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로 신음하고 있을 때,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최병환(17, 남양주 동아고등학교1) 최은영(15, 남양주 미금중학교2) 남매의 집을 찾았다. 나팔꽃이 남매의 보금자리인 연립주택 1층 베란다를 타고 꽃망울을 툭 터트리고 있었으나, 집안은 휑한 느낌만 들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한대에 아무것도 올려지지 않은 선반 하나, 빨래건조대 하나, 그리고 남매들 뿐. 손님이 온다고 나름대로 정리한 모습이 더 부자연스럽다.

자신들의 집인데도 불구하고 엉거주춤 앉아 있는 모습이 이런 자리가 꽤나 어려운 모양이다. 같이 간 일행이 편하게 앉으라고 하자 그제야 꿇고 있던 다리를 펴고 양반다리를 한다.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 형국이다. 남매가 이렇게 남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하지 못하기 시작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다.

“제가 초등학교 1,2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간경화로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하셨어요, 술을 좋아하셨거든요. 간경화 선고를 받고 나서도 아버지는 술을 끊지 않으셨어요. 그 문제로 어머니와 다투시기도 많이 했구요, 결국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말투가 제법 어른스럽다. 어쩌면 자신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원망도 있을 법 한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툭툭 내뱉는다.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묻어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 생계는 어머니가 도맡았다. 낮에는 집 근처 봉제공장에서 미싱일을 하고, 밤에는 집안 살림을 했다. 너무 무리했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남긴 상처가 컸을까. 어머니도 덜컥 자궁경부암을 선고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채 1년이 되지 않아서였다.

“처음 2~3개월 동안은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했어요. 제가 어려서 잘은 모르겠지만 병원비가 부담이 되신 것 같아요. 그 후 1~2년 동안은 집에서 살림을 하시며 통원치료를 받으셨구요. 그러다 거동조차 어려워 집에서 누워만 계셨어요,”

어머니의 치료비는 살던 집 전세금을 빼 충당했다.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간 뒤, 생활비는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생계급여로 버텼다. 거동조차 불편한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도 행복했다. ‘어머니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조그만 행복도 작년에 사라져버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건 보험금 조금. 이것저것 다 제하니 단돈 3천만 원이 남았다. 그 돈으로 지금의 보금자리로 옮겼다.

병환이는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이다.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나면 저녁 9시 쯤. 이후에는 인근 학원 원장선생님의 배려로 무료로 보습학원에 다닌다. 마치면 12시.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길을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온다. 어머니가 아프신 것을 보고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다지며 발끝에 힘을 준다.

은영이는 꿈 많고 가지고 싶은 것 많은 중학교 2학년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에는 미용사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가졌지만 이제는 모든 것에 시큰둥하다. 하교 후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 가느라 바쁠 때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알아버린 탓이다.

병환이네는 지금 국민기초수급대상자이자 소년ㆍ소녀 가장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50여만 원을 지원받는다. 거기에서 각종 단체에서 들어오는 후원금이 10만원 정도를 합하면 수입원 전부다.

필요한 것이 뭐냐는 질문에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프린터요’라고 대답하는 병환이. 모든 일에 시큰둥한 은영이. 병환이 은영이 남매가 집 앞에 핀 나팔꽃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의견을 표출할 때,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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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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