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법철학 上 - 고준환 경기대 명예교수

▲ 법은 정의와 권력 의지가 교착하는 평화질서다.

부처님법은 진여일심의 불이법
세간법은 이분법 중심
한생명 상생법으로 조화 필요


세간 법철학
8․15 해방이후 한국 법철학을 개척하고 체계를 세운 서울법대 황산덕 교수는 정의를 인간이 자기를 극복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에 두고 에로스적 노력을 하는 것이라 했고, 법은 정치사회단체의 도구로서 민주적 기본질서인 평화질서라고 보았다.
8․15 해방 후 황교수와 함께 한국법철학의 쌍두라고 할 수 있는 고려대법대의 이항령 교수는 풍토주의 법철학 체계를 세워, 자유를 이념으로 하는 서방풍토,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중방풍토, 평화를 이념으로 하는 동방풍토의 장소적(Topos) 법철학을 구분하고, 정의개념은 권리와 의무가 함께하는 직분적 정의를 내세웠다.
미국 하바드 대학교의 철학교수인 J.롤즈 박사는 정의의 원칙이 합리적 논의를 통한 합의로 설정되고, 정당성의 근거도 마련되는 칸트적 구성주의에 입각하여, 정의의 의미를 공정(公正, fairness)으로 파악하고, 그 제1원칙은 평등적 자유 원리이며, 제2원칙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불리한 조건인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목적의 차등원칙과 그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을 포함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 법대 마이클 샌델교수는 개인자유주의적 정의론에 반대하는 공동체 주의적 정의를 제기하였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기동일성, 정체성이 선에 관한 특정한 관념과 그것을 추구하는 전통을 공유한 공동체의 내부에서 구성되는 것으로 본다. 여기서 자기(자아)는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공동선이나 거기서 수행하는 역할 등에 의해 자기동일성을 구성하는 “위치있는”(Situated) 자기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다.
정의는 인간사회에서 인격평등을 전제로 자유를 확장해가는 평화질서일 것이다.
강제규범으로서 법은 국가가 제정한 실정법이 법의 전부라고 보고(법실증주의) 법효력의 근거는 민족의 역사적 법확신(역사법설), 신의설(神意說), 사회계약설, 실력설, 승인설, 명령설, 사실의 규범력설, 여론설, 법내재 목적설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다만 한스 켈젠교수의 법단계설은 하위규범은 상위규범으로부터 위임받아야 효력을 갖는데, 최상위 규범을 근본 규범(Grundnorm)이라고 했다. 이는 자연법이며 대자연법인 여여한 불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루돌프 예링은 강제규범인 법의 불비성을 지적하여, “‘강제가 없는 법’은 자가당착이다. 이는 타지 않는 불, 비추지 않은 등불과 같아 불완전법(Lex Imperfecta)이다“고 했다.
우리는 위에서 법과 정의, 법의 효력 등을 살펴보았는데, 법은 정의와 권력 의지가 교착하는 평화질서라고 정리할 수 있다.
세계의 법 철학자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람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법가(法家)인 법치주의자 한비자(韓非子)다. 그는 진나라가 6국을 통일하게 한 상앙과 신불해, 신도와 함께 형명학파(刑名學派)의 일원으로 형명법술의 집대성자이다. 형명학은 형의 이름인 사형, 징역, 금고, 벌금 등 명칭과 실상이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명실론을 법적용에 응용하는 법률학으로, 형명으로 나라를 다스려가는데 벼리를 삼는 학문이다. 한비자등 중국의 법가는 유가, 도가, 묵가, 병가 등 제자백가를 누르고 중국민족 춘추전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China, 진시황제)을 탄생하게 했다. 한비자의 핵심사상은 형명법술이다. 여기서 법은 법령(法令)을 말하는데 법은 모든 국민이 복종해야 할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며, 술(術)은 군주(최고통치자)의 신하 조종법이다.
한비자의 법치주의 부국강병책은 한 국왕에게 상주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을 멸망시키는 진시황제에게 채택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낳았다. 진시황은 한때 한비자 저작을 보고, “이 책을 쓴 자를 만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이사가 이를 듣고 한나라를 쳐들어가면, 한비자가 사자로 올 것이라고 건의했다. 이사 말을 들은 진시황은 한비자가 마음에 들었지만 즉각 등용하지는 않았다. 한편 이사(李斯)는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한비자가 등용되면 자신의 지위가 위협을 받게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사는 동료인 요가와 모의한 다음 그 틈을 타서 진시황에게 진언했다. “자기 나라를 위해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므로 한비자는 진에 충성을 다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돌려보내면 이쪽의 내정을 가르쳐 주는 결과밖에 안됩니다. 지금 처치함이 마땅합니다.” 이 말에 흔들린 진시황은 한비자를 옥에 가뒀다. 이사는 여유를 두지 않고 곧장 옥중으로 독약을 보내 자살을 강요했다. 한비자는 진시황을 만나 직접 변명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허락되지 않아 끝내 스스로 독약을 마셨다고 한다. 그때가 기원전 233년이었다. 그리하여 한비자는, 역사란 변한다는 명제에 착안해, 자주적 인생관, 노력하는 사회관에 기초한 형명법술로서 ①법은 국민이 절대복종할 유일한 것 ②절대군주 중앙집권체 아래서의 상명하복 ③신상필벌 ④권세조직 ⑤칠 술등을 지상에 남겨놓았다.
이는 전제주의 아래 법가의 사상이기에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현실에 맞게 변용돼야 할 것이다.

