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N 불교TV 무상사 일요 초청 법회-무여 스님 (축서사 선원장)

악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것이
이치 깨달은 불자들의 역할
참선·염불 등 수행으로 닦아
동체대비 사상으로 세상 밝혀야

▲ 무여 스님은 … 희섭 스님을 은사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출가했다. 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칠불사 망월사 등에서 수선안거했으며 칠불사 망월사 선원장, 조계종 기초선원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87년부터 봉화 축서사 선원장으로 제방납자를 지도하고 있으며 현재 조계종 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마음은 맑고 세상은 향기롭게’라는 슬로건이 있다. 이는 불교가 세상 속에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시끄럽고 온갖 악행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불자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불자들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은 수행을 통해 세상이 맑고 밝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스님의 법문을 통해 맑고 밝아지는 그 길을 찾아 떠나보자.

 

얼마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했습니다. 불탄절 구호 중 '마음은 맑고 세상은 향기롭게'가 있습니다. 불자라면, 불자가 아니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늘 마음은 맑게 하고 세상을 향기롭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써야 할 거 같습니다. 흔히 불교가 뭐냐고 물으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말합니다.

 

위로는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는 말이죠. 옛날 스님들 중에서는 깨달음이 아니면 불법이 아니다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씀하신 분들도 있을 만큼 불교는 깨달음을 중시합니다. 그렇게 불교를 통해 인생과 우주만물의 근본을 잘 깨달아 나보다 못하고 어렵게 사는 분들을 잘 교화해 깨달음까지 도달하게 해드리는 것이 불자들의 임무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수행을 나만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깨달은 만큼 늘 남에게 베푼다는 생각으로 이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복혜쌍수(福慧雙修)라 하는데 복과 혜를 같이 닦아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가에서는 이를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해요. 수레가 외바퀴면 갈 수가 없습니다. 수레가 둘이어야 원만하게 갈 수 있습니다. 복혜를 제대로 닦아야 사람으로서 인생을 무난하게 보내고 어떤 분보다도 잘 살고 훌륭한 일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불교 수행이 나만을 위한다 혹은 나만의 혜만 닦는다는 그런 생각은 마시고 남도 위한다는 하화중생도 신경을 써서 훌륭한 불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참으로 괴로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번듯하고 화려한데 내 눈에는 어려웠던 시절보다 더 힘들고 못사는 세상이 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전쟁과 테러와 각종 사회악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가족 상호간의 윤리가 타락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세증후를 다섯가지의 더러움 즉 오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세상을 악세다, 답답한 세상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겁탁은 사회악 환경오염으로 혼탁한 시대를 말합니다. 국가의 이익과 지배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민족 종교 이념 갈등으로 서로를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정의는 옛날에 사라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남을 사기 치는 것을 예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남의 것 도둑질하고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살고 있죠. 강간 살해 살상에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도 있습니다. 인간의 악이 어디까지인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견탁은 온갖 그릇된 사상 악한 사상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방향틀은 상실했습니다. 고장난 자동차처럼 제멋대로 굴러가는 사회가 오늘의 사회입니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농부는 농부대로 교육자는 교육자대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도 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대가 요즘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개탄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요즘 사람들은 극단적인 이기심에서 탐진치 삼독심이 너무 강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에서는 나만이 잘 살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은 연기의 법칙으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서로 얽히고 얽혀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살이입니다. 다 같이 잘 살아가는 세상, 우리 불자들은 늘 넓게 크게 가지고 대승적인 마음으로 큰 삶을 사셔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편안하시고 성공하고 출세할 수 있는 좋은 삶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중생 자질이 외형적으로 발전하고 잘 사는 거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흔히 쓰는 말 중에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보통의 예인데 윤리나 도덕이나 예의나 염치는 찾아보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상당히 심각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어요.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어느 사이에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고 휩쓸려서 결국은 헤어나지도 못합니다. 오탁악세가 안 되도록 열심히 살고 대승적인 보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치료 방법이 마음을 맑게 세상은 향기롭게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수행을 일상화해야 합니다. 수행이라는 아주 좋은 방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이 없었다면 부처님께서 이 좋은 말씀을 안 하셨다면 이 세상은 아주 황폐하고 살기 어렵고 지구촌은 생지옥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수행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하긴 하는데 마음을 맑게 하고 세상을 맑게 할 정도로 많이 하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실제 내가 느끼고 좋다 행복하다 이 이상이 있느냐 그 정도까지 해야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행은 종교 국가 이념을 초월해서 어떤 사람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안 하면 자기 손해이니 꼭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인연 따라 근기 따라 염불을 하시거나 참선을 하시면 됩니다. 이 중에 꼭 한 가지는 하세요. 이 수행에서 인생의 진정한 보람을 못 느끼면 불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짓가랑이만 왔다갔다하는 모양만 잡는 사람 말고요 내가 정말 수행을 잘하고 있구나 행복하다 그런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꼭 좀 제대로 수행을 하십시오.

