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세원 인천대 교수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사실상 경선 체계로 굳어졌다고 교계 미디어들이 전하고 있다. 경선의 당사자들은 특정 종책모임들의 지지에 기반을 둔 인사들이라고 한다. 불교광장이 출범하고 추대위가 구성될 때까지만 해도 경선이 아닌 추대 형식으로 총무원장 선거가 진행될 듯 보였다.

하지만 오월동주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 숨겨진 의도들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합의 추대의 꿈은 남가일몽이 되어버렸다.

문제의 원천은 파당이고, 파당의 관심은 잿밥이지 염불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참 좋은 이름이다, 종책모임. 종책 모임은 총무원장 선거를 전후하여 종권 획득을 위한 파당을 미화한 표현이다. 온갖 미사려구로 치장을 해도 패거리는 패거리일 뿐이다. 선거라는 것이 아무리 파당을 부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불교종단 내에서 종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목표와 실천방법의 제시도 없이 오르지 소임 때문에 생기는 파당은 파화합의 주범일 뿐이었다.

종단 내에 종책모임이라는 파당적 성격의 모임들이 생겨나는 것은 승가정신의 실종을 보여주는 일이다. 중생의 고(苦)가 안중에 없는 모임, 수행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출가자의 집단의 출현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환영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쟁점은 추대가 아니라 현 총무원장의 연임문제 옮겨진 상황이다. 그것도 발단은 불교광장 내부의 입장 차이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리고 불교광장에 참여했던 일부 종책모임이 ‘자승 스님의 불출마 선언’을 요구하면서 탈퇴했고, 전국 선원수좌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 표명이 이어졌다.

특히 수좌회는 자승 스님의 연임을 저지하기 위한 묵언정진에 들어갔다. 선원수좌회의 임장표명과 묵언정진은 여타 파당적 성격의 종책모임들의 입장표명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있고, 촉구방법도 수행자답게 여법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연임저지 대상자의 표리부동한 처신은 한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의 처신으로 보기에는 아쉬움 많아 보인다. 투명하지 못한 행적에,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하는 기어 가까운 언행은 율장적 기준은 커녕, 건강한 상식의 사회적 기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아마도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의 연관 검색어로는‘종단정치·종권창출·종단권력·이권밀약·계파·문중’등이 될 것이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이 말들에는 조계종 고위 소임을 맡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조계종의 승가 구성원들은 종단이 권력 쟁취와 계파간의 이익 배분을 위한 제도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종단과 종단 소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자기 과신인가? 자기비하인가? 조계종의 승가는 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매번 반승가적 작태로 종도들에게 고를 안겨주고, 사회의 빈축을 사 왔다. 이는 불조께서 부촉하고 종도들의 공양과 외호로 갖추어지는 수행자의 위의를 스스로 포기해 가는 일이다. 조계종의 승단은 조계종단의 운영을 정치로, 거기에 참여하는 자신들을 정치가로 착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권위주의 시절의 정치가들처럼 특권을 가진 계층이라 온갖 범계행위를 자행해도 면책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보다 더한 정체성에 대한 자기비하가 어디 있겠는가! 단언컨대, 이건 훼불행위이다.

중생제도의 힘과 승가의 위의 및 권위는 지계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계를 지키는 행위와 율에 따르는 생활을 하는 무리를 우리는 승가라고 부르고, 그 구성원들을 존경하고 공양한다. 선거는 이제 어쩔 수 없이 종법의 규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단지 그 과정에 반승가적 행위는 철저히 금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종단 같은 상징성과 그 내실을 일치시키는 최소한 규범이다. 선원 수좌회의 입장표명과 묵언정진은 종단의 일과 세속사를 혼동하는 전도몽상에 대한 경종이고, 소임의 힘으로 지계와 수행을 좌지우지하려는 훼불행위에 대한 대응이다. 또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동참은 승가다운 승가에 대한 외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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