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 대로 살겠습니다”

스님이 내린 게송, 고비마다 버팀목
류종열 前 한국 바스프 대표이사

▲ 류종열 前 한국 바스프 대표이사

류종열(74) 거사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비롯해 효성중공업 대표이사, 기아자동차(주) 및 아시아자동차(주) 법정관리인 및 회장, 그리고 한국바스프(주) 대표이사 등 유수의 기업을 이끌어온 사회 리더다.
그가 대행 스님을 만난 것은 1988년 일이다. 이웃의 소개로 스님을 만난 류 거사는 보는 순간 스님이 너무 좋았다. 당시 대행 스님은 류 거사에게 지병에 대해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제가 당시 피부염을 앓고 있었어요. 가려워서 밤중에도 몸을 긁으면서 잤죠. 그런데 스님께서 신경성피부염이라며 민간요법의 처방을 알려 주셨는데 정말 씻은 듯이 병이 나았어요.”

류 거사와 스님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고, 그는 한마음선원 신도로서 열심히 신행활동을 했다. 그러다 효성중공업 대표이사로 있을 때 그에게 큰 난관이 왔다. 노사간 의견을 조정하는 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사가 서로 요구하는 바가 너무 달랐어요. 사측은 저에게 평균 임금 인상률보다 낮게 임금을 주라고 하고, 또 그렇게 되면 노측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경영자 입장에서는 난감했죠. 그래서 결국 답답한 마음에 스님을 찾아갔고, 스님께서는 저에게 게송을 내려주셨어요.”
천적(天寂)의/ 산하대지가 고요한데/ 내 마음은 물결 따라 / 끊임없이/ 돌아 흐르고/ 류박사의/ 한방울의 마음을/ 음악에 실어 전하니/ 내 눈에 이슬 맺혀/한없이 뿌리며/ 한 그릇의 용탕 끓여/ 밥상 위에 얹었더니/ 일체만생/ 다같이 먹자하여/ 만물만생/다 먹고도/ 류박사 밥상 위에/ 그 한 그릇/ 되 남았노라.

“그렇게 게송을 받고 현장으로 가니 이상하리만큼 모든 일들이 잘 풀렸어요. 노조 간부들이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하며 염소탕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모든 일이 스님이 축복을 내리신 것이라 생각을 해요. 그 노트를 복사해 코팅을 해 가지고 다니다가 최근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렇게 대행 스님은 류 거사에게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버팀목이 돼 주었다.

“지금도 계속 마음에 남는 건 스님 생전 마지막에 제가 친견을 안 했다는 거예요. 다른 신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후회가 되네요. 늘 스님이 그립습니다. 앞으로 스님의 뜻을 잇는 많은 제자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정혜숙 기자

스님 사진에 매일 108배… 법향 그리워
김재진 시인

▲ 김재진 시인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등 감성적 시들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김재진 시인.

명상 인터넷방송 유나방송 PD로도 잘 알려진 그는 대행 스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삶의 전환을 이뤘다. 그 만큼 스님의 1주기가 깊게 다가온다고 밝혔다.

“스님은 가셨지만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계시지요. 그래도 스님을 친견하고, 그 음성을 듣고, 그 법의 향기를 어렴풋이나마 간직하게 되었다는 그것만으로도 이번 생이 행운이며 기회였구나 하는 마음으로 1주기를 맞습니다.”

김 시인의 작업 공간에는 대행 스님의 사진이 놓여 있다. 스님과의 인연을 맺은 후 삶의 고비마다 스님을 떠올리며 기도를 해왔다. 특히 스님의 열반 전후로 찾아온 고비에도 스님의 사진을 향해 매일 108배와 기도를 시작했다. 이 원력으로 김 시인은 삶의 고비를 무사히 벗어났다.

