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協治), 더 나은 녹색정치

저탄소 녹색성장…‘민-관 거버넌스’要
거버넌스는 새 정치 참여 및 공무 방식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네트워크 중시
〈의제 21〉은 거버넌스 대표적 정책 사례

▲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가 열린지 20년 만인 지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지속가능발전회의’. 리우의 〈의제 21〉은 생태 정치의 한 모델이지만 한국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속도의 정치, 소통의 생태정치로
요즘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키워드는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수렴, 반영하여 이를 토대로 정책결정을 하는 것이다. 소통은 “상부에서 명령하면 하부에서 복종한다 (上命下服)”는 방식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소통의 정치는 과정의 정치이다.

빨리 결론 맺고 정책결정을 하려한다면 소통은 필요하지 않다. 민주화를 희생시키면서 근대화와 압축적 경제성장을 해온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정으로서의 정치보다는 강력한 정부의 빠른 결정과 일사분란한 집행에 익숙해져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것을 불필요한 답답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보이지 않게 구축되어왔다. 여기에 ‘빨리빨리’라는 한국의 특유의 문화가 결합되면, 과정의 정치는 국민이나 정치인 모두에게 비효율적인 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결정에 대한 효율성에 대해서는 이미 판단이 끝났다. 4대강개발의 사례를 보라. “내가 다 해봤는데”의 정치, “처음에는 반대해도, 해놓고 나면 다들 좋아한다”는 이명박정부의 토목공사식 밀어붙이기는, 단기적으로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결국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며, 잘못된 결정으로 예산낭비와 행정력의 손실, 국론분열의 낭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졸속 결정으로 인해 엄청나게 훼손된 자연환경의 피해를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그래서 천천히 차분하게 과정과 절차를 소중하게 여기는 정치가 느리지만 오히려 더 빠른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민-관의 협력적 거버넌스로 변화돼야
태안앞바다에서 벌어진 기름유출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100만명의 자발적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에 참여를 했다. 일본의 고베지진과 3.11대지진 당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구호활동은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2005년 미국남부의 허리케인인 카트리나로 인한 피해에 군대가 출동하기 전까지 민간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한 복구과정과 그들의 희생적 노력을 보면서 이제 국민들이 그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변화의 진정한 주체가 되도록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 저탄소녹색성장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산업,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감축과 친환경에너지 이용을 촉진하겠다고 선언했고, 녹색생활실천을 통한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속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질적으로 실행 하려면 광범위한 ‘민-관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안되면 되게하는’ 밀어붙이식 토건문화에서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문화였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지를 계획하고 조직화하지 않으면 이제 그 어떠한 사회적 변화도 이끌어 낼수 없다. 이제 정치는 시민들의 다양성을 구현하고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운영원리가 되고 있다.

더많은 참여를 위한 생태적 민주주의
최근에 정치에서 유행어라고 한다면 ‘거버넌스 (Governance)’라는 용어이다. 영어로는 직역하면 ‘통치’라는 말인데, 새로운 의미에서 ‘뉴 거버넌스’, ‘민관 협력적 거버넌스’를 그냥 통칭 ‘거버넌스’라고 칭한다. 그러한 의미의 거버넌스를 협력적 정치라는 의미로 ‘협치(協治)’라고 번역한다. ‘거버넌스’는 새로운 정치의 참여방식이자, 공적업무의 수행방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거버넌스(협치)는 과거의 ‘통치’와 어떻게 다를까?
과거 통치는 오직 중앙정부와 소수의 결정권자만이 정책결정을 할 뿐이고, 국민들은 그저 4~5년에 한번있는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길은 아주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자가 많아져 과거처럼 중앙정부가 복잡다단한 일들을 일일이 계획하고 조정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더욱이 밀어붙이기 통치로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거버넌스의 중요한 특징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정치 및 사회적 단체, NGO, 민간 조직 등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네트워크를 강조한다. 여기서 정부는 전통적인 정부처럼 우월한 입장에서 있기 보다는 이해당자사들의 입장을 잘 조정하여 결정하게 하는 촉진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정책결정 과정에서 의제를 제시하고 이것을 실행하는 과정에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놓고 토론하고 논쟁하며 합의하는 과정 그 자체를 중요하게 본다.

