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제자·승려 등 편지 전달
“새 책력 보내니 받아주세요”
백파 스님과도 선지 나눠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가 담긴 〈벽해타운첩〉

제주 시절 초의에게 보낸 추사의 이 편지는 《완당전집》〈여초의〉20신에 수록된 것인데, 《벽해타운첩》의 발굴로 어느 해 10월 6일 쓴 편지임이 확인된 것이다. 대략 제주 유배 초기의 편지일 것이라 추정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지를 써 놓은 지도 한 달이 지났는데도 이군이 행차를 멈추고 아직 떠나질 않는군요. 영순 스님이 갑자기 이 멀리까지 왔으며, 아울러 (영순 스님이 전해준)그대의 편지를 보니 매우 위로가 됩니다. 지난 가을과 겨울에도 그대가 편안한지 늘 염려했습니다.


나는 전번 편지를 보낼 때와 같이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없을 뿐입니다. 영순 스님의 향학에 대한 뜻이 매우 가상합니다만 돌이켜보건대 나는 우매하여 어느 것 하나도 능한 것이 없은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배를 잡고 웃음이 나는 것을 참지 못하겠습니다. 마침 우리 집 종이 돌아가는 편에 대략 몇 자 부칩니다. 아울러 지난번 써 놓았던 편지도 함께 보냅니다. 이만 10월6일 나옹
백파 스님은 아직도 성 밖, 토굴에 주석하면서 동안거에 무리들을 모아 개강한다고 하니 매우 기쁩니다. 그 사이에 선지를 왕복했던 것이 있는데 만약 그대와 서로 증험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텐데 이런 일을 혼탁한 세상에서 어떻게 쉽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멀리에서 간절히 기다릴 뿐입니다. 새 책력을 보내니 받아주세요


(原已閱月而李君停行不去 永淳?黎 忽此遠到 ?見師書甚慰 秋冬之際 一以禪安念 此狀如原時 無增無減而已 淳之向學底意甚嘉 顧此空空無一物者 何以波及人耶 不勝捧腹 適因家之歸 略付數字 ?原奉及耳 留續  十月六日 那翁 白坡尙在城外 任錫於土窟 結冬聚徒開講云 甚可喜也 間有禪旨往復者 若得如師互相證發 尤可喜而是豈濁世易得者耶 殊切遠翹 新蓂莞收)

초의와 추사의 편지를 전달해 준 인물로는 소치 허련와 추사의 제자들, 그리고 추사 댁의 노복들과 초의와 관련이 깊었던 승려들이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추사의 문하에서 공부하기를 원했던 승려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험난한 뱃길을 마다하지 않고 추사를 찾아 나섰다.
이러한 사실은 추사가 “영순 스님이 갑자기 이 멀리까지 왔으며, 아울러 (영순 스님이 전해준)그대의 편지를 보니 매우 위로가 됩니다”라고 한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실제 추사를 찾았던 영순 스님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초의와 관련이 있었던 승려일 것이라 짐작된다.


따라서 추사는 “영순 스님의 향학에 대한 뜻이 매우 가상합니다만 돌이켜보건대 나는 우매하여 어느 것 하나도 능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인 것이라 여겨진다. 조선의 지성을 대표했던 추사였기에 벽지에서 온 승려를 가르칠 만한 학식이 부족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겸손에는 조선의 선비다운 겸양이 묻어난다. 한편 추사는 백파와도 선지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왕복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그 사이에 선지를 왕복했던 것이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백파는 일찍이 한양 근교 수락산의 학림암에 안거하며 강학을 열기도 하였는데, 이는 “백파스님은 아직도 성 밖, 토굴에 주석하면서 동안거에 무리들을 모아 개강한다고 하니 매우 기쁩니다”라고 한 것에서 확인된다.
특히 추사는 선지에 대해 초의와의 담론을 통해 그의 식견을 확충해 나갔는데, 이는 “그대와 서로 증험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텐데“라고 한 말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추사는 선리를 증험할 수 있었던 대상으로 초의를 꼽았고, 초의를 통해 불교적인 사유를 확대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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