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의 아쇼까대왕 유적 기행<5>

강가강 일출과 나룻배.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강가강에 비유하는 설법으로 바라문 사회의 옳지 못한 관습을 일깨웠다.
답사일행이 탈 열차는 부바네스와르역에서 바라나시 부근에 있는 무갈샤라이역까지 달리는 밤열차다.  인도의 특급열차는 장거리용 라즈다니와 12시간 미만을 운행하는 샤따브디가 있는데, 우리가 탈 열차는 침대가 있고 출발과 도착시각이 정확한 라즈다니다. 열차는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하여 무갈사라이역에는 새벽 1시 40분에 도착할 예정이니 14시간 10분 동안 열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

역사 안은 장바닥 같다. 역사 안까지 들어온 소가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비루먹은 개는 한 쪽에서 졸고 있다. 인도 승객들은 큰 눈을 무심하게 희번덕거리고 있다. 쓰레기가 뒹굴고 구걸하는 아이들이 낯선 이국인들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호텔과 역사의 풍경이   극과 극이다. 부처님은 양극을 여읜 진리를 중도라고 했는데,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의 중도는 무엇인지 몇 가지 단상(斷想)이 오락가락한다. 생명의 가치일까, 생명의 경이로움일까, 생명의 존엄성일까. 몇 발짝만 옮겨도 타성과 통념에 젖어 살아왔던 나를 자극하는 인도 풍경이다.

열차는 예고한 대로 정시에 출발한다. 맞은편 침대에는 젊은 부부와 아이가 자리를 잡고  있다. 열차가 움직이자마자 책을 펴들고 있는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어본다. 이름은 고빨 나이끄이며 나이는 9살이라고 한다.

남편은 외과의사, 부인은 소아과의사인데 바라나시에서 인도의사협회 전국회의가 있다고 한다. 전국의 의사들이 다 모인다고 하니 바라나시에 소재한 호텔들이 의사로 붐빌 것 같다. 그제야 나는 우리 일행이 숙소예약 문제로 아주 애를 먹었다는 얘기를 이해한다.

카시국 유녀(遊女) 앗다카시, 부처님 설법 듣고 비구니가 되다
인구 200만 명의 바라나시로 인도인들이 모이는 이유는 인도 최고의 힌두성지이기 때문이다. 바라나강과 아시강이 강가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써 무굴제국 때부터 영국 식민지 시대까지 베나레스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다시 바라나시라는 이름을 되찾았는데 기원전에는 카시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부처님이 태자일 때에도 카시국의 수도였던 것이다. 당시 카시국은 값비싼 비단과 전단향을 생산하는 나라였는데,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도 태자시절에 화려한 카시의 비단옷을 입고 전단나무 향과 기름을 사용했다고 나온다.

또한 카시국은 당시 16개 소국 중에서 바이샬리국과 더불어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여 많은 유녀(遊女)들이 활동한바, 유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생과 달리 덕과 교양이 높고 사회적으로 신분이 보장되어 외교활동까지 하였다고 전해진다. 카시국의 유명한 유녀는 부호의 딸로 태어난 앗다카시라는 여인이었다. 앗다카시의 몸값은 엄청나 카시국이 걷는 수입 중 반을 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카시라는 여인의 이름 앞에 반(半)이라는 뜻의 앗다가 붙은 것이다. 앗다카시에게도 짧은 전생담이 있는데, 그녀는 가섭불 시대에 출가한 비구니였지만 아라한과를 얻은 장로비구니를 비난한 과보를 받아 유녀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미모는 카시의 부호들을 반하게 했고, 어떤 부호는 그녀와 하룻밤 자기 위해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미모 때문에 부호들이 하루아침에 파산하는 것을 보고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바라나시에 온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감동하여 모든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뒤 왕사성 비구니교단으로 들어가 용맹 정진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현장의 <대당서역기> 제 7권에는 오늘의 바라나시가 파날리시국으로 나온다.
‘파날리시국은 주위가 4000여 리다. 나라의 대도성은 서쪽으로 강가강을 바라보고 있으며 길이 18~19리, 넓이 5~6리이다. 민가는 빗살처럼 벌어져 있고, 주인이 많으며 집집마다 거금의 부를 쌓고 있는데 방마다 진귀한 물품들이 가득 차 있다.(중략) 대도성의 동북쪽 바라나강 서쪽에 아쇼까왕이 세운 스투파가 있다. 높이 100여 척인데 앞에 돌기둥이 서 있다. 파랗기가 거울과 같으며 광택은 물을 엉겨놓은 것 같은데, 그 안에는 항상 여래의 영상이 나타나 있다.’

바라나강 서쪽에 아쇼까왕이 세운 스투파가 있다는 것은 부처님이 그곳에 머물면서 설법을 하셨다는 얘기와도 같다고 보면 된다. 내 추정으로 얘기하자면 ‘바라나강 서쪽’은 꼬삼비가 아닐까 싶다.