그러니 수행을 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말이죠. 최근에는 외국에서 특히 선진국에서 수행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어떤 나라에서는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마음은 맑고 세상은 향기롭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맑게 한다는 것은 마음을 맑게 깨끗하게 하라는 뜻도 포함돼 있습니다. 마음이 늘 맑은 상태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수행이 잘 돼서 늘 맑은 상태 유지하면 그뿐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그 정도 되면 인생이 변하고 팔자가 고쳐집니다. 그러니 이 풍진 세상 멋지게 살아보십시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이 맑아야 돼요. 맑지 않고 아무리 멋을 내봐야 멋이 아니죠. 그런 상태까지는 꼭 해보십시오. 그래서 중생의 어둠 탁함이 다 사라진 맑고 따뜻한 지혜가 드러나는 상태까지 해보세요.

염불하시는 분은 염불 일념이 되도록만 해보세요. 염불에 폭 빠진 상태가 돼서 염불하는 곳이 무상사인지 여러분의 집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몇 시간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해보시고, 참선 하시는 분은 화두가 더 큰 의심덩어리가 되고 그것이 타성일편이 될 때까지는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맑고 밝은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면 들끓던 오만 생각 자체가 다 없어질 것이며 마음은 아주 고요해질 것입니다. 그럼 마음이 아주 맑아지죠. 아주 맑거나 밝은 상태 가 되도록 꼭 해보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 만물이 아주 한가롭습니다. 삼라만상이 아주 여유 있고 평화롭습니다. 바쁠 것도 괴로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옛날 중국에 방 거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거사의 네 식구가 다 깨쳤습니다. 방 거사는 부모를 잘 둬서 유산을 많이 받았는데 유산을 관리하는 것이 신경 쓰이니 주변 사람들을 나눠 주고 나머지는 호수에 다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유유자적하고 살며 조리도 팔고 무 배추 몇 단 놓고 팔았어요. 누가 와서 사가면 다행이고 안 되면 그만이었죠. 그러면서 세상을 희롱하며 살았어요. 보통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도인은 환경을 농락합니다. 환경을 마음대로 지배하면서 살아요. 지금 서울에서 괴롭게 어렵게 사는 여러분들은 방 거사처럼 세상을 농락해가면서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화두나 염불이나 인연 따라 하되 한 가지만 골똘하게 제대로만 해 보십시오. 부처님 말씀에 심정토정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이 맑으면 내 주변이 맑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가하면 내 마음이 탁하면 내 주변도 탁하고 더럽습니다. <유마경>에도 보살이 정토를 얻고자 하면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정토 유토피아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청정하고 늘 안락하고 맑아야 합니다. 그리고 늘 편안하고 즐거워야 합니다. 정토란 부처님 세상 불국토 극락정토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토는 육도가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생로병사 등 괴로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죠. 일체 괴로움이 다 없어지는 상태 생사윤회를 뛰어넘는 세계를 얘기합니다. 극락정토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정토, 여러분이 말씀하신 정토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수행입니다. 공부가 깊어지면 맑고 밝아집니다. 지극히 편안하고 즐거운 자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정토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을 지극히 하면 여러분 자신이 부처님입니다. 여러분이 앉은 자리가 부처 자리입니다. 참으로 바른 것은 진리를 향하고 있냐, 진리를 깨쳤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그렇게 맑은 상태가 되면 자비가 뚝뚝 흐릅니다. 여래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인 자비입니다. 자비를 떠나서 선법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불법을 공부하는 것은 자비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불자라면 자비에 푹 빠져야 합니다. 그런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본다면 복덩어리는 바다와 같이 무량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목숨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중생에게 자비심을 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사무량심이 있습니다. 자무량심은 온갖 생명체를 사랑해서 애지중지 즐거움까지 주라는 것입니다. 한량없는 마음을 내고 베풀라는 것이죠. 비무량심은 일체 성내는 마음 없이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하는 마음을 꾸준하게 가지라는 것이죠. 희무량심은 기쁨을 주는 것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고 낙을 얻어서 희열케 하라는 것입니다. 사무량심은 일체 탐내는 마음 없이 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분별심을 일체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량없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불자입니다. 그런 마음을 늘 가지십시오. 그런 분이야말로 바로 보살입니다. 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며 보호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중생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기는 것이 동체대비사상입니다. 중생의 어려움이 내가 당하는 것처럼 보살심을 가지고 대승적인 마음으로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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