세간법과 출세간법의 비교
세간법이나 출세간법이나 모두 인간세상에서 걸어가야 할 길이기에 서로 같은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다.
석가모니께서도 승의제뿐 아니라 세속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승의제는 불변이나 세속제는 가변적이다. 또한 세속제는 그때 그때 구체적 상황에 대해 말씀하셨으므로 그 말씀 모두 그대로 현재에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주는 한 마음, 한 생명인데, 상대면을 가졌기 때문에 생명이 상생해야 함으로, 한 생명 상생법이 우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세간이나 출세간이 같은 것은 한 생명 상생법 행복추구와 심기신 건강법 그리고 향상일로를 위한 조삼법(調三法, 調心, 調息, 調身)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다르지만,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목적은 행복하게 살다 행복하게 죽는 데 있다 할 것이다.
그러면 행복한 게 무엇일까? “밥 잘 먹고 똥 잘 누고, 잠 잘자는 것이다”라고 노자처럼 말할 수도 있지만, 과학적으로는 “심기신이 건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몸과 마음과 호흡이 대생명의 조화 속에 건강한 것이다. 생명의 환희이다. 심신이 건강하여 기쁨의식이 확대되고 기혈이 제대로 흐르며 거기에 더해서 활기차고 자기 마음대로 기운을 쓸 수 있으면, 그런 생활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욕심으로 살아가는바 그것은 권력과 돈 그리고 명예 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나중에 보면 그런 것들은 모두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무상(無常)이다. 우리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잃는 것은 부분을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한다. 삶은 파도타기인데, 이는 사람이 중심을 잃지 않고 흐름에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개체생명이 상생을 하고 한 생명으로 돌아가는데 있어서, 생명의 비약적 진화를 위한 노력이 건강하면서도 자유자재롭고, 평등․평화의 인격을 완성해 가는 것이 심기신 수련법 또는 심기신 건강법이다. 부족한 나를 바꿔 완성해 가는 방법이다.
심기신 건강법은 체상용(體相用) 3대 논리로 볼 때, 마음은 본체, 기는 작용, 몸은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심기신을 영혼백(靈魂魄)이라고도 할수 있다. 성명정(性命精)이나 정기신(精氣神)이라고도 한다. 심은 영이나 신, 기는 혼, 신은 백이나 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심기신 수련을 통하여 우리는 점점 자연스럽고 평화스러운 자기의 변모를 볼 수 있게 되고, 한생명 상생법의 선정삼매 등으로 자기의 한계 넘기로 무한으로 확대되면서, 드디어 유한자가 무한자로 탈바꿈하는 해탈로 나아간다. 한계넘기요, 초월이다.
심기신 수련법은 사람이 뗏목을 타고 강의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갈 때 그 뗏목과 같은 것이다. 강을 건널 때 뗏목이나 배가 꼭 필요하지만, 건넌 다음에는 그 뗏목을 해탈의 나루터에 버리고 가야 한다. 이것을 뗏목의 비유라고 한다.
자기의 한계를 넘기는 마음수련에서의 자기확장, 용서 못할 일의 용서, 기수련에서의 단전 호흡, 몸수련에서의 기체조와 능력초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출세간법과 세간법의 차이는 출세간에 있어서의 불이법(不二法) 무소유법 여래법이, 세간에 있어서는 이분법(二分法) 소유법, 거래법과 대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불이법은 일심진여인 불이중도요. 무분별지라면, 이분법(유․무, 남․녀, 밤낮 등)은 생멸법이요, 분별지여서 집착이 문제가 된다.
