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찰마다 여름 지우기를 통해 사찰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여름이 지나면서 교란된 계단돌. 사진은 경기도 ㅂ사찰
예년에 비해 이번 여름은 홍수나 더위로 인해서 어떤 사찰이 재해를 입었다는 좋지 않은 소식은 없었던 듯하다. 절에 따라서는 흙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개울물이 넘쳐 농작물에 피해를 입기도 하고, 계단돌이 교란되기도 하는 등 조그마한 피해가 있기는 하였으나, 사람이 상하거나 집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뉴스가 될 만한 큰 피해는 없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피해라도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는 자세는 필요해 보인다.

한 계절이 지나간다는 것은 새로운 다른 계절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계절을 준비하려면 지나간 계절의 흔적을 지워야 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여름에 있었던 피해의 흔적을 지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사찰의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필자가 설계해서 만든 교화공원의 광장 귀퉁이 벽돌이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스님의 걱정하시는 얼굴이 생각나 즉시 공사를 했던 회사의 임원에게 연락을 해서 현장을 가보았다. 보니, 광장 귀퉁이 부분에 물이 차면서 지반이 내려앉아 포장이 부분적으로 교란되어있었다. 배수가 잘 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사찰안팎의 환경에서 나타나는 여름의 흔적은 흙을 움직이거나 돌을 쌓아 새로 공간을 조성한 곳에서 많이 나타난다. 특히 생태적으로 민감하고 취약한 구조를 가진 곳을 건드리게 되면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을 지나거나 땅이 꽁꽁 얼었다 풀리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여러 가지 환경적 피해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옛 스님들은 가급적 땅을 건드리지 않았고, 땅을 건드리더라도 재해가 일어나지 않을 만치만 건드렸던 것이다.

아담한 산사를 보고 “왜 절집 마당이 저렇게 작아? 넉넉하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지”라고 투덜댄다면 옛 스님들의 지혜를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인 것이다. 오래전부터 스님들은 땅이 가진 생태적 수용능력을 잘 알아서 땅이 견딜 수 있을 정도만 손을 댔던 것인데, 무지한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아무 탈 없이 여름을 보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환경적 피해가 있었다면 그것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사부대중이 건강하고 평안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찰이 건강한 환경을 유지해야한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사찰마다 여름지우기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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