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가 어지러울수록 중생들은 종교에 기대하는 마음이 커진다. 지묵ㆍ설곡ㆍ효림 등 15명의 스님들이 쓴 스님들의 수행일화를 엮은 <스님이야기>는 청정 수행을 몸소 실천하는 스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허전한 마음을 달래준다. 책에 등장하는 스님들 대부분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지만 그 수행태도와 인품만큼은 독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깨침의 푸른 서슬 때문이다.

송광사 불일암에서 공양주를 살며 모셨던 법정 스님과의 일화는 지묵 스님의 가슴 속에 아직도 커다란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한 번은 지묵 스님이 법정 스님의 반응을 보기 위해 스님의 밥그릇안에 고기 몇 점을 넣었다. 그랬더니 이를 눈치 챈 법정 스님이 느닷없이 노처녀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 한 노처녀가 마음에 드는 신랑감을 만났지만 결혼을 포기했는데 그 이유가‘지금까지 지켜온 정조가 아까워서’라는 것이다. 스승의 번뜩이는 대기설법에 지묵 스님은 고개를 떨구었다. 무엇이 먹고 싶을 때는 상대방에게 간접적으로 점잖게 힌트를 주어 표현하는 선사다운 풍모에서부터 발바닥 중간의 용천혈을 자극하는 나름대로의 건강관리법까지 지묵 스님의 담백한 글로 소개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행의 깊이를 통해 초발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스님들도 있다. 20여년 가까이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해오고 있는 지유 스님과 금산 스님, 결제 때에는 면벽좌선을 하며 해제때마저 유명 기도처를 찾아다니는 법현 스님, 해제와 결제가 따로 없는 일선 스님 등은 수행자로서 모범을 보인 일등 수좌들이다.

학계와 포교에 매진하는 비구니 스님들도 소개돼 있다. 학자다운 풍모를 느끼게 하는 명성 스님, 4시간씩 자며 강의준비와 번역일에 몰두하는 주관 뚜렷한 노력파 혜원 스님, 운문사 주지로 운문인들의 귀감이 되는 흥륜 스님 등이 바로 이들이다.

이 책의 강점은 바로 이런 스님들의 일상을 통해 보여준 인품의 향기가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젊은 객승이 자신의 사찰에 찾아와도 허리굽혀 인사하며 어느 도량에서 왔고 은사스님은 누구인지 물어보며 따뜻하게 맞아주는 지월 스님(前 해인사 주지), 60년대 후반 도량 곳곳에 버려진 무명 옷들을 주워 손수 빨아 두었다가 행자나 옷이 없는 시자들에게 나눠 주었던 홍법 스님. 무예가 뛰어나지만 얻어맞으면서까지 하심에 하심을 했던 대오 스님 등의 얘기를 대하면 감동을 넘어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이 책은 본래 스님들의 삶과 치열한 구도열정을 널리 알리고자 2000년 1월1일부터 2003년 8월 6일까지 3년여에 걸쳐 현대불교신문에 소개됐던 연재물중 85명의 스님이야기를 선별해 엮은 것이다.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사찰은 일반인에게는 신비의 장소이다. 그 때문에 산문을 닫아 걸고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가는 스님들의 모습이 때로는 침소봉대돼 전해지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선승들의 수행과 일상사를 여과없이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청정한 스님들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며, 이러한 스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속인들은 살 맛이 나고 희망을 갖게 되니까 말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님들의 진솔한 수행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스님이야기
지묵 스님외 14인 지음
여시아문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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