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발전과 불교의 기여 - 박세일(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세일 이사장은 …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세일 이사장은 1970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75년 동경대 대학원 경제학부서 수학했다. 80년에는 미 코넬대 경제학부서 석, 박사학위를 받았다. 85년 한국개발연구원 수석 연구원, 94년 서울대 법대 교수, 98년 청와대 사회복지수석 비서관, 2001년 한국개발연구원 석좌 교수, 2004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2005년 17대 국회의원, 여의도 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6년부터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자리이타’ 실천은 공존 공영의 길

방일에 빠져 시대책무 방기할까 우려

“불자들, 마음개조로 정치 개조하고

세대·지역·이념 갈등 해소 해야”

복간된 〈불교평론〉이 그동안 중단한 열린논단을 재개했다. 불교평론은 1월 17일 서울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정치발전과 불교의 기여’를 주제로 첫 모임을 가졌다.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와 공동으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초청해 열린 이번 논단은 제 18대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발전을 위한 불교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불자인 박세일 이사장은 서울대서 정치학을 가르쳤으며, 청와대와 국회서 정치개혁을 추진하기도 했고, 현재 한반도선진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치학 전문가이다.

박세일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원융과 불이를 주장하는 불교는 분명 대한민국 정치의 국민분열과 갈등을 줄여나가는데 기여를 할 수 있다.”며 “지역과 계층과 세대간 우리 정치는 양극화돼 있고 이를 줄여 나가는데 는 불교 사상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리=김주일 기자

 

2012 대선의 변화…정치인 내공 중요성 대두

이번 대선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변화가 보입니다.

첫째는 운동권 정치의 종식입니다. 더 이상 운동권정치로서는 정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진보좌파의 과제는 어떻게 참된 진보, 즉 리버럴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이러한 합리적 정책적 진보를 만들기 위해 가장 급한 과제는 어떻게 종북을 이론적으로 정서적으로 극복하는가 입니다. 이 문제를 확실히 정리하는 지적 용기가 있어야, 우리나라 진보좌파 운동이 합리적 진보로 다시 태어 날 수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기존보수의 실패입니다. 선거에서는 보수우파가 이겼지만 사실은 진 싸움입니다. 대한민국역사의 주류를 자처 하는 보수우파가 운동권적 발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종북과의 관계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진보좌파에게 겨우 3% 정도를 이겼다는 것은 바로 그 자체가 사실은 크게 진 싸움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철저한 보수혁신의 노력이 시대적 과제가 될 것입니다. ‘독점적 이익보수’가 아니라 ‘통합적 가치보수’로, 따뜻한 포용적 가치보수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번 정권도 성공하지 못하며 또한 정권 재창출도 어려울 것입니다.

셋째는 정치와 정치인의 내공(content)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정치든 ‘구호’와 ‘이미지’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국민들은 좋은 정치를 원하지만 바쁜 국민들은 항상 구호나 이미지를 보고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큽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정책준비나 인격수양 등 내공을 쌓기보다는 듣기 좋은 구호나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드는데만 치중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국민 정치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SNS가 정보 확산 속도를 빠르게 하면서, 내공 없는 거품 붕괴를 빠르게 하기도 합니다.

 

정치적 승자 되려면…정직, 포용, 자주성 갖춰야

이상의 세 가지 변화를 보면서 앞으로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우리나라 정치서 승자가 되려면 다음의 세 가지 덕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합리성과 정직성입니다. 주장과 정책 내용이 합리적이고 정직해야 합니다. 시대에 안 맞는 주장이나 국민을 속이는 주장은 국민이 빠르게 알지요. 성철스님이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하셨는데(不欺 自心), 솔직히 우리정치 현실은 자기를 속이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본래 국민을 속이기 위해서는 자기부터 잘 속여야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둘째는 포용과 통합입니다.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는 더 이상 성공적인 정치를 하지 못합니다. 국민통합이 필수적이고 진정한 국민통합은 국가관과 역사관 등 가치통합의 노력에서 시작돼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세계성과 자주성입니다. 이제는 국제적 안목과 경륜을 가진 글로벌 리더가 나와야 국가경영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국가의 자립과 자주, 자강의 정신을 확실히 지켜 나가는 정치세력과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는 합리적이고 포용적이며, 정직하고 통합적이며, 자주적인 정치세력이어야지 대한민국을 성공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원융과 불이(不二)…국민분열 없애는데 기여

