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속 신이한 이야기(44) / 나찰이 된 병사왕

옛날 병사왕에게 한 대신이 있었는데, 잘못이 있어 왕은 그 대신을 남쪽으로 귀양을 보냈다. 천 리나 떨어진 그곳은 본래부터 사람이 살지 않아서 곡식도 자라지 않는 땅이었다. 그런데 그 대신이 이르자 샘물이 흘렀고 곡식이 저절로 익었다.
사방의 여러 나라에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던 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대신은 오는 이들에게 논밭을 나누어 주어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 땅은 한 나라를 이룰 만큼의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땅에는아직 왕이 없었다.
어느 날, 장로들이 모여 의논을 했다. 한 장로가 말했다.
“나라에 임금이 없는 것은 몸에 머리가 없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다른 장로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장로들은 대신을 왕으로 모시자고 의견을 모았다. 장로들이 대신에게로 가서 대신을 왕으로 모시려 하자 대신이 장로들에게 말했다.
“만약 나를 왕으로 삼는다면 다른 여러 나라의 왕법과 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좌우에 문무 대신과 장사가 옹위하고 상하가 조공하며 여인들을 징발하고 궁전을 짓고 세금과 곡식과 비단을 거두는 등, 백성 또한 옛 법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장로들이 말했다.

삽화=강병호
“왕의 명을 받들 것이며 한 결 같이 왕의 법을 따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대신은 왕이 되었고, 여러 문무 대신과 신하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서 거둔 세금으로 성을 쌓고 집과 궁전을 지었다. 백성들은 점점 힘들어졌고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모두가 역모를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간신배들이 왕을 모시고 사냥을 나갔다가 성에서 30, 40리 쯤 떨어진 넓은 들판 가운데서 왕을 죽이려 하자, 왕은 신하들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느냐?”
신하들이 말했다.
“백성들은 풍년과 즐거움이 그리워서 왕을 예로써 받들었으나, 백성들이 고생되므로 반란을 생각하여 집을 부수고 나라를 도모하려 합니다.”
왕이 말했다.
“그대들은 스스로가 한 것이었고, 내가 본래 하자고 한 것이 아니었소. 그릇되게 나를 죽인다면 신기(神祇)가 알 것이오. 나에게 서원을 하나 세울 것을 허락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소.”
그리고는 즉시 서원을 했다.
“저는 본래 황무지를 개간하여 땅을 만들어 백성들을 길렀으며, 오는 이들은 모두 지극히 부유하게 되어 즐겁게 살았습니다. 자신들이 저를 왕으로 삼았으니, 모든 나라의 법에 따라 자기들이 함께 이를 하여 놓고서 이제는 도리어 저를 죽이려 합니다. 저는 실로 이 백성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죽으면 나찰이 되어 원수를 갚게 하소서.”
왕이 서원을 마치자 신하들이 왕을 죽이고 떠났다.
3일 뒤에 왕의 혼이 몸 안으로 돌아와 스스로 아라파라고 이름 짓고 이내 일어나 궁중으로 들어가서 새 왕과 후궁과 채녀들과 간신들을 죽이고 궁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려 했다. 그러자 나라 안의 세 장로들이 새끼줄로 자신들을 포박하고 와서 나찰을 향하여 말했다.
“이는 바로 간신들의 소행이었으며, 이 평민들은 모르는 일이오니 부디 용서해 주시고 나라를 다스려주십시오.”
나찰이 대답했다.
“나는 나찰이오.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면 먹고 마시는 것은 사람 고기라야 하며, 나는 성질이 조급해서 분을 내면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소.”
장로들이 말했다.
“나라는 바로 왕의 것이므로 예전대로 하십시오. 잡수실 것은 서로 차례대로 보내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라의 장로들은 함께 나와서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다.
“이제부터 차례가 되면 집집마다 어린아이와 한 사람씩을 차출하여 왕이 먹게 할 것이다.”
백성들은 몸을 희생하여 나찰 왕을 먹여주었다. 이때에 어느 집에 부처님의 제자가 될 아이가 있었는데, 집에 있으면서도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부처님의 5계를 지니고 있었다. 현자들 모두가 괴로워하고 슬피 울면서 멀리 기사굴산을 향하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들을 책망했다.
부처님께서 도안으로 그들이 몹시 괴로워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이 어린아이로 인하여 수없는 사람이 제도되겠구나.”
그 아이는 바로 부처님의 5계를 지닌 그 아이였다. 부처님은 이내 혼자서 날아와 나찰의 문에 닿으신 후 광명의 모양으로 나투시어 궁전 안을 비추셨다. 나찰은 광명을 보고, 이는 이인(異人)이라 의심하면서 곧 나왔다. 부처님이 보이므로 나쁜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을 잡아먹으려 했다. 그러자 광명이 그의 눈을 찌르므로 산을 어깨에 메고 불을 내뿜어 모두 티끌로 변하게 했다. 지쳐버린 나찰이 항복을 하고 부처님을 청하여 들어와 앉게 하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했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설법하시자, 일심으로 법을 듣고는 이내 5계를 받고 우바새가 되었다.
이때 마을에서는 벼슬아치가 부처님의 제자가 될 그 아이를 빼앗아 데리고 갔으므로 그 집안사람들은 통곡하면서 그 뒤를 따라갔는데, 구경하던 수많은 사람들도 그들을 위하여 슬퍼했다. 벼슬아치가 아이를 안아다 먹을 수 있도록 나찰의 앞에 가져다 놓자, 나찰은 손으로 아이를 들고서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5계를 받았으므로 다시는 사람을 먹지 않겠습니다. 어린아이를 부처님께 보시하니 부처님을 시봉하게 하여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이를 받으시고 설법과 축원을 하시자, 나찰은 기뻐하면서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어린아이를 발우 안에 넣어 들고 나찰의 문을 나와서 그의 부모에게 돌려주면서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를 잘 키워라.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처님의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신이하게 여기며 말했다.
“이는 어떤 신이며, 저 아이는 무슨 복이 있기에 혼자만 구제 받아 나찰의 먹이가 되지 않고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부처님이 이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계의 덕은 믿고 의지할 만하여서 / 복의 과보가 언제나 몸을 따르며 / 법을 보아야 사람들의 어른이 되고 / 마침내 3악도를 멀리 한다. // 계율은 괴로움과 두려움을 없애고 / 복의 과보로 삼계의 어른이 되며 / 귀신과 용은 삿된 해독으로도 / 계율 지닌 사람은 범하지 못하리.”
부처님의 빛나는 형상을 보고 모두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게송을 듣고 기뻐하면서 모두가 도의 자취를 얻었다. (〈법구비유경〉제5권에 나온다.) 동국대역경원 발행 〈경률이상〉에서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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