처음 대행 스님의 가르침을 접할 때에도 김 시인은 부침을 겪고 있었다. 잘 나가는 방송국 PD를 그만두고 낭인처럼 떠돌던 시절, 차 안 구석에 있던 대행 스님의 법문 카세트 테이프를 짚어 재생시켰다. 김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법문을 듣는 순간 뭔가 굉장한 폭발음을 내며 의식이 폭발하는 듯”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지요.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던 많은 것들이 나와 타인이 함께 바라보는 시
각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세상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니 자연스럽게 시 세계도 달라졌다. 단순히 언어유희가 아닌 삶을 직관적으로 반추하는 시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문을 크게 열어젖혔던 스님의 영향은 제가 쓰는 시를 단순하고 쉽게 만들었습니다. 언어의 유희에 재미들인 알쏭달쏭한 시가 아니라 언어를 떠나 직관적으로 오감에 내리꽂히는 시를 선호하게 됐습니다.”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할 곳이 없다’는 스님의 가르침을 삶의 지남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김 시인. 그는 입으로 말하는 진리가 아닌 행동으로 불법(佛法)을 실천하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에 보답하고, 1주기를 맞는 제자의 자세라고 거듭 강조했다.
“입으로 진리를 말하기 전에 마음에 그 뜻을 새기고, 마음에 새긴 그 뜻이 행동으로 옮겨져 세상에 힘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합니다.” 신중일 기자

‘내안의 주인공’가르침, 항상 되새겨
이화행 동명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 이화행 동명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1997년 독일에 한마음선원 지원이 설립됐다는 소식에 처음으로 사찰에 나갔습니다. 당시 처음 뵌 대행 스님은 저와 저희 가족의 독일 생활에 큰 힘을 주셨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은 모두 대행 스님과의 인연 덕분입니다.”


현재 부산지원 신도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등 활발한 신행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화행 동명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이 교수는 큰 스님 1주기를 맞아 독일 유학 당시 대행 스님과의 인연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처음 뵈었을 때 스님이 ‘마음을 편히 가지면 모든 일이 잘 될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어요. 당시 개원기념 법문을 듣고 받은 느낌은 ‘세상에 이런 가르침이 있을 수 있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내 내면을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교수는 독일지원을 처음 찾은 이후 매주 일요일마다 정기법회에 빠짐없이 참여하게 됐다. 가족이 있었지만 한국인이 적었던 독일 사회에서 지원장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의 격려는 그에게 큰 힘이 됐다.
“당시 유학을 하고 있던 젊은 부부 5쌍이 있었어요. 우리들은 독일에서 사는 도시가 각각 달랐지만 정기법회를 기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임을 갖고 법회 후 저녁마다 밤을 새워가며 신행담과 독일 생활, 그리고 학문에 대한 얘기를 나눴어요. 그 덕분에 학업도 열심히 할 수 있어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현재도 대행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이 교수는 “큰 스님께서 말씀하신 ‘내 안에 나를 지키는 주인공이 있다.’는 가르침을 항상 지니고 산다”며 “큰 스님의 육신은 떠나셨으니 우리들 마음에 항시 같이 있다는 생각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노덕현 기자

뜻으로 푼 〈반야심경〉 읽고 발심
이예은 〈한마음저널〉 홍보담당

▲ 이예은 <한마음저널> 홍보담당

이예은 보살(46)은 현재 한마음저널 웹홍보 담당을 맡고 있다. 한때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는 가정생활이 너무 힘들어 헤맨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울면서 차를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들어섰는데 바로 한마음선원 앞이었다. 이 보살은 어르신들이 앉아 좌선을 하는 광경에 사로잡혀 법당에 앉았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뜻으로 푼 천수경> <뜻으로 푼 반야심경>을 읽기 시작했다. 구절구절이 와 닿았다. 2005년 가을의 일이었다.

이 보살은 그때부터 한마음선원 신도가 됐다. 대행 스님 말씀을 비디오 법문으로 들었지만 법문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게 그녀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그때까지 종교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 의지하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선원에 오고부터는 서원을 세우고 108배를 하면서 100일 동안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알았죠. 내 마음이 상대를 분별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 사람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요. 제 원망 미움의 마음이 스르륵 녹았어요.”

이후 이예은 보살의 가족은 원만해졌다. 모두가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 피디가 꿈이었던 이 보살은 영상제작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되면서 직업도 생겼다. 영화 촬영 작업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주중에는 영화 촬영을 하고 주말에는 선원에 나가 영상 봉사를 했다. 너무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마음저널 팀에서 영상 일을 맡아줄 수 없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저는 70억 인구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렇게 행복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큰스님의 가르침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인생을 구원받은 것처럼 스님의 법문으로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정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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