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살림을 위한 불자청규

자연과 인간은 서로 ‘공생의 삶’ 살아야
생태사회는 불편 즐기며 천천히 사는 것
쓰레기 없는 일상이 완전순환의 삶
나누며 살면 자신에게 더 큰 행복 줘

▲ 템플스테이 참가자 앞에 놓은 발우. 불교사상에 담긴 생태적 삶의 실천이 지구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다.
1. 승재가공동체의 불자청규
청규는 부처님 가르침을 수승히 따르고 여법한 수행을 하기 위해 승가공동체가 지켜야할 규칙으로 당나라 백장청규 이후 지금까지 선방총림서 만들어 지켜왔다. 불자라면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 ) 등 5계는 반드시 지켜야할 계본이다. 그러나 이제 승재가를 포함해 생명을 살리고 생태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자로서 지켜야할 삶의 규범으로 8가지 청규를 제안하고자 한다.

① 모든 생명은 나와 한몸임을 깨달아 공경하고 섬기는 삶을 산다
천지자연은 수많은 생명들로 이루어졌고 우리 인간도 이들과 더불어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그래서 우리도 뭇 생명들과 한 몸임을 깨닫고 이들을 나의 부모, 형제 처럼 소중히 여기고 겸손히 공경하며 섬기도록 한다.
따라서 모든 생물, 무생물은 우주적 생명의 합작품임을 깨달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생명을 죽이지 않고 소중히 생각하며, 생명을 살리는 방생을 실천한다. 이뿐아니라 자연의 생물을 보호하고 동물의 가죽을 이용한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육식위주의 식사를 삼가고, 자연에 피해를 주는 농약, 살충제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② 미래세대와 뭇생명 미래를 고려해 자연을 이용한다.
자연은 인간이외의 많은 생명들이 함께 이용하고 앞으로 미래세대가 이용해야 할 터전으로 우리는 잠깐 사용하는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자연을 이용할 때는 미래세대와 생명을 배려해야하며 그들과 형평성이 고려된 사회가 구현돼야 하며 서로 살리도록 이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연을 이용하는 행위는 꿀벌이 꿀을 따듯 서로 도움이 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자연은 미래세대와 많은 생명들이 함께 쓰는 것, 그들의 의사를 반영한 의사결정을 한다. 그리고 자연은 지역주민들이 이용의 주체이며 이들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뒤에 이용돼야 한다. 또한 자연은 충분한 조사과정과 피해에 대한 대책이 준비될 때까지 함부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③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끼리 서로 살리는 공생의 삶을 산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며 인간끼리도 대립과 경쟁의 상대가 되어서도 안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은 서로를 관계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을 살리며, 땅을 살리고 이웃을 도우며, 인간과 다른 생물 사이의 평화를 이루는 생명살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나무와 숲을 가꾸고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농업과 농촌, 농민을 지키고 땅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가능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이용한다. 또한 전통과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마을이나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드는 실천의 주체가 된다. 그리고 가난한 이웃과 나라를 돕고 평화를 이루는 일에 앞장선다.

④ 소욕지족(少慾知足)의 삶을 통해 아름답고 소박한 삶을 산다.
보다 많이, 보다 크게, 보다 빠르게 하려는 인간의 마음이 경쟁과 전쟁, 폭력과 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화려한 의복과 맛있는 음식, 큰 집을 고집하는 것은 불자된 자세가 아닌 것을 알아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지 않고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 단순하고 멋스러움을 누리는 삶을 살도록 한다.
그리하여 큰집, 큰 물건의 사용을 줄이고 작게 사는 삶, 자발적으로 청빈한 삶을 산다. 그리고 충동구매하지 않고 계획구매하며 최대한 적게 소비하는 지혜로운 생활을 한다. 또한 맛에 탐닉하지 않고 각종 첨가제나 오염에 찌들린 식품을 만들거나 먹지 않는다. 그리고 물을 절약하고 에너지를 최소로 이용하되 대체할 만한 에너지를 찾아 사용한다.

⑤ 항상 자신을 살피며 마음 닦는 수행의 삶을 산다.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며 욕심에 휩쓸리지 않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언제나 깨어있는 삶을 산다. 항상 명상과 기도, 참선 등의 수행을 통해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의 풍요를 누리며, 이웃과 자연과 일체임을 깨닫는 삶을 산다.
그래서 항상 정해진 시간에 명상과 기도, 참선 등의 수행을 하도록 한다. 또한 욕심과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로움을 유지한다. 그리고 고통 받는 이웃의 아픔은 바로 나의 고통임을 알아 타인의 필요를 위한 삶을 산다. 또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혼신을 다하는 것을 마음자리 밝히는 수행으로 삼는다.

⑥ 분별의 삶을 내려놓고 다양성을 풍요로움으로 여기는 삶을 산다.
깨끗함과 더러움, 소중함과 하찮음, 좋음과 싫음은 실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의 마음이 일으킨 분별이다. 따라서 익충과 해충, 흑인과 백인, 여성과 남성 등을 분별하지 않고 차이를 차별로 대하지 않고 다양성을 풍요로움으로 여기는 삶을 산다.
따라서 좋고 싫음을 구별하지 않고 더러운 것, 하기 싫은 것을 흔쾌히 내손으로 한다. 그리고 일체의 경쟁하는 삶을 중단하고 서로 살리며 공생하는 삶을 산다. 또한 여성, 어린이, 장애자 및 외국인노동자 등을 차별하지 않고 소중한 인격으로 존중한다. 그리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사회적 풍요로움으로 생각한다. 

