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의 아쇼까대왕 유적기행 <13>

독이 든 버섯 요리 공양하고도
시주자 걱정한 붓다의 자애로움
쿠시나가라에 조성된 열반상서
맨발로 설한 거룩한 역사 느껴

열반상이 모셔진 열반당〈왼쪽〉과 아쇼까왕 스투파〈오른쪽〉. 아쇼까왕의 스투파나 석주가 없었더라면 부처님 성지도 인도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생 부처님이 왕으로 살던 쿠시나가라
부처님은 왜 말라족이 사는 쿠시나가라를 열반지(涅槃地)로 정했을까? 부처님 인과법이란 한마디로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따른다는 진리이다.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를 열반지로 선택하셨던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연적인 근거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인과법이 아니다. 부처님이 바이샬리에서 머무시다가 우연히 쿠시나가라로 가시게 되어 그곳에서 열반에 드셨다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불법이란 맹신이 아니라 이성적인 확신이기에 그렇다.

이 한 가지 예를 보더라도 불교란 물음표에서 시작하여 온갖 우여곡절 끝에 느낌표로 회향되는 종교가 아닐까도 싶다.

쿠시나가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의 상념은 계속된다. 결국 나는 부처님과 아난존자의 대화 속에서 부처님이 왜 쿠시나가라를 열반지로 정했는지 힌트를 얻는다. 〈대반열반경〉에서 쿠시나가라가 부처님 전생의 고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난이 물었다.

“세존이시여, 왜 이렇게 작고 외진 마을의 변두리에서 열반에 드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부디 그만두시옵소서. 이런 작은 꾸시나라(현 쿠시나가라) 마을이 아니라도 찬빠나, 라자그리하, 사왓티, 사께따, 꼬삼비, 바라나시 같은 큰 마을이나 도시가 있지 않사옵니까? 세존이시여, 도시나 큰 마을에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시나 큰 마을에는 왕족의 큰 집회장과 브라만의 큰 집회장, 부자의 큰 집회장이 있으며, 세존께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이도 많이 있으므로 세존께서 보여 주실 사리도 정성을 다해 수습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은 아난을 자애롭게 달랬다.
“아난이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이 꾸시나라를 작고 외진 마을이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의 꾸시나라마을은 작고 외지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느니라. 아난이여, 옛날에 마하수닷사나(大善見)왕이 있었느니라. 그는 전륜성왕으로서 혈통이 바르고 법에 맞는 왕이었느니라. (중략) 전생에 여래는 이 꾸사와띠성(꾸시나라국 수도)에서 태어나 왕이 된 일도 있었느니라. 그러나 여래는 ‘부귀영화도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것이요, 몸도 무상한 것인바, 오직 법만이 진실할 뿐이다. 그러니 법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네.’ 하고 왕위를 버린 채 오로지 수행만 하였느니라. 꾸사와띠는 이처럼 여래에게 숙연(宿緣)이 있는 곳이니라. 이곳에서 열반에 드는 것은 이 땅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자 함이니라.”

전생인연이 있는 곳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고자 쿠시나가라를 열반지로 선택하였다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려고 누웠던 사라나무. 그 밑으로 답사일행이 열반상에 모실 가사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쭌다의 집에 스투파 조성한 아쇼까왕
아쇼까왕이 쿠시나가라에 순례 와서 조성한 스투파는 두 개였다. 〈대당서역기〉를 보면 쿠시나가라 성안 동북쪽의 쭌다의 옛 집에 하나가 있었고, 또 하나는 부처님이 열반에 든 장소에 조성한 스투파다. 현재 열반당 뒤에 있는 스투파가 바로 그것이다.

독이 든 버섯요리를 공양하여 부처님의 열반을 재촉한 쭌다 공양은 너무나 많이 알려진 얘기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부처님이 공양을 받기 전에 쭌다에게 설했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늘 깊이 새겨봐야 할 것 같아 소개해 본다.

음식을 베푸는 이는 남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며,
의복 베푸는 이는 남에게 아름다움 주는 사람이며,
탈것 베푸는 이는 남에게 편안함 주는 사람이며,
등불 베푸는 이는 남에게 밝은 눈 주는 사람이며,
집 베푸는 이는 남에게 모든 것을 주는 사람이며,
여래가르침 준 이는 남에게 윤회 끊어주는 사람이다.

