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생태적 대안사회의 모색, 공동체운동 (2, 끝)

초기불교부터 조선시대까지
민중과 함께 공동체 삶 살아
90년대 시작한 불교공동체
현대적 대안운동 자리매김

▲ 정토회의 빈그릇 운동 선포식. 실상사의 마을공동체와 정토회는 대표적 현대 불교공동체로 대안적 삶을 구현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처님의 초기 승가공동체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뒤 함께 수행한 다섯비구와 승가공동체인 상가(Sangha)를 만드셨다. 이후에 야사와 그 친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얻어 60명이 되었다. 이후 불교공동체는 계속 커져서 2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초기경전에는 ‘비구여’라는 표현을 쓰셨지만, 이후 대승경전에는 ‘선남자 선여인들이여’라는 용어를 쓰실 걸로 보아 대승불교 공동체는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비아를 포함한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당시 기성의 가치관을 뒤엎는 것이었다. 수행자들은 집을 나와 함께 집단을 구성해서 생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계급을 뛰어넘는 가르침이 계급사회속에서 함께 할수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깨달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고도화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와의 구분된 삶으로서 승가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생계로 돌아가 그들을 구제해야한다.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외부와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서, 선방에서는 안거(安居)라는 형태와 만행(萬行)이라는 방식으로 ‘닫힘과 열림’의 주기를 만들어놓고 있다. 승가공동체는 오랜 역사속에 많이 갈라져 나라마다 다른 문화와 전통으로 이어져왔지만, 계율을 통해 엄격한 내적 질서를 갖고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가장 역사적인 공동체이다.

한국 승가공동체와 마을공동체 - 향도
한국에 불교가 공인되면서 사찰들이 건립되었고 자연스럽게 많은 승가공동체들이 출연했다. 더우기 도선국사의 비보사찰(裨補寺刹)사상으로 인해 산세나 지세, 수세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비보사찰이 많이 건립되었다. 당시 사찰은 고유의 사회정신과 문화를 포용했던 사람들의 공동체공간이었고, 마을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각종 지방민들과 더불어 불교행사를 하면서 승가공동체뿐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다.

신라시대 이후 신앙공동체인 향도(香徒)는 불교신앙을 목적으로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결사조직이다. 이곳은 길흉경조, 재난구조 등의 역할도 하면서 이후 점차 마을공동체로 변화된 대표적인 불교공동체이다. 신라후기와 고려전기의 향도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였고, 불상, 종, 석탑, 사찰등을 조성하거나 법회, 보시, 매향 등, 대규모적인 노동력과 경제력을 제공하는 것을 중심으로 불교신앙활동이 주된 활동이었다고 한다.

이 향도조직은 점차 지역촌과 군현단위로 확산되어 지역민들의 협동조직체로의 기능하게 되었다. 조선초기에는 이것은 불교신앙 활동보다는 마을공동체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그래서 소농민들의 상호부조를 위해 향촌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다른 의미의 향도(鄕徒)로 정착되어갔다.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불교공동체 - 승도
신라 및 고려시대에 국사나 왕사를 비롯한 고승들은 왕실과 백성의 존경을 받았다. 또한 사찰의 고승들도 지역 공동체의 정신적 수장역할을 해왔다. 그러면서 당시 사찰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찰의 일을 담당하는 승도(僧徒)들도 증가했다.

조선 중기 동국여지승람에는 당시에 1,600여개의 사찰에다 국가 공인 승려가 5,500여명이라고 했다. 한편 세조 13년 호패발급시에는 승려수가 30만이라고 나와 있는데, 성종11년 정극인의 상소에는 10만 5~6명에 이른다고 돼있다. 아무튼 1만여 사찰과 10만여 승려는 오늘날 사찰수의 4배에 승려수는 10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인구 600만의 조선시대에 이들이 모두 출가 수행승일까? 그렇지 않다. 이들 10만 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행승이 아니고, 국가에 공인되지 않은 승려, 재가화상, 수원승도 등, 비승 비속인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지역의 민정기능을 수행하기도 했고, 국가가 위급할때 예비군기능을 하기도 했다. 이들을 승도라고 했다. 승도는 결국 사찰을 중심으로 한 사부대중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모두 강제 환속의 대상이 되었다.

불교와 사회개혁을 위한 공동체 - 결사
결사란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개인들의 결합된 단체를 말한다. 역사 속에 불교가 권력과 유착하여 중생을 외면한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할때 마다 항상 그 가르침 본연으로 돌아가 깨달음과 중생구제를 서원하는 결사체들이 생겼다.

최초의 결사는 중국 동진의 혜원 스님의 백련결사이다. 이후 1만일을 기약하여 염불하며 극락왕생을 비는 염불만일결사가 있었고, 지리산 오대사에서 수정사(水精社)라는 결사도 있었으며, 잘 알려지기로는 고려시대 궁중불교, 관권불교, 기복불교, 형식불교화된 불교를 혁파하기 위해 몇몇 뜻있는 승려들이 모여 혁신운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이다.

뿐만 아니라 천태종 백련결사가 있었고, 무신집권기에 유생들이 사찰을 근거지로 한 향도결사체를 만들기도 했다.