⑦ 불편함을 즐기며, 천천히 사는 삶을 누린다.
자신만의 편리함을 추구해 온 것이 바로 생명파괴의 주된 원인이었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한편에서는 산을 무너뜨리고, 쓰레기 더미가 쌓이며, 화학약품 등이 버려지고 있다. 목표에 집착하여 서두르지 않고 절차와 과정의 소중히 하며 천천히 일궈나가는 삶을 산다.
그래서 과도한 청결은 금하고 천천히 사는 삶, 불편하게 사는 삶을 살도록 한다. 또한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걷는 즐거움을 누리도록 한다. 그리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가능한 집에서 직접 만들어 쓰는 즐거움을 누린다. 또한 마을과 사찰을 잘 가꾸고 지역의 자연을 살리는 활동에 참여한다.

⑧ 잘 썩는 삶, 순환적인 삶을 산다
모든 것은 순환하여 결국 내게 다시 돌아오는 이치를 알아,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맞지 않는 인공적인 물건을 생산하거나 소비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물건을 아껴 끝까지 쓰고 적절히 불편을 즐기는 삶을 산다.
따라서 썩지 않는 물건, 자연 분해되지 않는 물건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유산보다, 아름다운 자연을 비롯한 삶과 행동을 물려주는, 잘 썩는 삶을 산다. 또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며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생활은 한다. 그리고 쓰레기가 없는 생활, 버리는 것이 없는 생활양식을 통해 완전 순환되는 삶을 산다.

2. 불자들의 사회적 켐페인 (3S+3S의 삶)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life is Beautiful)
불자들의 삶은 결국 ‘작게 사는 삶(Small Life)’을 사는 것이다. 큰 것(大)과 많은 것(多)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오늘날 위기를 초래하고 개인 간, 집단 간, 국가 간의 전쟁과 갈등을 야기시킨 원인이 되었다. 결국 작게 사는 삶을 지향할 때 평화도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물질적으로 청빈하게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삶이다. 그래서 마음공부, 수행과 기도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조견(照見)하며 사로잡힌 마음을 돌아보고 내려놓는 것을 일상화하며 법회참여를 빠지지 않고 정례화 한다. 이러한 수행의 힘이 바로 모든 삶의 기본 동력(Engine)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큰 것에 욕심내지 않고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삶을 산다.

천천히 사는 삶이 아름답다 (Slow life is Beautiful)
불자들의 삶은 또한 ‘천천히 사는 삶(Slow Life)’을 사는 것이다. 경쟁은 죽음의 원리이다. 그러나 협력과 배려는 살림의 원리인 것이다. 경쟁은 곧 상대보다 앞서가려는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빠른 것을 더욱 빨리 이루려는 사회에서는 결국 목표에 집착하는 사회가 되고, 과정이 손상되는 것이다. 상대를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며 관계가 파탄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밥 먹고, 천천히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고 삶을 즐기는 것, 그래서 천천히 사는 과정에서 자연과 주변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 (Share Life is Beautiful)
불자들의 진정한 삶은 ‘나누는 삶 (Share Life)’을 사는 것이다. 생태계는 서로 의존하고 상부상조하는 삶을 살고 있듯이 우리의 삶도 결국 생태계의 순환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삶은 바로 수많은 생명의 ‘은혜와 덕분’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들의 은혜를 갚는 ‘보은의 삶’ ‘타인에게 잘 쓰이는 삶’ ‘배워서 남주는 삶’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버는 돈과 시간의 일정부분을 타인과 나누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의 능력까지도 나누도록 해야 한다

생명과 정신, 지구를 구하는 불자의 삶
(Save Our Life / Save Our Soul / Save our Earth)

그것이 바로 ‘우리 생명을 살리는 일(Save Our Life)’이며 우리의 정신을 살리는 일(Save our Soul)이자 ‘지구를 살리는 일(Save the Earth)’인 것이다. 불자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깨달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나누고 베푸는 삶은 초기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스스로 나눈다거나 베푼다는 의식까지도 끊어져 체화 되어야 한다. 개인의 깨달음은 자신의 의식적 각성에서 시작되어 결국 사회적 깨달음으로 확장되어야 궁극에는 다시 자기 자신의 깨달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손해가 되는 것 같지만 이러한 삶이 결국 자신의 삶을 구하고, 지구를 구하는 삶이 될 것이다. 불교가 미래의 종교라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불자들의 미래지향적인 삶을 증명해내야 한다. 북경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뉴욕에 태풍이 분다는 것처럼  작은 실천은 커다란 변화의 씨앗이 된다. 역사 속에 격동의 변화도 처음에는 작은 행위에서 시작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삶은 타인을 위한 삶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더 큰 행복을 만들어 주게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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