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전통 세시풍속서 찾는 생태적 지혜

24절기, 자연과 생명변화 살핀 지혜
정월 중요시해 다양한 세시풍속 만들어
인간끼리 조화 추구하는 것이 ‘생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3호인 통진두레놀이를 계승 보존하는 단체인 김포통진두레놀이보존회의 시연.
우리의 세시풍속과 24절기
예전엔 새해에 새배하러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녔고, 대보름만 되면 쥐불놀이도 하고 깡통을 돌리는 불놀이하느라 날새는 줄 몰랐다. 또한 호두, 땅콩, 밤 등 부럼을 깨뜨려 먹으며 무사태평과 건강을 기원했고, 오곡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계절이 바뀌면서 자연의 변화를 기념하는 의식이 남아있을까 싶다. 불행하게도 거의 사라졌다. 국정공휴일과 기념일 외에는 오히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같이 상업화된 무국적문화만 횡행할 뿐이다. 불교에서 그나마 정월초하루 법회와 동지 법회등 전통 절기를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인사말은 서구의 그것과 다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어른들이 “잘 지내셨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오면 우리는 의례 “덕분에 잘 지냅니다”라고 답인사를 한다. 내가 특별한 도움을 받지 않은 바에야 자주 만나지도 않은 그의 ‘덕’을 언제 볼까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삶을 깊이 돌아보면 직접 만나지 않은 무수한 많은 사람들이 만든 쌀, 채소, 건물, 자동차, 도로, 사회체계 등 덕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사람만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 아니 돌과 바람, 구름 덕분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삶이 생명과 사람 ‘덕분’임을 깨닫고 항상 절기가 변할때마다 자연과 이웃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의 전통에는 달이차고, 해가 길고 짧아지며, 날이 추워지고 따뜻해 질때마다 계절 변화와 자연 주기에 깊은 의미를 두고 이를 기리는 다양한 의식이 있어 왔다. 그중 하나가 24절기다. 입춘이 되면 집집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써놓고 길하고 경사가 많기를 기원했다.

입춘은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고 물고기가 얼음밑을 돌아다니는 절기’라 했고, 경칩은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오는 날’, 낮이 길어지는 춘분은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날’, 입하는 ‘청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는 절기’로, 백로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제비가 돌아가며 뭇새가 먹이를 저장하는 절기’라 했다. 입동, 대설, 소설, 소한 대한까지 24절기는 이렇듯 일일이 자연과 생명 변화를 살펴 자연과 어울리게 살려는 지혜가 만들어낸 문화였던 것이다.

이중 정월에 1년중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있고 보름 때까지 각종 행사가 이어졌다. 특히 성주대접(城主待接)이라 하여 차례를 지내고 난 뒤에 약간의 음식을 마당 한편이나 집밖에 내놓아 짐승들을 먹게 했다. 그리고 동해지역에는 ‘어부슴’풍속이 있다. 이는 자신에게 올수 있는 나쁜 액을 물고기들에게 작은 시주를 해서 푸는 것이다. 사람에게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짐승과 생명에게 나누고 베풀어야 자신이 안락한 삶을 살수 있다는 연기적이며 윤회적 인 자연관이 반영된 풍습인 것이다.

정월에 가장 많은 전통의 세시풍속
우리는 2013년 새해를 맞았다. 해는 매번 떠오르는 어제의 것과 다를바 없지만. 새해를 기뻐하고 남다르게 맞는 이유는 바로 삶과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고 싶은 뜻에서 일 것이다. 물론 자연의 이치로 보면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똑같지 않다. 뜨는 시간이 달라지고, 하늘에 떠있는 각도가 달라진다. 그것이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만들고 계절을 만든다. 이뿐아니라 계절과 기온, 우주의 기운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정월을 남다르게 생각했고, 농사 짓지 않는 이 기간동안 풍년을 준비하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며 마을사람과 정겨운 덕담을 나누는 마을 축제인 동제를 지내기도 했다.

우리 전통속에는 정월이 되면 다양한 세시풍속이 있었다. 설날이 있고, 정초. 입춘, 12지일, 대보름등이 있었다. 이때가 되면 설빔을 했고,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다니고, 성묘도 하고, 복조리를 팔기도 했으며, 세화를 그리고, 토정비결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과수나무 돌 끼우기, 널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입춘첩붙이기, 오곡밥 먹기, 안택고사, 부럼 깨물기, 귀밝이술 마시기, 더위팔기, 대보름 달맞이, 줄다리기, 석전, 답교, 기세배, 별가릿대세우기 등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풍속이 있었다.

