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김장나누기 ①

2008년 권유로 김장행사 열어
크고 작은 인연 모여 3100포기 김장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김장은 우리절의 연례행사 가운데 가장 큰 행사다. 참가 인원으로 본다면 부처님 오신날이나 봉축음악회가 있지만 투입되는 인력이나 일하는 기간으로 본다면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러니 김장에 대하여 할 말이 좀 많겠는가. 그래서 두 번에 걸쳐서 글을 싣는다.

내가 보성선원에 부임해 온 지 반년 쯤 지난 2008년 가을, 4촌 사형인 현명 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제주시에 삼광사라는 절을 창건하여 봉사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스님이다.

“절 운영은 어떻소?”
“뭐, 별일 없이 세 때 기도하면서 그냥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절에서는 5년 전부터 김장 나누기를 하고 있는데 스님도 한 번 해보지, 그래.”

김장 나누기라면 김장을 해서 불우이웃돕기를 한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현명 스님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삼광사에서는 300통을 만들어서 여기저기에 나눠주는데 그거 하면 좋은 점이 많아요. 어려운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니까 좋고, 우리절이 지역 사회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니까 좋고, 신도들은 자긍심을 느낄 수 있으니까 좋고, 무엇보다 비용이 별로 들지 않아요.”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당시는 우리절이 적자행진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 많은 김장을 담그는데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다구요?”
“스님도 알다시피 우리 절집 불사라는 게 다 절로 된다고 하잖아요. 일단 시작만 하면 저절로 돼요. 내 말 믿고 한 번 시작해 봐. 대구는 신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곳 아닌가.”
“배추랑, 무랑, 고추랑... 그것 말고도 들어가는 것도 많을 텐데 그걸 어떻게 다 충당하시기에 그렇게 말씀하세요?”
“보성선원 신도들은 스님이 좋은 일을 하자고 하는데 뒷짐지고 가만히 있을까? 여긴 자체적으로 돌아가요. 김장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들어와. 거짓말 아니니까 내 말 믿고 시작해 봐요.”

현명 스님은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신도 대표를 만나 김장 나누기의 취지를 설명했다. 신도들은 일이 많을 것을 우려하면서도 내 말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참 착한 신도들이다.

문제는 배추였다. 신도들은 해남 배추가 가장 좋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 나는 건 겨울을 지나면 물러지는데 비해 해남 배추는 해를 넘겨도 여전히 아삭거린다고 하였다. 해남이라면 내가 5년이나 살았던 곳이 아닌가. 거기엔 아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스님 생활을 하다가 환속하여 배추 농사를 짓는 무여 거사가 있었다. 무여 거사에게 전화하여 취지를 설명했더니 좋은 일이라며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해남에서 배추를 실어오겠다고 했더니 신도들은 자신들도 사겠다고 나섰다. 그러다가 결국 3천 포기를 실어와서 일부를 팔고 나머지로 김장을 담가 이웃돕기를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1천 포기를 실어오나 3천 포기를 실어오나 운송비는 별 차이가 없으니까.

2008년 12월 3일, 배추를 실은 트럭이 큰길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큰길로 나갔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나왔다. 배추 3천 1백 포기는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그 큰 트럭에 가득 실린 게 다 배추였다.

우여곡절 끝에 절 마당으로 옮겨진 배추는, 이름 그대로 산(山) 만했다. 우리절 김장 불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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