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마음이 부처다

▲ 그림 박구원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


마음을 증득해야
일체가 그림자뿐임을
자각해서 안심입명
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 관계없이
늘 함께하고 있지만
그것을 한번 정확히 계합하여
체득하지 못하면
늘 대상에 집착하여
헐떡거리며 살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은
가르침하고 상관없이
나고 죽는 바 없이
인연 따라 흘러오고
흘러간다.

 

10.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다.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진짜 뼈저리게 이 문제를 붙들고 밤낮으로 씨름하는 사람한테는, 선지식이 방·할만 해주어도 깨달음이 일어날 수 있다. 안목을 갖춘 분이라면 이때를 당해 묻는 이를 향해 단도직입으로 한 마디 한다든지, 돌아앉는다든지, 손가락을 세운다든지, 때려준다든지, 별의별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깨달음으로 이끄는 기연(機緣)이 되는 것이다. 마치 달걀의 안에서 병아리가 충분히 부화되어서 나오려고 쪼는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어미닭은 밖에서 그에 대응하여 같이 쪼아줄 때 껍질이 탁 깨어지면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과 같다. 이것을 ‘줄탁동시’라고 한다.

 

황벽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마음이 부처다.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과 부처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는 따로 부처가 없다.”

 

배휴처럼 자기 마음을 이미 한 번 밝혀본 사람도 스승에게 본인의 입장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스승은 ‘마음이 곧 부처다.’고 바로 일러준다. 마조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 무엇인고?’ 하고 되물어주기도 했다.

 

배휴가 물었다.

“만약 자신의 마음이 부처라 한다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어떻게 그것을 전해 주셨습니까?”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확철하게 믿지 못하면, 따로 무엇이 있어 전해 주고받는다고 오해하기 쉽다. ‘조사서래의’는 곧 일심일 뿐, 달리 다른 법이 없다.

 

선사께서 말씀하셨다.“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오직 마음이 부처임을 전했을 뿐이다. 그대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바로 가르쳐 주신 것이며,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조사라고 한다.

 

이심전심이라고 하지만, 실로 전해준 것도 없고 전해 받은 것도 없다. 단지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했다는 말이다. 다만 이런 말을 이해에 그치지 말고, 자기도 직접 맛을 봐서 확인해야 한다. 배휴로서는 알기는 다 아는데, 소화가 안 되니까 답답한 것이다. 답답하니까 같은 말을 묻고 또 묻고 한다. 사실 스스로 확실하지 않다면, 배휴처럼 자꾸 부닥쳐야 한다. 이해한 마음 가지고는 스스로도 다스릴 수 없다. 아무리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도, 내 마음이 뒤집어질 때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을 증득해야, 일체가 그림자뿐임을 자각해서 안심입명 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곧바로 이 뜻을 깨닫는다면, 곧 3승의 모든 지위를 단박에 뛰어넘어서 본래 부처인 것이니, 결코 수행을 빌려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니 부처니 하는 것은 허공에 도장 찍듯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지위점차를 빌려와서 공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바로 도장 찍어서 확인한 그 모습을 쓰는 것이지, 다른 무엇에 의지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본래 있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수행을 빌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조사서래의는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허공에 도장 찍는 소식’이라고 힌트를 주는 것이다.

 

배휴가 말했다.“만약 그렇다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무슨 법을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데, 실로 출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불교를 믿게 하는 차원에서는 2천 5백여 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셨다고 하지만, 불법의 입장에서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오고 간 적이 없는 것이다. 석존께서 무우수 나무 아래 태어나셔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한 손은 허공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고 말씀하셨다는데, 운문스님은 거기에 대고 “그때 만일 내가 봤더라면 일방 타살해서 사나운 개한테 던져주겠다.” 하고 호언장담했던 것이다. 이러한 말들의 낙처가 어디 있는지 세심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셔서 오로지 한마음의 법만을 말씀하셨다. "

불법은 오직 일심법(一心法)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그것을 은밀히 부촉하셨다. 이 일심법체(一心法體)는 허공을 다하고 온 법계에 두루하기 때문에, 이름 하여 모든 부처라고 한다. 이 법을 논하더라도, 어찌 그대가 언구에서 그것을 해득할 수 있겠는가. 또한 한 움직임이나 하나의 대상에서 결코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과거·현재·미래에 관계없이 늘 함께 하고 있지만, 그것을 한 번 정확히 계합하여 체득하지 못하면 늘 대상에 집착하여 헐떡거리며 살게 된다. 다행히 석존께서 대각을 성취하여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움으로 거듭났고, 그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을 중생세계에 일러줘서 그 가르침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렇지만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이라는 것은 가르침하고 아무 상관없이 나고 죽는 바 없이 인연 따라 흘러오고 흘러간다. 이 우주법계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그랬고. 만들어지고 난 이후에도 그렇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천지가 창조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그러할 뿐이다. 이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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