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갖지 않을 학생인권 외면...법관의 인권감수성 절실”

기독교 대학의 채플 강요에 반발해 대학생들이 종종 문제제기를 해왔으나 법원은 아직 학생인권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1995년 숭실대 법학과 고아무개 학생은 6학기 동안의 대학예배 참석을 졸업요건으로 정한 숭실대학의 학칙이 종교의 자유에 반하는 위헌적 학칙이라며, 채플 불참을 이유로 학사학위를 받지 못한 데 대해 학위수여 이행청구소송을 법원에 제기하였다.
당시 1심(재판장 김황식 현 대법관)은 “예배 참석 의무를 학칙으로 정한 것은 학생들의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학생의 자유를 외면하였고, 1998년 대법원도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교교육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확정함으로써 인권판결을 기대했던 국민을 실망시켰다.
2005년 11월 참여연대는 국회 인사청문위원회에 제출한 ‘김황식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의견서’에서 “기본권의 효력이 국가뿐 아니라 학교나 기업 같은 사회적 권력체에도 미친다는 헌법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를 고려할 때, 법률적 금지사항이 아닌 한 사립학교측의 학칙 제정이 문제없다고 본 것은, 법률보다 상위 법규범인 헌법상 기본권을 외면한 과오를 범한 것이다. 졸업요건과 같이 학생의 학교생활에 있어서 본질적인 신분관계에 관해 법률적 근거가 없다면 오히려 ‘종교의 자유’ 같이 강한 효력을 가지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고민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핵심은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가 침해되었는지 아닌지를 법관이 그렇게 쉽게 판단해도 되는 것인가이다. 법관은 종교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니다. 그래서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고 얼버무림으로써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언급해 놓으면서도, 결론 부분에서는 ‘채플이 학생들의 신앙을 가지지 아니할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과감하게 못질을 하는 바람에 종교사학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되었고, 지금까지도 이 판결은 무거운 바위 같이 학생들의 종교자유를 위한 그 어떤 시도도 무력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학생들의 70% 이상이 채플은 원하는 학생들만 하도록 하거나 아예 없앴으면 좋겠다며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학생활이 종교의식 강요로 얼룩지고 있는 셈이다. 정신적 폭력의 경우는 성희롱의 경우에서처럼 피해 당사자가 심적으로 피해를 느끼느냐 아니냐가 죄의 유무를 가리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추세인데, 법원이 ‘피해라고 느끼는 것이 이상하다’고 예단해 버리는 순간 피해자가 구제될 길은 막혀버리는 것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희한한 상황,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람은 있는데 그게 고통일 리 없다는 황당한 판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흥미롭게도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4인(박준서, 이돈희, 이임수, 서성) 중 불교인은 한 사람도 없다. 가톨릭 신자 1인, 개신교인 2인, 무종교인 1인이었다니 그들이 타종교인들의 심리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종교인권 관련한 판결에는 종교 안배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주문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바로 이 한 건의 판결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고통을 받아 왔는지, 그 개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었는지, 아니 아직도 얼마나 많은 세월 고난의 길을 가야 할지 생각하면, 소수의 권력이 다수의 인권을 이렇게도 쉽게 짓밟을 수 있나 하는 암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법원이 국민적 신뢰를 잃는 것은 “가진 자에 관대하고 못 가진 자에 냉혹한 법조계 풍토” 때문이라던 어느 전직 대법관의 고백이 오히려 참신하게 들린다.
인권, 즉 인간답게 살 기본권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다. 어쩌면 인류 역사는 인권 확보를 위한 투쟁과 진화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육법전서를 딸딸 외운다고 해서 인권에 대한 안목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인권은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고 몸으로 체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는 이들에게 국민의 권리 보장을 맡겨 놓는다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믿었던 사법권력이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국가권력이나 언론ㆍ학교ㆍ기업 등 사회권력의 편에 서게 된다면, 그리하여 돈과 권력이 법 위에 지배하고 있어 ‘법치주의’가 허물어진다면, 아무런 힘도 없는 학부모나 학생들 같은 민초들이 무슨 희망을 갖겠는가.
특정종교 의식을 직접 강요한 대학 당국자는 물론, 피해자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지 않고 안이한 판결로 간접 폭력을 가하는 일부 법관들의 인권감수성 제고를 위한 평생교육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법원의 판례도 바뀔 수 있다. 채플 강요가 기본권 침해라는 새 판결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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