원융과 불이를 주장하는 불교는 분명 대한민국 정치의 국민분열과 갈등을 줄여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간 우리 정치는 양극화돼 있고 이를 줄여 나가는데 는 불교 사상이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염두할 것은 북한의 독재주의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양자는 결코 원융이 될 수 없고 그래서 불이가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 불교계에서는 사고의 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원융성이나 불이사상은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를 존중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당성을 긍정하는 테두리에서만 가능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의 헌법과 조선공산당 규약 간에는 불이와 원융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역사의 테두리 안에서, 진보와 보수가 갖는 자유와 평등, 공동체와 약자보호, 세계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시각과 강조점의 차이 등은 원융의 눈으로 보는 것이 옳고 그것이 정견(正見)입니다. 좌의 가치와 우의 가치를 원융적으로 보아야 소위 양변의 고집을 버리고 중도를 취하는 진정한 대중도(大中道)가 나옵니다. 그러나 대 중도는 단순한 중간이 아닙니다. 처해진 장소와 시간에 맞게 옳은 것 즉 천하의 공의(公義)를 취하는 것이 진정한 대 중도입니다.

본래 자기 시각만 고집하거나 절대시하는 것은 불교의 정신이 아닙니다. 진보와 보수가 각자 자기를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자가 자기주장을 확실하고 정직하게 하면서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해 오히려 서로의 견해차이를 잘 활용하여 더 큰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그러한 큰 시각을 가져야 그것이 대원융이고 대중도이며, 그러할 때 비로소 포용과 통합의 원리가 나오게 됩니다.

 

상호의존성 수용하면 갈등 줄일 수 있어

불교의 가르침은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 이념 간 분열과 대립과 갈등을 줄여 나가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갈등,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노동자와 사용자간, 환경과 발전간,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불교의 연기적 철학과 가르침이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내 존재가 남의 존재와 연기적으로 상생의 관계에 있다고 보면 자기를 독존적 존재로 고집할 수 없고, 결국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통해 함께 발전하는 길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좀 더 겸손하게 상호의존성을 수용하게 되고, 나의 이익과 발전뿐 아니라 상대의 이익과 발전을 함께 고려하면서 공존공영의 길을 찾아 나가게 되고, 그 과정서 모든 분열과 대립과 갈등은 줄어들게 됩니다.

 

종교인도 정치에 대해 발언과 행동해야

종교인도 정치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인들도 최소한 종교지도자의 교육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관여해야 하지요.

문제는 행위자가 사심(邪心/ 私心)이 있는가 없는가입니다. 종교인이 정치적 발언을 해도 사심으로 하면 종교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종교지도자교육에 정치가 관여해도 개인이나 특정단체의 이익을 위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종교정책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심여부를 어떻게 구별할까요? 국민, 언론, 종단이 깨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아직 우리의 종교와 정치가 거기까지 성숙돼지 않다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우리는 정교분리 원칙을 지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북문제서 ‘마음의 통일’이 가장 중요

한반도에 통일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점차 북한은 중국화(中國化)되고 동북아에서는 신 냉전(new cold war)이 시작되고, 한반도는 영구분단의 계곡으로 추락할 것입니다.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의 통일’입니다. 이미 주장한대로 남과 북의 정치체제나 경제체제에 중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의 사회 문화 예술 역사 전통 등 비정치 분야에서는 융합과 통합의 여지가 클 뿐 아니라 반드시 그러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남과 북의 통일과정에서 우리 불교가 자기를 절대시 하지 않는 불이와 융합의 사고, 그리고 상대의 이익과 발전을 소중히 하는 연기적 사고 등이 민족통합에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역사를 보면 남과 북의 분단, 6.25 전쟁 등으로 고통과 아픔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통일과정에서 이들의 아픔과 한(恨)을 대대적으로 해원(解寃)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불교가 이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적어도 선과 악, 천사와 악마라는 이원론에 기초한 서양종교보다,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를 주장하는 불교가 해원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불교가 지금부터 이 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종교와 정치는 결코 둘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부처님이 오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생각하며 오늘 발표를 마칠까 합니다. “불자들이여 ‘마음개조(종교)’하면서 그 원력으로 ‘세계개조(정치)’를 하라. 그리고 같은 이야기이나 ‘세계개조’하면서 그 원력으로 ‘마음개조’하라”고 아마 가르치실 것 같습니다. 종교와 정치는 결코 둘이 아니라고 가르치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지향하는 본마음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원리적으로 세법(世法)과 불법(佛法)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불교와 정치의 올바른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불교를 내세워 정치를 멀리하거나 정치를 내세워 불교를 멀리하는 것은 진리는 아닙니다. 올바른 불교는 육조 혜능스님이 주장하듯이 ‘불이지교(不二之敎)’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정 이 시대의 문제는 우리 불자들이 마음개조도 세계개조도 모두 소홀히 하는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마디로 방일(放逸)의 병에 빠져 공동체에 대한 책무와 시대 역사에 대한 책무의 방기(放棄)가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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