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평화ㆍ자비의 상징


왼쪽 상단부터 숭산 스님. 틱낫한 스님. 달라이 라마. 마하 고사난다 스님.
지난 11월 30일 입적한 숭산 스님(화계사 조실)이 이른바 ‘세계 4대 생불(生佛)’ 가운데 한 분으로 알려지면서 나머지 세 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국 간화선의 세계화에 앞장서온 숭산 스님과 함께 4대 생불로 추앙받는 고승들은 티베트 망명정부의 최고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킬링필드의 땅 ‘캄보디아의 간디’ 마하 고사난다 스님, 프랑스 플럼빌리지 수행공동체를 이끄는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이다.

이들 네 분은 한결같이 전쟁의 포화속에서 평화와 불법(佛法)을 위해 전 생애를 던진 ‘진리의 실천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불교를 떠나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와 자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한 1950년 열다섯의 나이로 통치자의 전권을 위임받은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59년 결국 인도로 망명했다. 인도 다람살라에 임시정부를 수립한 그는 반세기에 가까운 망명생활을 하면서 티베트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용서>(원제 The Wisdom of forgiveness)라는 책에서 달라이 라마는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의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질투와 원한의 감정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그 유일한 길이 바로 용서라는 것이다.

숭산 스님과 절친한 사이였던 고사난다 스님은 킬링필드 대재앙을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맞선 캄보디아 평화운동의 상징으로 존경받고 있다.
숲속의 고승,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아버지, 15개국어를 구사하는 번역가이자 학자, 서구 학인들의 명상 지도자, UN의 평화중재자, '캄보디아의 살아있는 국보', '살아있는 진실' 등등 그를 표현하는 말들은 너무나 많다.
세계적인 평화·환경운동 지도자, 참여불교운동의 선구자인 스님은 캄보디아 내전에 참여한 시민들을 중재하는 비폭력운동을 벌였고, 피난민 지원과 국가 재건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따스한 인간성과 위대한 자비심은 그를 '캄보이다의 간디'로 불리우게 했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결정인 시(詩)와 명상 엣세이로 국내 서점가에 '열풍'을 일으킨 바 있는 틱낫한 스님은 평화운동가이자 베트남 난민공동체의 지도자였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왕조의 행정관료 가문에서 태어나 16세에 출가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파리평화협상에 파견된 불교평화대표단의 단장이기도 했던 스님은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공의 입장에 서지도 않았다. 반전주의자인 스님은 결국 남베트남 정부(사이공 정부)와 북베트남 정부 양쪽의 미움을 받고 베트남에서 추방당하는 몸이 되었다.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1968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수천 명에 달하는 베트남 난민을 구하기 위해 20만 달러를 모금해 800여 명의 보트 피플을 구조했으며, 프랑스 로테 가론 지역에 불교명상수련원 '플럼빌리지(자두마을)'를 세우고 봉사활동에 나섰다. 스님은 현재 미국 버몬트에 세운 '그린 마운틴 다르마 센터'와 플럼빌리지를 오가며 가르침을 펴고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