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신사 리차드 기어 거사

 10년 전 티베트에서 첫 만남

집 기부할 정도의 신심 돋보여

재가불자 역할 잊지 말아야

 

▲ 리차드 기어의 티베트 성지순례 장면

처음 리차드 기어의 사진을 본 곳은 중부 유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크렘즈라는 교육도시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프리티 우먼’이라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치고 있을 당시라 리차드 기어 거사와 줄리아 로버츠가 함께 찍은 포스터가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그리고 출가해서 승가대학에 재학 중일 때 달라이 라마의 대법회에 참석해서 티벳불교를 한 번 보려고 인도의 보드가야에 갔을 때이다. 그 곳 식당에 저녁공양을 하러 갔는데, 내가 앉은 자리에 리차드 기어 거사가 다가와 앉았다.

기어 거사에게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는가를 묻고, 티베트 승려들과 같은 짙은 갈색의 양복을 입었길래 양복이 멋있다고 칭찬을 하자 기어 거사는 똑같은 모양과 색깔의 양복을 일곱 벌 가지고 와서 매일 갈아입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본납은 황급히 밖으로 나갔고 그것이 기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론 쭉 잊고 지내다가 작년에 리차드 기어가 처음 한국으로 와서 ‘순례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자신과 친구들이 찍은 사진전시회를 갖는다는 것을 알았다.

불과 4박5일의 일정으로 조계사도 가고, 불국사도 가고, 또 본납이 거주하던 동화사도 온다고 해서 떠들썩한 분위기가 신문과 방송에 연일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동화사 일정은 취소하고 기어와 그 부인과 아들이 출국했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했다.

10여년 전에 볼 때 보다 흰머리가 머리를 뒤덮은 리차드 거사의 모습은 좀 더 편안해 보이고 넉넉해 보였다. 어쨌든 작년에는 종정예하께서 미국에 처음으로 가서 법회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는 동화사 주지 제 9교구 본사 교구장 성문 스님을 모시고 포교국장 소임을 살고 있었을 때였다. 스님을 모시고 미국 뉴욕에 먼저 들어가서 종정 스님 법회 예정 장소인 리버사이드 교회를 방문하고, 사전준비 작업을 하기 위해 미국 갈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에 갔다.

공항 게이트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서있는데 리차드 거사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반갑게 인사했더니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행기에 타서 조종석 바로 뒤 1등석에 앉아있던 리차드 거사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10년 전에 보드가야 식당에서 만났던 것을 기억하느냐 했더니 웃으면서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나중에 뉴욕에서 자기에게 연락하려면, ‘킬 빌’의 여주인공인 우마 서먼의 아버지인 콜롬비아대학 티베느불교학과 교수인 서먼 교수에게 연락하면 된다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미국에 들어가 서먼 교수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를 통해서 주로 리차드 거사가 연락을 받는다 했다. 어쨌든 티베트 불교 신자들인 이 양반들은 서로 티베트 불교의 발전과 보호를 위해 신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10여년전에 리차드 거사가 왜 티베트 스님들과 똑같은 색깔의 양복을 7벌이나 준비해서 매일 갈아입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유명한 배우인 리차드 거사는 자신이 스님들보다 더 돋보여서 눈에 띄거나 스님들께 불편을 드리지 않기 위해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사부대중의 화합을 이룰 수 있는 맑은 믿음을 지닌 선비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차드 거사는 최근 자신의 집을 팔아 티베트 불교 교단에 바치고 요즘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다시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불교에도 많은 리차드 거사와 같은 많은 청신사들이 있어서 대한불교조계종을 지켜 나가고 있다. 비구와 비구니만으로는 사부대중을 이룰 수 없다. 부디 많은 청신사 청신녀들이 맑은 믿음으로 우리 불교를 지켜주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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