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기 없는 옷’ 한 벌 지어 당신께 바치고 싶어라

스님, 다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푸르고 금강산에서 내려오는 단풍의 행렬은 만물의 본체를 드러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단풍을 열두 번 째 맞이하는 제가 그동안 세상을 향해 무엇을 논하고 무엇을 주장하고, 파사현정(破邪顯正)과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자세를 얼마나 견지했는지 돌이켜 봅니다.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아 늘 고뇌했지만 막상 큰일은 제대로 하지 못한 듯 하여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열두 살 생일 날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스님, 지금 입고 계신 옷은 얼마짜리입니까? 아, 돈으로 따지는 값이 아닙니다. 비싼 옷을 입었다고 하여 그 사람이 더 귀해지는 것이 아닌 줄이야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지요. 날마다 가식의 옷을 껴입으며 사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명품’을 입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옷’을 입으신 스님, 그 옷의 진정한 값을 가르쳐 주시면 세간 사람들의 ‘명품 병’이 치유되지 않을까요? 가식의 옷을 한 겹씩 벗으며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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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꼭 100세를 맞은 김필례(대전시 중구 원동) 보살님은 매일, 일흔 여섯 살 따님이 운영하는 승복점에 나가 하루 종일 승복 바느질을 합니다. 바늘에 실을 직접 꿰고 소침으로 한 땀 한 땀 떠 나가는 모습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지요. 어느 날 그 보살님 바느질 하시는 것을 한참 구경했습니다. 처음엔 100세의 보살님이 승복 바느질을 하신다기에 신기한 마음으로 찾아 갔지만 곁에 앉아 있는 동안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후 무슨 물건이 필요하십니까?”라고 묻는 왕에게 혜충국사(?~775)는 “무봉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했다지요? 쌓은 흔적과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이 세상에 있다 한들 그 형상을 볼 눈이 없으면 어찌 그것이 귀한 줄 알겠습니까. 100세의 김필례 보살님도 스님들의 법의를 지으며 ‘내가 지은 이 옷을 입은 스님이 부디 성불하여 중생제도 하시길…’ 하는 마음뿐이라고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솔기 없는 옷 한 벌 지어 천하의 중생을 제도할 스님께 바치고자 하는 마음, 이 마음은 승복을 짓는 모든 이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스님, 지금 입고 계신 옷의 무게는 얼마나 됩니까? 지금도 ‘삼 서 근’으로 지은 동산(910~990) 스님의 옷은 청천벽력 같은 가르침으로 남아 있습니까? 제방의 운수들을 입히고도 넉넉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있습니까? 부처를 ‘마른 똥 막대기’라고 하고 ‘장림산 밑에 있는 대나무 지팡이’라고 하던 옛 스님들의 견처는 지금도 여여하게 광채를 발하고 있는지요?
혹 빛나고 값비싼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빛이 깊은 산이나 바다 속으로 숨어 버리진 않았는지요? 자태가 고운 아씨 때의 바느질 솜씨를 아끼고 아껴 두었다가 승복 짓는 일로 세상을 마치고자 30년이 넘도록 매일매일 바느질을 한다는 노(老)보살님. 그 정성이라면 옛 스승들의 견처에 솔기 없는 법복 한 벌 공양 올릴 만 하지 않을까요?

스님, 간절히 듣고 싶습니다. “제가 후일 인적이 끊어진 곳에 암자를 세우고 한 톨의 쌀도 저축하지 않고 한 포기 채소도 심지 않고 항상 시방에 왕래하는 대선지식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본래면목을 얽어매는 못과 문설주를 모조리 뽑아주고 기름때에 절은 모자와 노린내 나는 적삼을 훌훌 벗어버려 그들 모두가 그지없이 청정한 경지에서 할 일 없는 사람이 되게 하겠습니다” 하던 동산 스님의 외침을….

스님, 입을 줄만 알고 벗을 줄은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한 말씀 해 주세요. 세상 사람들이 가식과 탐욕과 분노와 무지의 옷들을 훌훌 벗어 던지고 ‘무봉탑’과 ‘삼 서 근’의 휘황찬란한 깨우침을 입을 수 있도록….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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