열차 안에서 양덕춘 교수와 윤제림 시인, 범선 거사 등과 그동안에 답사한 내용을 주제로 몇 시간 동안 얘기를 주고받다가 얼핏 눈을 붙였던 것 같은데 열차가 무갈샤라이역에 도착한다고 알려온다. 창밖을 보아서는 캄캄한 어둠뿐이므로 분간이 안 된다. 마침내 열차는 역사로 진입하기 직전에 거친 괴성을 서너 번 지르더니 미끄러지듯 서서히 멈춘다.

불빛에 드러난 역사는 새벽 1시 40분의 꿈속 같다. 사람들이 역사 바닥에 숄 같은 모포를 뒤집어 쓴 채 자고 있다. 역사를 빠져나오는데 꿈속에서 걷는 기분이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무려 1시간 동안 역사 밖에서 기다렸다가 움직인다.

한밤중인 까닭에 짐꾼 서너 명을 겨우 찾아 협상해서 날랐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꿈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내 의식으로 눈앞의 대상을 능동적으로 보고 있다기보다는 꿈속에서 어디론가 내가 떠밀려가는 피동적 상태인 것이다.

해돋이를 기다리는 힌두교인들. 이들은 목욕을 통한 멸리의식을 믿었다.
부처님은 바라문 사회의 철벽같은 관습을 부정한 용감한 혁명가
잠에서 덜 깬 것 같은 몽롱한 의식은 숙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시간쯤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뒤부터는 의식이 명료해졌다. 강가강으로 가기 위해 잠시 버스를 타고 가는데 탁류가 소용돌이치듯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해맞이 기도를 위해 강가강으로 가는 인파가 분명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일행도 인도인들 속에 섞인다. 인파는 블랙홀에 빨려드는 것처럼 강가강으로 뚫린 골목을 채우고 있다. 릭샤꾼과 자동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혼돈스럽다. 일행은 인파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바짝 정신을 차린다. 그러는 동안 일행은 강가강 가트까지 휩쓸려나와 있다. 누군가가 소똥을 밟았다고 소리친다.

강물을 끼얹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힌두 신자들이다. 강가강 건너편 지평선은 아직 어둡다. 해가 뜨려면 더 기도해야 한다. 문득 부처님 말씀이 떠오른다. 부처님이 계실 때에도 강가강에 몸을 씻는 바라문들의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이 정각을 막 이룬 뒤였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얘기다.

바라문 산가라바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낮 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해 강에서 목욕을 하였다. 부처님이 산가라바에게 말했다.

 “목욕을 해서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면 개구리나 거북이나 악어들도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진정한 강은 선(禪)의 강이다. 자비를 강가강에 비유할 수 있으리. 선의 맑고 깨끗한 물은 모든 사람을 자비롭게 씻어준다. 선의 물속에 뛰어들어 목욕하는 법을 배우라.”

부처님은 바라문 사회의 철벽같은 관습과 통념을 부정한 용감한 혁명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문들은 목욕을 함으로 해서 멸죄가 된다고 믿었지만 부처님은  바라문 사회의 옳지 못한 관습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었다.

진리가 아닌 것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거짓된 세상과 다투지 않았고 오직 진리만 설할 뿐이었다. 불교가 인도역사 속에서 한때 소멸해버린 것은 힌두교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말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목욕에 의한 멸죄의식이나 사성계급을 부정한 불법이야말로 힌두교 존립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강가강에 띄운 꽃등이 밝은 빛으로 떠가고 있다.
일행은 강가강 저편 모래밭으로 가기 위해 나룻배를 탄다. 꽃등을 파는 장사꾼들이 다가와 호객을 한다. 나는 꽃등을 사 강물에 띄운다. 진리란 행복을 위해 존재할 뿐이라고 가르쳐 준 부처님께 바친다. 검은 강물 위에 밝은 빛으로 깨어 홀로 떠가는 꽃등을 보자 홀연히 부처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당신은 신입니까?”
“나는 신이 아니오.”
“당신은 하늘의 사자(使者)입니까?”
“아니오, 절대로 아니오.”
“당신은 영혼입니까?”
“나는 영혼이 아니오.”
“그러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깨어 있는 사람이오.”

그렇다. 부처님은 신도, 하늘의 사자도, 영혼도 아닌 오직 저 꽃등처럼 밝게 깨어 있는 분인 것이다. 배는 가트 옆을 끄덕끄덕 거슬러 오르다가 물살에 떠밀리면서 모래밭으로 접근한다. 경전에 자주 보았던 항하사(恒河沙)다. 여름이 되면 홍수에 잠겼다가 1월쯤에야 드러내는 강가강의 은밀한 속살이다. 실제로 모래를 움켜쥐어보니 손가락 사이로 사르르 빠져나가버린다. 힌두 여신의 맨살처럼 부드럽다.

이윽고 강가강 모래밭 저편 허공에서 핏덩이 같은 해가 뜬다. 바라나시의 진신사리 같은 붉은 빛덩어리다. 부처님도 아쇼까왕도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시간 속에서 저 태양을 보았으리라.                    
글=정찬주ㆍ사진=아일선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