고마울 수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생각할 때, 소통이란 명제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 소통이라는 것이 스마트폰만으로 소통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말해야 하고, 말없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 말해야 하고, 서로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하고, 서로 따뜻한 손을 마주잡고 말해야 할 때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임이 어쩔 수 없다면 손편지를 쓰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말이 아닌 글로 전달하기 위해선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 정제된 생각을 글로 옮기다보면 사색의 깊이가 넓어지리라 생각된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살기가 힘들어진 세상이다. 하지만 하루에 단 몇 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놓고 편지지 위에서 펜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혜인 스님의 불사
혜인 스님께서 제주도 약천사 주지 이취임법회에 초대했다. 스님과는 옛날부터 일타 스님의 문하에서 집안 식구처럼 편하게 지내는 사이다. 나는 도반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내렸을 때부터 코끝의 공기부터가 달랐다. 신선함으로 가슴이 툭 트이는 행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저녁 공양을 마치고 약천사 절로 갔다. 절 입구부터 주렁주렁 열려있는 하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약천사,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도량이다. 도량을 보며 대작불사를 이룬 혜인 스님의 원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약천사의 대가람을 이루기까지 회주 혜인 스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스님의 나이 30대 후반 무렵 “제주도에는 큰 절이 없어 외지의 관광객들이 들릴 곳이 없으니 내가 경주 불국사와 같은 관광 사찰을 지어 참배 할 수 있는 절을 이루어 놓고야 말겠다.”고 했었다. 그때는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으로 웃고 말았는데 육지도 아닌 섬, 제주도엔 모든 것이 배가 아니면 비행기로 옮겨야 하는 어려움 있는데도 개미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불사를 이루어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빠른 시일 이내로 일구어놓은 대작 불사이기에 볼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스님께서 젊은 시절 팔만대장경각에서 백팔만 배 절을 하신 그 큰 원력과 가피로 무엇이던 할 수 있었던 일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도 어디를 가시든 새벽에 일어나면 그곳 장소에서 백팔 배를 하는 것만은 빠짐없이 하는 신심견고 그대로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무엇이던 원을 세우면 바로 실천하는 두려움이 없는 소신으로 단양 광덕사를 지어셨고 또 제주도시내에 룸비니 동산까지 개원하게 된 것이리라. 11월 9일, 약천사 주지 취임식이 있는 날이었다. 새 주지는 성원 스님이다. 마침 수덕사 조실 설정 큰 스님과 수덕사 주지 지운 스님, 충주 석종사 혜국 스님, 은해사 주지 돈관 스님 등 많은 스님들이 오셔서 더욱 자리를 빛내 주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넓은 법당을 꽉 메우고도 바깥마당까지도 가득 찼다.
많은 내빈들이 축사를 했고 성원 스님은 원대한 서원으로 답했다. 법당 밖에는 제주시 각처에서 초대되어 오신 노인들이 마당 가득 채워 춤과 노래로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많은 스님들이 공양하시는 한 편에서 우리도 공양을 마치고 룸비니 동산으로 따라 나섰다. 제주 시내 쪽에 있는 그 넓은 땅에는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도량을 걸으면서 명상 할 수 있는 법성도의 길도 만들어져 있었다. 작은 누각 바로 앞엔 53선지식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단한 일이다. 작은 거인 혜인 스님. 거듭 스님의 원력과 불심에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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