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번뇌-⑥ 수번뇌(隨煩惱)

번뇌에는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번뇌와 그 근본번뇌를 따라 일어나는 수번뇌(隨煩惱)가 있다. 수번뇌의 번뇌를 혹(惑)자로 대체해 수혹(隨惑)이라고도 하고 근본번뇌에 종속된 부수적인 번뇌라는 의미로 지말혹(枝末惑) 또는 지말번뇌(枝末煩惱)라고도 한다.

한편으로는 근본번뇌를 세분화한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모든 번뇌를 일컫기도 한다. 이러한 수번뇌는 초기불교에 이어 불교를 교학적으로 연구한 시대인 아비달마 시대에 이르러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다섯 가지와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두 가지 그리고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열 가지와 부정지법(不定地法) 두 가지의 열아홉 가지로 나뉘었다가 아비달마의 교학불교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학파의 하나인 유식불교에 이르러 다시 스무 가지로 재분류된다.

유식학파는 이 스무 가지의 수번뇌를 번뇌의 정도에 따라 크게 대수번뇌(大隨煩惱)와 중수번뇌(中隨煩惱) 그리고 소수번뇌(小隨煩惱)로 구분했다. 이중에 대수번뇌는 청정하지 않고 더러워진 마음 중에 선하지 않은 마음[不善]과 업에 의해 나쁘게 물들어 있는 마음[有覆] 이 항상 있는 번뇌를 말한다. 중수번뇌는 올바르지도 청정하지도 않으며 진리를 따르지 않는 마음[不善]이 항상 있는 것을 말하고 소수번뇌는 항상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대수번뇌에는 방일(放逸)ㆍ해태(懈怠)ㆍ불신(不信)ㆍ혼침(昏沈)ㆍ도거(掉擧)ㆍ실념(失念)ㆍ산란(散亂)ㆍ부정지(不正知)의 여덟 가지가 있다. 이 중에 방일은 제멋대로의 마음으로 계율이나 바른 질서를 지키지 않고 방종한 것을 말한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선근(善根)을 닦지 않아 더러움을 막지 못하고 청정함을 지키지 못한다.

해태(懈怠)는 정진(精進)의 반대말로 일종의 게으름을 말한다. 악(惡)은 막고 선(善)은 행하는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열심히 행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게으름은 무상을 자각함으로써 치유할 수 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는 것이야 말로 미래를 선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불신(不信)은 진리에 대해 믿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여 불ㆍ법ㆍ승 삼보(三寶)를 하찮게 여기고 부처님의 깨달음과 자신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진리를 듣고 사유하고 수행함에 따라 점점 더 확고해 질 수 있다.

혼침(昏沈)은 마음이 가라앉아 우울한 상태를 말한다. 어둡고 침울한 이 상태는 대상을 명확하게 변별하지 못한다. 예컨대 어두운 방에 들어갔을 때 방안에 무엇이 있는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대상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에 장애가 된다.

도거(悼擧)는 혼침과 반대로 마음이 들떠서 침착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고요하고 평온하지 못한 이 상태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선정에 장애가 된다. 우울증과 같은 혼침과 더불어 조증과 같은 도거는 모두 대상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실념(失念)은 바른 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른 법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 다기 보다는 주의집중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팔정도의 정념(正念)과 반대되는 의미를 갖는다.

산란(散亂)은 대상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여 어지럽기 때문에 깊은 정신통일의 수행을 의미하는 팔정도의 정정(正定)을 닦는데 방해가 된다.

부정지(不正知)는 중도에 기반 해 사성제를 바로 아는 바른 견해와 반대되는 의미로 대상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身口意三業]가 바르지 못함으로써 그로 인해 파생된 잘못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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