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신불교의 문제점과 한계

▲ 암베드카르의 저서인 〈붓다와 그의 가르침(the Buddha and his dhamma)〉과 암베드카르

신불교도들, 종교적 정체성 확립 못해
억압하던 힌두 신분제 해방에만 관심
불교기념일·힌두기념일 함께 기려
암베르카르 불교교재에만 의존 문제

인도의 신불교는 불가촉천민들을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로 인한 차별에서 해방시키려는 의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인도에서 신불교가 생겨난 이후 인도 사회, 특히 힌두들이 그들을 완전히 독립적인 종교 집단으로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남아있다.

불가촉천민들의 개종을 반대해 온 극우힌두정당의 대표는 부처님은 새 종교를 제창하신 것이 아니라 인도의 고대 사상을 새삼 강조했을 뿐이라고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힌두성전인 바그바드 기타에서 나온 것이고 부처님은 힌두신인 비슈누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실제 인도의 국립대학에서 불교역사를 가르치는 강사에게 ‘혹시 불교신자이신가요?’라고 질문을 했는데 그 대답이 ‘나는 브라만이야.’이어서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가부가 아닌, 자신의 카스트를 드러내는 그의 대답에서 ‘상위 카스트인 내가 어떻게 불교도일 수 있겠는가!’하는 뉘앙스를 읽고 씁쓸했다.
이런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전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이 모두 불교신자인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1951년 180,823명이었던 불교인구가 집단개종이 있은 이후인 1961년에는 3,250,227명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실시된 인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당시 인도의 불교인구는 7,955,207명이다. 이 중 암베드카르의 고향이자 개종식이 열렸던 곳인 마하라쉬트라주의 불교신도는 5,838,710명이다. 이것은 인도전체 불교인구의 73%를 차지하는 숫자이다. 이것은 신불교가 전 인도에 걸친 종교세력이 되지 못하고 암베드카르가 속한 카스트와 그의 추종자들 내에서만 호응을 받은 것임을 드러낸다. 암베드카르의 개종호소에 다른 지역의 불가촉천민들은 사실 다소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암베드카르가 개종 이후 2개월만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속적인 활동으로 전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개종 후에도 많은 신불교도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한 인도의 사회학자는 암베드카르의 카스트인 마하르 출신 신불교도들의 가정을 방문했는데 여러 가정에서 붓다와 암베드카르의 사진과 함께 여전히 힌두신들이 집안에 모셔져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불교기념일과 함께 힌두기념일을 기리고 있는 신불교도들도 많았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은 불교도이자 힌두교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신불교와 힌두교의 완전한 결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처음 신불교도들은 개종을 할 때는 불자가 되는 것 보다는 힌두교를 떠나는 것이 더 시급했다. 따라서 일부 신불교도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종교를 떠나는 것에 만족했고 새로운 종교에 대한 학습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이런 현상은 현재도 마찬가지이고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의 불가촉천민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하위층에 속해 있기 때문에 불교를 배우는데 몰두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불교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상태에서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도에는 불가촉천민들과 하위카스트를 위한 할당제가 있다. 이것은 불가촉천민들이나 하위카스트들을 위해 국회에서도 의석의 일정비율을 할당하고 공무원 시험에서나 대학에서도 그들을 위한 배정이 있어 일정비율의 신입생을 그들 중에서 선발해야 하는 법적 규정이다. 1990년 이전에는 힌두교에서 타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헌법상의 하층민 보호조치를 누릴 권한을 상실했다. 이런 사회적 불이익 앞에서 많은 불가촉천민들은 개종을 망설였다. 이는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불교로의 개종이 큰 호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행히 1990년에 있었던 헌법개정으로 인해 개종 전의 카스트가 불가촉천민에 속하는 카스트일 경우에는 개종 이후에도 헌법이 정한 보호조치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불교단체들을 불가촉천민들에게 불교개종을 호소하면서 이 점을 크게 홍보하고 있다.

신불교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암베드카르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이 불교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할 위험까지 가져왔다는 점이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들에게 불교를 알리기 위해 〈붓다와 그의 가르침〉을 저술했는데 이는 경전 등을 쉽게 접하기 어렵고 팔리나 산스크리트어를 잘 알지 못하는 신불교도들에게 거의 유일한 불교교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책을 통해 불교들 받아들이는 신불교도들은 암베드카르가 저술한 내용에 일말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암베드카르의 말은 부처님의 말과 동일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책에서 암베드카르는 개인적인 견해들을 많이 첨가했는데 그 중에는 기존의 불교도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 또한 많다. 그러나 암베드카르에 대한 존경심으로 인해 심지어는 일부 학자들마저도 전통의 불교해석과 다른 그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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