보시, 즉 나누며 살라고 말씀하는 부처님의 절절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아쇼까왕은 이와 같은 부처님의 설법에 감동하여 쭌다의 옛 집터에 스투파를 조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독이 든 버섯요리를 공양한 쭌다가 받게 될 비난을 걱정하는 부처님의 자애로운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부처님이 피가 섞인 설사를 계속하자 아난이 “쭌다의 공양으로 지난번처럼 병을 얻는다면 큰일입니다”라고 허둥대며 걱정하자, 부처님은 오히려 “여래의 열반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니 여래의 병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리며 쭌다에 대한 비난을 변호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쭌다를 위로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답사일행은 쿠시나가라에 도착해 하루를 접는다. 숙소는 미리 예약한 조그만 모텔 수준이다. 식사를 먼저 하고 짐을 풀기로 한다. 일행 모두가 조금은 지친 듯하다. 그러고 보니 마라톤을 뛴 것 같다. 파트나를 출발하여 바이샬리를 반환점 삼아 쿠시나가라까지 달려온 것이다.

인도 스님들이 부처님을 화장한 다비장 스투파 옆에서 수행하고 있다.
부처님 성지 되살린 아쇼까왕 스투파·석주
다음날. 답사일행은 아침 일찍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장소로 이동한다. 안개가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완고하다. 안개 속에서 그림자처럼 드러난 사라나무 숲 저편에 열반당이 희미하게 보인다. 우리 일행보다 먼저 온 순례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열반당 앞에 관리인 몇 명이 서성이고 있다.
누군가가 부처님을 덮을 가사를 빌려온다. 물론 상술이 개입된 것이지만 열반상에 우리 일행의 마음을 담아 가사를 씌워드리는 일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일행 모두가 빌린 가사 끝을 잡고 열반당을 한 바퀴 돈다.

안개가 조금 걷히자 열반당 앞에 선 사라나무들이 조금씩 또렷하게 보인다. 흰색 표피와 잎 모양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상수리나무 같다. 부처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자, 아난이여, 이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되도록 자리를 준비하여라. 피곤하므로 누워서 쉬고 싶구나.”

아난이 자리를 펴자 부처님은 머리를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으로, 오른쪽 옆구리를 자리에 붙인 채 두 발을 포개어 옆으로 누웠다. 사자가 누운 모습과 흡사했다. 그러자 사라나무가 갑자기 꽃을 피웠다.

“아난이여, 지금 이렇게 두 그루의 사라나무는 제 철도 아닌데 꽃을 피워 여래에게 공양하고 있구나. 허공에서는 만다라와 꽃이 내려오고 전단분향이 퍼져 오는구나. 그러나 아난이여, 이러한 일만이 여래를 존경하며 공양하는 것이 아니니라. 비구와 비구니, 남성과 여성 재가신자들이 진리로 인하여 올바르게 행동하며, 진리를 믿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보다 깊이 여래를 존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되느니라.”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이적에 현혹되지 말라는 이성적인 말씀이다. 진리로 인하여 올바르게 행동하고 진리를 믿고 행동하는 자체가 부처님에게 올리는 참공양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진리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진리를 실천하는 행동이 참다운 공양이라는 벼락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열반당에 안에 들어 다시 부처님 열반상을 한 바퀴 돌며 참배한 뒤 들고 온 가사를 씌워드린다. 가사 밖으로 드러난 포개진 부처님의 맨발에 법륜이 새겨져 있다.

맨발로 걸으며 진리를 설하셨다는 표현이다. 전법을 위해 길 위를 맨발로 걸으셨던 부처님 일생의 거룩한 역사가 느껴진다. 부처님 얼굴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어려 있다. 유한한 생(生)을 초월해버리는 영원한 미소다.

일행이 찾던 아쇼까왕 스투파는 열반당 바로 뒤에 있다. 7세기 중반에 현장이 보았던 그 자리다. 흙과 벽돌로 조성한 복발형(覆鉢形)이 아닌 돔형의 스투파다. 아쇼까왕이 조성한 스투파를 후대에 변형한 것이리라. 새삼 아쇼까왕의 순례가 고맙다. 아쇼까왕의 스투파나 석주가 없었더라면 부처님 성지도 인도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체는 이곳에서 7일 동안 머문 뒤 말라족들에 의해 다비장으로 옮겨진다. 현재 라마브하르(Ramabhar) 스투파 자리다.

원래는 말라족들의 왕들이 대관식을 치르는 사당, 즉 보관사(寶冠寺 혹은 天冠寺)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현장이 갔을 때 땅바닥이 황흑색이었으며 회탄(灰炭)이 섞여 있었다고 하니 부처님 열반 이후에도 중요인사들을 화장한 장소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안개가 낀 이른 아침인데도 순례자들이 찾아와 부처님을 상징하고 있는 스투파를 참배하고 있다. 스투파 옆에는 공작 야자수들이 참선을 하듯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 마치 부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화현한 듯한 모습이다. 생과 사를 초월하는 스승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진리의 세계에서는 생사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사실이 깨달아진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