불교의 기본은 공이며, 무상이고 무아인데 이를 소유관념과 연결지으면 무소유라 표현할 수 있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대생명이고, 각 개체는 분신생명으로 공존할 뿐,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욕심을 가진 중생은 종교적 진리도 추구하면서 경제적 욕망을 총족시키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해탈을 막는 것은 부가 아니라 부에 대한 집착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초기교단의 소유체제를 출가자들은 공유체제(共有體制)로, 재가자들은 사유체제(私有體制)로 생활하게 했다.
출가자는 무소유롤 관념적으로 전제하여 경제행위가 금지됐으며, 수도를 위해 삼의일발(三衣一鉢 : 옷 세벌, 밥그릇 한 개)만의 소지가 허락되었다.나머지 교단재산은 불가분물(不可分物)로서 사방승물(四方僧物)이라 했는데, 승가공동체의 공동소유였으며, 매매․대여가 금지됐으나, 평등하게 사용할 수는 있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사회(Gemeinschaft)로 정법을 중히 여기고 재물을 중히 여기지 않는 출가자 모임이 수승한 것으로 존경받았다.
재가자들도 궁극적으로는 무소유 관념을 전제로 한다. 재산의 사유를 인정하는 이익사회(Gemeinschaft)였으며 재물을 획득하는데 일정한 윤리규범에 따르도록 했다.
재가자들은 궁핍이 여러 가지 악행의 근원이 되므로, 남을 괴롭히지 않고 생산에 정진하여 정법으로 재산을 증대하고 집적하며 부처님의 세계는 본래 무소유 세계이므로 주고받을 것이 없지만, 주고받는 경우에도 한생명 한살림으로, 가면 가고 오면 오지(如來=如去=Tathagata), 오고 감이 서로 조건지워져 있지 않고, 무한 발전소처럼 받지 않고도 한없이 공급해 줄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나 중생세계는 ‘이익을 추구하는 동물’의 소유세계요, 시장사회이므로, 에리히․프롬의 이른바 시장형 인간들은 오고 감, 즉 주고 받는 것(give and take)이 서로 조건 지어져 있고, 생활이 거의 모두 장삿속으로 이뤄지는 ‘이익의 관계망’ 즉 거래 모습을 보이게 마련이다.
무소유법 계통에 속하는 개념이 무위법(함이 없는 법) 무소득법(얻을게 없는 법), 무상법(형상 없는 법) 무주법(머묾이 없는 법) 공법(텅빈 법) 구족법(모두 갖춘법) 출세간락(열반락)이고 소유법계통의 개념으로는 유위법(함이 있는 법) 소득법 (얻을게 있는 법) 유상법(형상 있는 법) 주착법(집착 머묾이 있는 법) 색법(물질법) 부족법(갖추지 못한 법) 세간락(식․색욕등 욕망 충족락)등이 있다.

끝내는 말
우리는 앞에서 대표적 대승경전인 금강경을 중심으로 한 불교철학과 복잡 다단한 세상살이 법철학을 알아본 다음, 불교철학과 법철학의 같고 다름을 비교해 보았다.
부처님 법은 진여 일심으로 불이중도 8불중도의 불이법이고, 세간법철학은 대자연법으로 소유욕의 이분법이 중심이 되어 대립갈등의 조화가 필요한 유위법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우리가 지적생명체로서 심기신 수련법으로 상생상극을 거쳐 대긍정으로 나아가는 한생명 상생법이 필요하게 된다. 한생명은 한마음이고 진여불성자리인데, 마음속에 알라야식이 있으며 이속에는 생멸심으로 업식과 여래를 함장하여 여래장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진여가 여여하게 연기되는 진여연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지혜, 자비, 용기를 바탕으로 절대적인 무분별지를 깨닫고 (識心見性) 분별지를 활용하되 분별 후 집착을 놓은 방하착으로 가야됨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이이불이(二而不二)로 불이법과 이분법이 조화된 한생명 상생법이다.

<이 원고는 본각선교원에서 강의하는 내용을 미리 간추려 소개한 것입니다. 본각선교원 (02)762-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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