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두려움의 미학

험상궂은 얼굴의 사천왕
스스로 ‘僞惡’ 된 배트맨
희생통한 이타적 존재 닮아

“佛法 사칭한 사이비들은
사천왕의 분노 두렵지 않을까”  

▲ 여수 흥국사의 사천왕(사진 왼쪽)과 역대 배트맨 시리즈 중 최고로 평가 받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사진 오른쪽). 험상궂은 얼굴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 사천왕과 악을 퇴치하기 위해 스스로 두려움의 존재가 된 배트맨은 서로 공통점을 가진다.
문은 공간과 공간을 가르는 경계이다. 어느 세계에 살든, 가보지 않은 세계는 매력적이다. 문 안쪽의 사람은 문 바깥의 세계를 꿈꾸고, 문 바깥의 사람들은 문 안쪽의 세계가 궁금하다. 세상 사람들은 가문(家門)을, 출가자들은 산문(山門)을 가지고 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문을 통과하여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세간에서 출세간으로 이르는 입구
출세간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에 세 개의 문이 있다. 문을 하나 통과할 때마다 마음은 정화되고 의식은 맑아진다. 문이 없는 문, 일주문(一柱門)과 하늘의 문, 사천왕문을 거쳐, 성(聖)과 속(俗)의 세계를 둘로 나누면서도 하나로 잇는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하면 마침내 청정한 땅, 부처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적묵의 세계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아무나 지나가지 못한다. 하늘의 왕들이 눈을 부릅뜨고 손에는 칼을 들고 발로 사나운 악귀를 짓밟고 서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악한 자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갈 것이다. 바로 이들이 사천왕(四天王), 호세천왕(護世天王)이다. 그들은 욕계의 여섯 하늘 가운데 가장 낮은 하늘에 거주하면서 부처님을 지키고 불법을 믿는 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동쪽 하늘에 거주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부처님의 나라를 지키는 신이다. 서쪽 하늘에 거주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눈을 부릅뜨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못 생기고 거친 그의 눈은 힐끗 보기만 해도 겁을 먹어 다시는 악한 짓을 못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가장 겁나는 눈은 부릅뜬 눈이 아니라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눈이다.

남쪽 하늘에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이 살고 있다. 그는 모든 생명을 기르는 신이다. 북쪽 하늘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다.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모든 것을 듣는 신, 그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하지만 부처님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이후로, 그는 역할을 바꾸어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제도하는 신이 되었다.

불법의 수호자, 사천왕
원래 사천왕은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인 야차들이었다. 그저 완력과 신통력을 자랑하던 그들을 변화시킨 것은 부처님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후, 그들은 불법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설법이 행해지는 공간과 불법에 귀의한 사람들을 지키는 호법신장(護法神將), 불교의 호위무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사천왕들이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선택한 무기는 칼과 창이 아니라 사실은 분노와 두려움이라는 심리적인 힘이다. 찌푸린 미간과 튀어나온 눈, 이글거리는 눈빛, 크게 벌이거나 꽉 다문 커다란 입,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험악한 얼굴과 우락부락한 몸에 창과 칼을 들고 살짝 위협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사방의 천왕이 도열해 있는 문은 삼엄하기 이를 데 없다.

광목천왕과 다문천왕은 매서운 눈빛으로 멀리까지 지켜보고 있고 지국천왕과 증장천왕은 위협하듯 눈을 부릅뜨고 서 있으니, 결계(結界)가 이루어져 청정한 부처님 세계는 그 어떤 삿된 것도 범접하지 못한다.

하지만 니체가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했던 것처럼 악마를 이기기 위해 악마성을 차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천왕은 분노와 두려움이라는 악마적인 힘을 이용했을까? 표면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사천왕을 악귀가 아닌 천상의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천왕과 배트맨의 공통점은
초능력을 발휘하여 악당을 해치우고 지구를 구하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은 사천왕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은 외계인인 경우도 있다. 가끔 사고를 통해 우연히 초능력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악신에서 선신으로 변하는 사천왕 이야기의 감동 같은 것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내가 아는 한, 배트맨도 B급 감성의 그저 그렇고 그런 슈퍼히어로 중 하나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 삼부작 시리즈에서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진짜 영웅이 되는가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주인공은 타고난 장사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그는 무술로 단련된 몸과 엄청난 재산으로 얻은 최첨단 과학기술 덕분에 슈퍼히어로가 되었지만, 그의 가장 강력한 적은 눈앞에 있는 악당들이 아니라 어린 시절 우물에 떨어졌을 때 느꼈던 두려움이었다.
“문제는 적이 아니야. 진짜 적은 네 안에 있어. 넌 너 자신을 두려워해.”