이렇게 합의되고 결정되면 전통적 정부는 자기들이 홀로 집행의 책임을 지지만, 거버넌스 방식에서는 그 집행의 책임도 최대한 골고루 나누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합의가 된 다음이 중요하다. 과정에 참여하면 결국 집행에도 책임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집행결정에 대한 취지와 내용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제를 자신이 해결해야할 과제로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 구조의 영향으로 정부와 사회의 역할분담이 달라진다. 하향적이고 집권과 통제의 전통적 방식에서, 사회의 자기 조절능력, 서로 공동규제의 능력, 공동조정, 공동지도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거버넌스는 복잡한 사회속에 수많은 이해당사자들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합의내용의 실행도 분담하면서 훨씬 더 많은 민주주의와 참여를 만들어내며, 더 많은 자발성을 끌어내는 ‘유연한 정부, 탈규제적 정부, 시장정부, 참여적정부, 최소국가’로서 전환을 지향한다.

거버넌스의 대표적 사례, Agenda 21
92년 브라질 리우에서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UNCED)’ 일명 지구정상회담(Earth Summit)이 개최되었다. 여기서 노르웨이의 여성총리 브룬트란트가 중심이 되어 10년간 토론으로 작성된 보고서 ‘우리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가 제기한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 (ESSD)”를 토대로 리우선언을 했고, 이를 실행하는 의제21(Agenda 21)이 발표되었다.

의제21은 세계, 국가, 광역과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각각 발표하도록 권장했다. 그런데 채택해 발표하는 과정서 반드시 9개의 주요그룹 즉, 정부, 여성, 청소년, 원주민, 노동, 농민, 시민사회단체, 기업이 대등한 파트너쉽 (Partnership)을 갖고 참여하게 됐다. 그래서 이들이 스스로 토론을 통해 목표를 정하고 실행기간을 정해 정부, 시민단체, 기업 등 각각의 행위자들이 정해진 목표를 위해 실행 책임을 공동으로 지으면서 행동하기로 한 약속문서이기도 하다.

이 의제 21은 ‘리우선언’이라는 국제적 원칙이 정해지고, 국가와 지방정부, 또 기초단체수준까지 내려가 그곳의 이해당사자 모두를 불러내 참여하게 만든 환경문제해결을 위한 거대한 세계변혁 프로젝트로 주목 받았다.

더 나아가 이 새로운 변혁 방식은 정부나 자치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단체나 기구, 조직들이 다양한 참여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공동행동을 약속하고 실행하는 방식으로 많이 활용됐고, 2006년 조계종도 <불교의제21>을 만들어 배포했다.

서울에서는 녹색서울시민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서울의제21>이 만들어진 이후 전국 대부분의 광역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지방의제21>이 완성돼 실행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래서 이들 지자체들이 모여 ‘지방의제21전국협의회’를 만들었고, 김대중대통령 재임시, 국가행정 각부처의 정책을 ‘지속가능성’의 관점서 조정하는 자문기관으로서 ‘대통령직속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처럼 ‘의제 21’은 거버넌스의 대표적인 정책사례로 이후 정책변화의 한 전범이 되었고, 생태정치의 한 모델이 되었다.

녹색사회적 운영, 생태적 운영원
환경위기를 앞두고 이제 한 국가에 갇힌 사고에서 전지구적 차원으로 안목과 시야를 확대하도록 요구받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것이 연결되고 연관된 세계문제와 환경문제위기를 앞두고 한 국가만의 고립된 문제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차원에서 생각하고 지방차원에서 행동하라 (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것이 중요한 정책 모토가 되었다.

한편으로 세계적 관점에서 지역의 문제를 바라보는 ‘세방화 (Glocalization)’가 강조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지세화 (Lobalization)’의 시각도 강조된다. 이런 정치원리는 국제적 책임감과 그 시각을 확대하되 지역단위의 실천이 강조되면서 그 사이 국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결국 지역단위의 자립적, 공동체적 완결성을 갖는 사회로의 변화를 지향한다.

또 녹색운영원리는 ‘참여와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의미한다. 이전의 정치원리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 법칙이었다면. 그런 원리는 녹색사회를 이루는데 적절하지 않다. 상호보완, 협력과 공생 및 상생을 가치로 하는 녹색정치는 정당정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녹색정치는 지역단위서 자치와 공동체를 이루어 자립적 역량, 민주주의의 역량을 키우는 모든 행위이며 곧 생활정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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