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화생(蓮花化生)→만병화생(滿甁化生)

이 연재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국불교미술’은 ‘한국미술’이라는 인식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제1목표이다. 더 중요한 목표는 문자기록의 오류로 빚어진 미술사학의 치명적 오류들을 수 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루는 것이므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미술과도 연관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며, 인류가 이루어 온 문화해석에 혁신을 가져오는 금세기 역사적 연재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젊은 미술사학도들, 미술사학자, 불교 관련 학승과 불자들, 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중류계층 등을 의식하며 쓰는 연재다. 불교는 고차원의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고 있으니, 불교미술 역시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물’은 만물의 근원인데 조형적으로 만병에서 만물이 생성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놀랍지 않은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병이라는 도상은 인도에서 가장 일찍부터 즉 서기 전 2세기의 바르후트 수투파의 난간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그 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만병을 다양하게 표현하였지만 인도 학자들도 그것이 만병인지 모르고 있다. 인도미술 전공 일본학자도 수병(水甁:물병)이라 부른다.

 

락슈미의 도상, 보살의 연화화생 원형

만병에서 부처님이 나오신다는 것은 전에는 상상도 못하였으며 불경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으니 더욱 모를 수밖에 없다. 만병이 무엇인지 알려면 인도의 락슈미라는 여신의 만병화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병 ㅡ 영기문 ㅡ 여래나 보살 혹은 여신(女神)의 탄생>이라는 도상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실은 만병화생이란 말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병이란 그저 병이 아니라 ‘병 안에 정화된 물이 가득 차 있고 그 물에서 영기문이 나오는 조형까지 통틀어 만병’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병만으로도 만병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런 경우 병이 만병인지 알아보기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병이란 형태가 없어도 불교미술의 모든 것이 만병에서 나오는 것인데 단지 만병을 생략했을 뿐이라는 것을 가슴 속에 담아주기 바란다.

서기 2세기의 마투라 지역에서 발견된 기둥에 새겨진 높이 1미터가 넘는, 인도의 대표적 여신인 ‘미(美)와 행운(幸運)의 여신’은 큰 항아리에서 두 연꽃 위에 서 있어서 락슈미가 연화화생하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만병화생이다.(그림 ①) 만병 안에는 정화된 물이 가득 차 있고 그 물에서 활짝 핀 꽃, 덜 핀 꽃, 봉오리, 연잎 등 다양한 모양의 연꽃이 연이어 나오지만 연꽃이 이러한 방법으로 피는 법이 없다. 이 연이은 영화된 연꽃인 영기꽃(靈氣花)은 끊임없는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며, 그 가운데 중앙에서 대칭적으로 공작이 탄생하고 있다. 말하자면 공작의 영기화생(靈氣化生)이다. 그저 현실에서 보는 연꽃들 사이에 앉아 있는 공작이 아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공작이 영기꽃에서 영기화생 하듯, 영기꽃에서 락슈미가 영기화생하고 있다. 길게 올라간 영기꽃이 배경을 이루며 한 몸을 되어 화생하고 있는 것이다. 즉 생명력이 가득 찬 만병에서 영기꽃이 나오고 영기꽃에서 여신이 화생하는 도상이라는 것을 지금 쓰면서 아, 우리가 흔히 부르는 불상의 광배(光背)의 기원이 바로 이 작품에 있음을 알고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부처님의 광배에 연꽃무늬가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락슈미와 영기꽃 줄기는 한 몸을 이루고 있으므로 락슈미 여신 또한 만물생성의 근원자가 된다.(그림②, ③)

 

락슈미의 만병과 정수사 대웅전 만병

앞에서 본 락슈미상에서 배경을 지워버리니 우리나라 불화에서 보살이 영기화생하는 도상과 같다. 즉 만병에서 피어오르는 영기문이 생략된 셈이다. 우리나라 불화에서는 물이 생략되어 있을 뿐이지 여래와 보살 등은 모두 ‘물’에서 직접 화생하거나 물에서 피어오르는 영기문 갈래에서 나오는 연꽃에서 탄생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연꽃 밑의 물과 영기’문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락슈미의 뒷면에서 앞부분의 락슈미상을 지워버리면, 이 만병은 강화도 정수사의 꽃살문의 만병과 같지 않은가! 2000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 인도의 락슈미의 영기화생의 도상이 한국의 18세기 꽃살문의 도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니 전통의 전승이란 놀라울 뿐이다.

그러면 락슈미 여신은 누구인가?

가장 널리 알려진 탄생 설화에 따르면 락슈미는 일렁이는 유해(乳海:산호가루로 하얗게 된 바다)에서 연꽃 위에 앉아 손에 꽃을 들고 태어났으므로, 상을 표현할 때 오른 손은 꽃을 들고 왼손은 유방을 받든 미와 행운의 여신은 불교에 들어와 길상천(吉祥天)이 되고, 힌두교에 들어와 비슈누의 비(妃)가 된다. 락슈미는 여성미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보다시피 바다에서 탄생한 아프로디테(비너스)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락슈미는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연꽃의 여신이다. 비슈누의 아내이고 그의 창조 에너지의 상징이다. 바다에 누운 비슈누의 배꼽에서 연꽃이 피어나며 그 연꽃에서 창조신 브라흐마가 탄생한다. 락슈미는 그 우주 모태와 결부될 때 로카-마타(Loka-Mata),곧 ‘세계의 어머니’가 되며 잘라디-자(Jaladhi-ja), 곧 ‘바다에서 태어난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여성적으로 표현하는 보살 도상의 원형이 이러한 락슈미 여신에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락슈미가 바다에서 탄생한 것처럼, 비너스도 바다에서 태어나며, 내가 밝힌 것처럼 수월관음도 항상 바닷가에서 태어나는데 그렇게 표현하기 어려우므로 너르디너른 바다를 압축한 만병에서 탄생하고 있으니, 수월관음의 기원은 락슈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이 글에서 처음으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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