▲ 실상사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의 현장체험 모습.
오늘날 한국 불교공동체 어디까지 왔나
근대 한국불교는 이승만의 정화유시 이후로 비구 대처 싸움과 치열한 종권싸움으로 얼룩져 왔다. 불교는 서구인들에게 미래의 희망이 되는 사상이지만, 조직으로서 한국불교는 그러한 미래를 담보하기에는 너무도 암담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많은 새로운 개혁의 노력이 있어왔다. 대체로 종단개혁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일련의 불교운동이 그 중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세력이 다시 혁파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기도 했다. 그래서 90년들어 새로운 시도들이 전개되었다. 이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소수이며 가장자리, 변방의 일점(一點)으로 시작된다. 불교의 공동체운동은 자체로 불교개혁운동이면서 동시에 사회개혁이자 미래문명적 대안의 통합적시도였다. 따라서 승가중심만의 결사가 아니라 사부대중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이다.

우선 첫 번째 사례는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를 들을 수 있다.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는 1999년 9월11일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출범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이 공동체를 기초한 도법스님은 이전에 90년초 실상사를 근본도량으로 한 ‘선우도량’이라는 불교결사모임을 만들어 다양한 모색을 해왔다.

그러던 것이 지리산 댐건설 반대 운동을 지역주민들과 전국의 사회단체들과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 한국전쟁 당시 좌우대립으로 희생된 영령을 위로하는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천도재를 치르면서 위축되고 방황을 거듭하는 한국불교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연기적 세계관에 근거한 사부대중공동체와 지역마을공동체와 도농교류를 위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창립하게 되었다.

실상사의 사부대중공동체에서 출가부문은 현재 실상사 사중 소임 스님, 화엄학림, 화림원, 약수암, 서진암, 백장암 스님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재가부분에서의 현재 실상사의 재가대중과, 실상사 귀농학교, 사단법인 한생명사무국, 산내여성농업인센터,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 지리산영농조합법인등이며, 이들 재가부분은 신행생활과 다양한 활동·관리·운영을 전문적으로 담당한다.

이들간에 종교적으로 출가와 재가의 위계질서는 있지만 관리 운영면에서는 평등한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산내면의 지역공동체와 결합하여 커다란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이곳에서는 실상사의 사찰불사도 마을주민들과 숙의하며 만들어나가고 하고 있고, 백제의 폐사지에 귀정사라는 절을 짓고. 생명평화의 장 ‘쉼’이라는 2박3일 명상수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실상사의 지역공동체는 승도를 모델로한 대안적인 승가공동체이기도 하지만 불교를 넘어서서 전국적으로 생태적 마을공동체로 대표적인 곳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실상사, 정토회 대표적 불교 공동체
두 번째는 수행공동체 ‘정토회’이다. 정토회는 불교혁신과 사회운동을 해왔던 법륜 스님과 젊은 활동가들이 모여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기치로 88년 3월에 만들어진 서원공동체이다.

정토법당과 한국불교사회교육원(이후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을 거쳐 에코붓다로 개칭됨)과 한국불교사회연구소의 활동을 시작으로 당시 불교개혁과 민주화를 위한 지원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러다 1990년 전후로 3년여에 걸친 내부 모색기간을 거쳐 ‘일과 수행의 통일’,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수행을 함께하는 수행공동체’로 거듭나면서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1만일결사를 시작하게 된다.

정토회는 무아, 무소유, 무아집을 통해 ‘맑은 마음’ (인간 자신 수행), ‘좋은 벗’ (인간과 인간사이의 평화), ‘깨끗한 땅’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1만일 결사는 매 1천일 (약 3년)마다 모든 활동을 원점에서 전면 재 검토하고, 중요성원들은 직위가 해소되고 보직을 순환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1천일을 다시 1백일씩 나누어 전국의 모든 결사자들이 모인다. 그래서 매일해 온 ‘수행, 보시, 봉사’의 수행과 동시에 주어진 사회실천 과제의 결과를 점검하고, 다시 이후 1백일간의 수행과 실천지침을 갖고 돌아간다.

정토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구성원은 현재 서울에 45여명, 문경에 60여명등 약 10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함께 기도와 발우공양. 법회와 사회활동을 해나가면서 초기의 승가공동체의 삶을 살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토회는 서울과 부산을 비롯하여 전국에 13곳의 법당과 해외에 17곳에 법회가 있다. 그러나 그 중심은 약 200여개곳의 가정이나 직장에서 10~20여명이 모여 진행되는 수행공동체 법회모임이다.

이들 정토행자들은 수행을 해야하면서도 동시에 사회활동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토회의 기구는 매주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이 진행되는 문경정토수련원이 있고, 사회단체로서는 환경기구인 ‘에코붓다(Eco-Buddha)’, 평화와 난민지원 기구인 ‘좋은 벗들(Good Friends)’, 국제개발지원기구인 ‘제이티에스 (Join Together Society)’가 있으며, 별도의 기구로 ‘평화재단’을 설립하여 지원하고 있다.

이 두 불교공동체는 모두 새로운 불교의 모색이자 나아가 사회적 실험이고, 내부에 생태적 특성을 중요한 지침으로 하고 있는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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