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 수행 일화 ⑭⑮

스승의 무애행에 질색한 행자

곡차 안주에 비상가루 뿌려

경허, 비상 털고 태연히 드신 후 함구

후일 행자는 만공에게 고백 참회

⑭ 행자 관섭의 흉계

경허 스님을 모시던 관섭(寬燮)이라는 행자가 겪은 일이다. 행자 관섭은 짧은 식견이지만 경허 스님의 법문을 좋아했다. 하지만 스님의 무애행 만은 질색했다.

행자 관섭이 경허 스님의 곡차 심부름을 몹시 귀찮게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다. 경허 스님이 안주를 사오라며 돈을 건넸다.

행자 관섭은 안주를 사고 나머지 돈으로 몰래 비상(砒霜)을 샀다. 행자 관섭은 술심부름에 시봉에 너무나 힘들어 경허 스님이 비상을 먹고 죽었으면 하는 막된 생각으로 흉계를 꾸몄다.

행자 관섭은 비상을 빻아서 구운 닭고기 안에 골고루 뿌려 넣었다. 그리고는 곡차와 닭 안주를 경허 스님에게 천연덕스럽게 가져다 올렸다.

행자 관섭은 경허 스님이 닭 안주를 먹으려 하자 막상 겁이 덜컥 났다. 관섭은 방을 빠져 나가 뒷문에서 문구멍으로 숨을 죽이고 경허 스님의 동정을 가만히 지켜봤다.

‘저걸 자시나 안자시나, 드신다면 곧 쓰러질 게 아닌가. 쓰러지신 이후에는 어떻게 하지’

관섭은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을 직접 확인하려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경허 스님이 먼저 곡차를 한잔 쭉 따라 마시고 닭 안주를 먹기 시작했다.

경허 스님이 닭 안주를 먹는데 안에 무엇인가 버석버석 한 것이 있었다. 스님이 가만히 살펴보니 비상을 빻은 것이었다.

경허 스님은 비상 가루를 씹히는 것만 털어버리고 아무 말 없이 계속 먹었다. 비상가루를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골라 털어버린 닭안주를 모두 먹은 경허 스님은“아, 참 잘 먹었다”며 방에서 드러누웠다.

행자는 음식에 묻은 비상을 보고서도 태연히 드신 경허 스님의 경계를 지켜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행자 관섭은 겁이 나고 무서워 이 사실을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다가 후일 만공 스님에게 고백해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 전까지 경허 스님은 다른 이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개심사 주지 부자로 소문 났으니모아 놓은 쌀을 몰래 가져오너라”

“정직하지 못한 일을 지시하십니까”

쌀자루 올리니 ‘막걸리 사 오너라’

⑮ 나와 남을 속이는 무서운 도구

경허 스님이 서산 개심사 조실로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개심사 주지 동은(東隱) 스님은 세간에 부자스님으로 소문나 있었다.

해마다 들어온 쌀을 조용히 모아 사찰이름으로 논을 샀기 때문이다.

경허 스님이 하루는 시자인 사미승 경환을 시켜 동은 스님이 모아놓은 쌀을 모두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소문일 뿐 확인되지 않은 쌀을 가져오라는 지시에 사미승 경환은 어리둥절했다.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경환의 질문에 경허 스님은 그저 다시 동은 스님의 방에서 쌀을 가져오라고 지시할 뿐이었다.

경환은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짓인데 어찌 그런 일을 스님께서 지시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경허 스님은 경환에게 “이놈아, 너무 정직하기만 하면 못쓰는 것이니라. 정직한 체, 청정한 체 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무서운 도구가 되느니라. 알겠느냐?”고 경책했다.

경허 스님은 경환에게 다시 주지 방에 둔 쌀을 몰래 훔쳐올 것을 지시했다.경환은 할 수 없이 쌀을 가지러 가기 위해 주지 동은 스님의 방으로 갔다.

주지스님 방에는 큰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또 주지스님이 좀처럼 자리를 비우지 않아 쌀이 있는 곳으로 의심되는 곳 근처조차 갈 수 없었다.한 나절 동안 주지실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경환은 주지스님에게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주지스님, 실은 조실스님께서….”

그 사실을 전해들은 동은 스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동은 스님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쌀을 내어주며 경환에게 말했다.

“조실스님의 장난은 이제 이런 짓까지 서슴지 않으시니, 참 알 수 없는 일이구나. 어찌됐든 노스님께 갖다 올려라”경환은 묵직한 쌀자루를 지고와 경허 스님에게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허 스님이 말했다.

“그 쌀을 가지고 아래 마을에 내려가 막걸리를 사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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