그를 진짜 영웅으로 만든 것은 마음의 힘이다. 무의식 깊이 각인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의식을 통제할 수 있었을 때 그는 진짜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그러므로 고담시로 돌아온 뒤, 악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전략은 어린 시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박쥐인간, 배트맨이 되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으면 두려운 법. 넌 적의 악몽이 되어야 해.”

이제 자신을 두렵게 했던 힘이 적을 두렵게 하는 힘이 된다. 하지만 악한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두려움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상징이 되고자 했다.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다크 나이트〉에서는 ‘선 그 자체를 위한 선’의 반대편에 있는 ‘악 그 자체를 위한 악’의 존재와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보여준다. 배트맨과 조커는 그렇게 추상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선과 악의 상징이다.

배트맨 시리즈 완결편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어둠의 감옥에 갇힌 주인공에게 탈출을 권하는 늙은 죄수의 입을 통해 다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려움이 없는 자는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그의 역설에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던 것처럼 두려움은 인간의 한계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에는 그 어떤 절박함이 있기 마련이다.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생사를 걸 때 희망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두려움은 한계를 넘어 길을 연다.

이미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한 주인공에게 두려움은 고담시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절망으로부터 나온다. 탈출을 감행하며 그는 그 두려움과 맞선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인공의 두려움은 〈배트맨 비긴즈〉의 두려움과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것, 그야말로 보디사트바의 두려움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의 위대함은 살인을 하지 않는다거나 법에 의한 징계를 한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를 버리고 헌신하는 것에서 완성된다. 고담 시민을 위해 완전히 헌신하기 전까지는 배트맨은 “아직”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명을 바침으로써 그는 전설적인 존재가 된다. 곧 그 전설은 사람들 마음에 위대한 존재의 상징으로 살아남아 세상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배트맨이 정말 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선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배트맨 시리즈 전체를 일관하는 주제는 어떻게 평범한 인물이 전설적인 존재, 선의 상징이 되느냐가 아닐까?

배트맨은 현대판 사천왕 이야기
다시 사천왕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얼굴 표정의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사천왕은 우리를 지켜주는 착한 신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천왕의 추하고 험상궂은 얼굴 표정은 분명 신적인 존재에게 어울리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상의 신들은 아름답고 순수하고 고귀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힘은 폭력이나 완력이 아니라 설득과 감동, 지혜와 자비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간보다 강력한 힘과 신통력을 가졌지만 아직 감정과 형상을 떠나지 못한 욕계의 존재인 사천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힘인 분노와 두려움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천왕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자는 악당뿐이다. 마음이 청정한 자는 두려움이 없다. 불법을 진실로 믿고 따르는 자에게도 두려움은 없다. 그래서 상대방을 겁먹게 해서 제압하는 것은 사악한 자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이지만, 사천왕은 적들의 전략을 역으로 이용하는 역발상의 비책을 썼던 것이다.

고귀한 자들도 분노한다. 위력을 과시하여 악한 자들을 두려워 떨게 만들지만, 그들은 순수한 이타의 의지로 말미암아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흑기사, 다크 나이트가 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다문천왕 역시 북쪽 어둠의 하늘의 왕이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는 어둠을 상징하는 검은 색이 칠해져 있다. 그러므로 위압적이고 폭력적 표정에도 불구하고 사천왕을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배트맨이 그랬던 것처럼 타인을 위한 완전한 헌신이 아니겠는가?

악으로부터 선을 보호하기 위해 두려움이라는 심리적인 힘을 사용한다는 점과, 완전한 이타적 희생을 통해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사천왕의 이야기와 놀랍도록 닮았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는 현대판 사천왕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사천왕의 분노를 팔아먹는 자들이 있다. 청정한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을 까탈이나 부리는 타부의 신으로 만들어 무지한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있다. 문을 지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용기가 없는 자들이 문 앞에서 입장권을 팔고 있다. 그들에게 문은 더 이상 문이 아니다. 잡탕의 세계만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배트맨이 선량한 시민을 위협한 적이 있던가? 그가 두려워 떨게 만들려고 했던 자들은 돈에 눈이 멀어 부패한 관료, 세상을 송두리째 파괴하려는 악당, 이념에 빠져 사람을 보지 못하는 조커 같은 아나키스트들이다. 불법을 수호하고 불법에 귀의한 사람을 지키기로 서원한 사천왕은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오히려 그들이 분노하는 대상은 불법을 사칭하는 사이비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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