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찰인 경시도 ㅇ사찰에 도입된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펜스

고색창연하다는 말은 오래되어 예스러운 풍치나 그윽한 분위기를 말할 때 쓰인다. 오래된 사찰의 경관을 설명하는데 그럴 수 없이 잘 어울리는 말이다. 법당의 퇴색한 기둥, 마당에서 모진 세월을 꿋꿋이 견뎌온 오래된 석탑, 칠이 보기 좋게 벗겨져 고풍스러움을 드러낸 법당의 벽체...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우리 사찰의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귀한 요소들이다.

불교가 이 땅에 뿌리 내린지 1600여년이 흘렀건만 우리 사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요소들은 특별한 변화 없이 잘 전승되고 있다. 불교적 상징성과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더할 나위 없이 잘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로 오면서 우리 사찰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재료의 변화는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골기와를 얹은 전통건축물이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담장의 재료에 스테인리스 스틸과 같은 철 재료가 쓰이기 시작하고, 고운 흙으로 마감되었던 마당이 화강석이나 벽돌로 포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사찰의 경관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성을 잃게 되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기색은 없고 사찰의 여건에 따라 혹은 사찰에 주석하는 스님들의 안목이나 취향에 따라 불사의 틀이 쉽게 결정되고 실행된다.

공법이나 재료가 달라지는 것은 시대가 바뀌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전통사찰에서 면면히 계승되어온 경관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러한 기본적인 전제가 손상된다면 한국성이 지켜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의 현상을 변경할 때 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득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대도시 한가운데 지어지는 사찰마저도 옛 재료를 써야하고 옛 공법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불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건폐율과 용적율을 높여야하고 경제적으로 불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오래된 공법과 재료만을 고집하다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적 공법에 현대적 재료를 쓰더라도 드러나는 경관성은 한국성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려면 한국성을 보여주는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조화롭게 결합시켜 전체적으로는 한국적 이미지가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것이므로 이러한 방법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러한 디자인을 상생의 디자인이라고 부르고자한다. 상생의 디자인을 우리 사찰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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