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연기설-① 연기의 의미

 불교의 핵심사상 중 하나인 연기설(緣起說)의 산스크리트어는 쁘라띠뜨야-쌈우뜨빠다(pratītya-samutpāda)이다. 이 말을 풀어보면 ‘연해서 혹은 의존해서[쁘라띠뜨야]’, ‘일어나다, 발생하다[쌈우뜨빠다]’는 의미이다.

즉 ‘상호의존해서 일어난다’는 뜻이며 ‘조건에 따라 생겨난다’고도 바꿔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모든 현상이 조건에 따라 상호의존해서 일어나는 원리를 차연성(此緣性) 혹은 상의성(相依性)이라고 한다. 이러한 연기설은 사법인(四法印)의 가르침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 사법인의 가르침 속에서 모든 현상은 고정된 것이 없고 생멸변화하는 것이지만 그 변화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에 기반 해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작용의 법칙을 ‘연기’라고 한다. 이 법칙은 부처님이 연기를 설하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작용하고 있는 세상의 작동 원리이다. 즉 부처님은 연기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진실을 발견한 것이다.

초기 <아함경(阿含經)>과 빨리어 경전에서는 연기설을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라고 설명한다. 연기를 정의하는 위의 문구야 말로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의 내용이다. 즉 모든 현상은 조건에 따라 변화하며 어떤 것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연기설은 모든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나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세계관을 거부한다.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각각의 원인과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연기설은 또한 불교의 근본설이며 법[불법]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초기경전에는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라든가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나(부처님)를 본다’라고 돼 있다. 즉 연기설을 이해하면 불교를 이해한 것이 된다.

원시불교뿐만 아니라 대승불교 혹은 중국이나 한국불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교의 중심사상은 연기설이다. 연기설이야말로 다른 종교나 철학과 구별되는 불교의 독자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교의 독자적인 특징이 불교의 각 학파에서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는 연기론을 인간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든 인생의 변화는 자신의 업(業)에서 비롯되었다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를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이라고 한다. 유가행파(瑜伽行派)에서는 부파불교의 업감연기설에 아뢰야식연기설(阿賴耶識緣起說)을 더해 설명한다.

우리가 짓는 신구의 삼업은 모두 아뢰야식에 저장되고 동시에 아뢰야식은 다시 우리가 짓는 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의 법성종(法性宗)에서는 진여연기설(眞如緣起說)을 내세운다. 진여는 범어로 타타타(tathata)라고 하는데 현상을 초월한 보편적인 유심체(唯心體)이며 연기의 주체이다. 즉 주관과 객관의 모든 것은 아뢰야식의 변화로 나타나지만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근원에 진여의 작용이 있다.

다음으로 화엄종(華嚴宗)의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이 있다. 이 연기설은 중생과 부처님, 번뇌와 깨달음, 생사와 열반 등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며 이 세상은 상호 의존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궁극적으로는 통일돼 있다는 견해이다. 법계연기설은 현상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의 통합과 융화를 특징으로 한다.
그렇지만 연기설은 어떤 학파의 학설이든 연기의 해석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 세상이 상호의존에 의해 생멸변화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정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관점에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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