특히 정초 십이지일(正初十二支日)이라고 하여 정초부터 12일동안 십이지 동물의 날로 정해 의미를 새기며 기념하였다. 예를 들어 자일(子日)은 쥐의 날로 쥐불놀이 행사를 하여 쥐의 피해를 없애려 했고, 축일(丑日)은 소의 날로 정해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쉬게 하며 영양가 있는 것을 삶아 먹이는 등 12지로 대표되는 동물을 살피는 것을 첫해 무엇보다 먼저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동제라는 마을제사를 지냈다. 동신제, 서낭제, 당제, 대동굿, 풍어제 등 지역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마을에서 모시는 봉신에 따라 산신을 모시거나 마을을 지키는 거목. 신목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내며 조상의 원혼을 달래며 풍년을 기원했다.

겨우내 산새들의 양식으로 남긴 까치밥. 인간과 자연의 협동, 조화로움을 추구했던 이 같은 생활 풍습들은 생태 사회를 위해 복원돼야 할 과제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금기, 속담과 속신
‘아니땐 굴뚝에 연기 나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예로부터 내려오는 생활의 지혜가 담진 잠언을 ‘속담(俗談)’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밥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 ‘세숫물을 많이 쓰면 저승 가서 그 물을 다 마셔야 한다’, ‘우물가에 밥알을 떠내려 보내면 3대가 빌어 먹는다’는 등의 옛말은 속담과 달리, 금기를 통해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는 효과를 갖는데 이를 ‘속신(俗信)’이라고 한다.

‘금기(禁忌)’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을 말한다. 자연에 대한 금기는 자연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생각으로 함부로 하지 않게하는 교육효과와 자연에 대해 조심하게 하는 생활 습관을 강제한다.

예를 들면 ‘흐르는 물에 오줌을 누면 아이를 못낳는다’, ‘비벼 먹은 그릇에 물을 부어 마시면 체증에 걸리지 않는다’, ‘물을 많이 쓰면 가난뱅이가 된다’, ‘쌀을 밟으면 발목이 비틀어진다’, ‘등에 새끼없는 메뚜기를 잡으면 어머니가 빨리 죽는다’, ‘경칩날 개구리를 죽인 사람은 죽어서 눈알없는 개구리가 된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밤에 거미가 내리면 근심이 있다.’, ‘나무를 많이 때면 산신령의 노여움을 산다’, ‘큰 나무를 베면 일찍죽는다’, ‘나무를 헤치면 산에서 길을 잃는다’ 등등 아마도 나이드신 분들이 어린 시절에 이런 말을 안듣고 자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들을 때는 섬뜩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문에 행동을 제어하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근대화되면서 미신이라고 치부했지만, 오히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두 인연으로 얽힌 생명을 살피고 자연을 함부로 하지 않는 자비심이 담긴 지혜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오늘날은 ‘금기’가 없는 사회다. 금기가 없는 사회는 두려움이 없는 사회이다. 모든 것을 함부로 하고 막대하는 것이 익숙해져 자연과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더 많은 살림의 지혜들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강조하는 것이 환경보전이라면 이것에 더하여 인간끼리의 협동과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생태주의’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전통 속에는 마을사람들끼리의 공동노동인 ‘두레’는 대단히 중요한 생태적 전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해 어려운 사람이나 과부나 노인의 집안일을 마을공동체가 돕고 협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품앗이와 계도 농사를 잘 짓고, 마을의 공동체적 복지를 이루기 위한 훌륭한 전통이었다. 장례를 위해 갑계,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금란계, 전쟁의 복구를 위해 만든 동계, 또 소나무를 심기 위한 송계, 어장관리를 위해 어촌계등은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자연과 생활을 위한 공동체적 지혜였던 것이다.

또한 늦가을 감을 딸 때, 몇 개는 따지 않고 남겨두었다. 이를 까치밥이라고 한다. 까치만이 아니라 겨울양식이 부족한 직박구리, 멧비둘기, 박새등을 위해 먹을거리를 남겨두는 생명에 대한 배려였다. 이뿐아니었다. 농부들이 콩을 심을때도 땅에 구명을 파고 콩 세알을 심었다.

하나는 땅속의 벌레들을 위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하늘을 나는 새들의 먹이고, 나머지 한알로 싹을 틔워 사람이 먹겠다는 생각에서이다. 모기를 에프킬라를 뿌려 박멸하겠다는 현대와는 달리, 모깃불로 그저 ‘쫓으려’했을 정도로 우리의 전통을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과거 땅을 기반으로 한 사회와 기계를 기반으로 한 시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땅을 기본으로 하면서 만들어진 문화가 근본적으로 생태적 지속가능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르호지 여사가 쓴 베스트셀러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라는 표현은 바로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야 할 미래는 과거의 전통의 지혜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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